이상하게 싼 집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루코 이 사이트 알아? 지도에 사망사고 났던 집을 표시해준대."

저녁을 먹은 코스케가 보여줬다. 아까 트위터에서 본 것이라고 한다. 화면을 보니 지도상에 불꽃 마크가 점점이 있었다. 이게 사망사고를 나타내는 거고, 고독사, 사고사, 자살, 살인 등의 상세한 사항도 볼 수 있다.

"와 생각보다 많네."
"고독사같은 사건도 곧잘 있잖아."
"우리 동네는 괜찮아?"
"근처에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난 거 아냐?"

코스케가 웃으며 집주소를 입력했다. 입력 직후 웃음이 사라졌다.

"왜?"

코스케는 말없이 화면을 가리켰다. 지난주에 막 이사한 우리 집에 불꽃 마크가 붙어있었다.

2008년 5월
헤어진 전남편이 찾아와 20대 여성을 침실에서 칼로 살해. 직후에 전남편도 거실에서 목을 매 자살.

2010년 8월
20대 남성이 욕실에서 익사. 자살로 추정.

2015년 11월
40대 남성이 거실에서 목을 매 자살.

이 집에서만 4명이 죽었다. 부동산에선 한 마디도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 찾아보니 내용은 다 사실 같았다. 이 집에서 끔찍한 동반자살이 일어났고 그 다음에도 2명이나 자살했다.

우리 부부는 굳이 따지자면 현실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집 안을 보면 상상을 하게 된다. 천장에 매달려 끽끽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다리. 바닥에 퍼지는 핏자국.
새 장판인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가장 마음 편할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코스케가 늦게 오는 날이 늘어났다. 집에 오기가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홀로 남는다. 사소한 말다툼도 늘었다. 부정적인 마음이 악순환을 이뤄낸다.

오늘밤에도 혼자 누워있었다.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요즘 피곤한데도 잠이 안 드는 날이 많다. 새벽 2시를 넘어 겨우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구르

방구석에서 꼭 종이를 구기는 소리같은게 났다.
착각일까.

구르
 구르

착각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들렸다. 희미한 소리. 몇 십 초에 한 번씩 종이를 구기는 소리가 난다.

구르 구르  구르
 구르   구르

그제서야 나는 알아챘다. 이건 종이를 구기는 소리가 아니다. 잇새로 새 나오는,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다.
나는 천천히, 천천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 눈을 떴다.

방구석 어둠에 무릎을 끌어안은 여자가 있었다.

구르 구르 구르 구르

지금까지 들리던 종이 구기는 소리는 여자의 입술이 움직이자 단어가 됐다. 입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눈을 내리깐 여자가 방구석에서 '억울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때

"아얏."

복부에 날카로운 통증이 퍼졌다.

"앗, 아야야야."

고통은 까득까득 조여 오듯 커졌다.
나도 모르게 배를 잡았다.
배가 아프다.
이상한 거라도 먹었나.

먹었다.
굴을 먹었다.

코스케가 늦게 오는 날이면 홧김에 혼자 호화롭게 먹는 습관이 생겼었다.
오늘은 도매 업소에서 냉동 굴을 사다가 술과 함께 20개나 먹었다. 틀림없다. 그게 걸린 거다. 역시 싼 건 비지떡이다.
그리고 복통이 커진다.
아프다아프다아프다아프다.
아프다고.

아니,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귀신이 있는 것이다.
여자는 변함없이 중얼대고 있었다. 무섭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배도 아프다. 무섭고 배도 아프다.
"끄윽."
둔통이 파도치듯 퍼져간다. 못 버티겠다.
몸을 말고 끙끙대도 통증은 나아지질 않았다.
아프다아프다아프다. 배가 아프다.
젠장~~~~
굴은 괜히 먹어가지고.
아야야야야야야.
아니.
코스케가 안 온 게 잘못 아냐?
나는 점점 짜증이 났다. 짜증내는 것 말곤 복통에 대항할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아프다아프다아프다.
살인사건 난 집에 나 혼자 내버려두고 술 먹으러 가는게 말이 돼?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아야야야. 아~~~~ 진짜,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화장실에 간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다. 경험상 안다. 누워있어야만 하는 복통.
비지땀을 흘리며 방구석을 쳐다본다.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어쩐지 짜증이 났다. 유령한테도.
그 한 마디 말곤 모르는 것처럼 중얼중얼중얼…….
씨발년.
뒈져.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왜.
아야야야야야.
왜 나만 이런 꼴이냐고.
살인난 집에 매여서.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닥쳐.
아~~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프다고~~~~~~~~~~
진짜~~~~~~~~~
아~~~~~~~~~.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시끄러~~~~~~~~~~
제발~~~~~~~~~
죽어라~~~~~~~~~
아파 아파 아파~~~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억울해, 억울해, 억……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진짜~~~~~~~~~~~~~~~~~~~~~~~~~~~~~~~~~~~~~~~~~~

…………

방구석에 있던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입술이 움직인다.

저기.
저희 둘 다.
참 힘드네요.

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없어졌다……"

그렇게 놀랄 틈도 없이 나는 몸을 꼬았다.
배가 아프다.
아프다아프다아프다.
유령이 사라졌는데도 복통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뭐가 둘 다 힘들단 거야.
약을 먹자 좀 나아지긴 했지만 복통은 6시까지 이어졌다.

그 후로 잠 못 드는 날이 줄었다. 집에서 불길한 느낌이 줄어든 느낌도 살짝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확실하다.
복통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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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자취방을 구했던 건 소설가로 데뷔하고 몇 년 지났을 무렵이다.

디자인 전문대를 졸업하고 어째선지 소설가가 되서 단행본도 그럭저럭 정기적으로 내게 됐다. 몇 년 지나자 혼자서도 살 수 있겠다 싶어 의외로 계획 없이 본가를 나와 상경했다.
본가는 사이타마에 있어서 한 시간이면 도쿄에 갈 수 있었고, 회의 자체도 전화가 메인이었다. 원고는 퀵서비스와 메일로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편집자와 굳이 만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집을 나오고 싶었던 건 소설가라는 직업을 아버지가 전혀 이해해주지 않은데다, 엄청난 이웃집 소음 탓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동인활동을 하기 때문에 코미케에 가기 편하면 좋다는 이유였다.
가장 큰 이유는 친한 친구 집이 도쿄에 있어서 허구헌 날 놀러갔다가 자고 오는데, 집에 오기가 귀찮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친구 집 근처로 가기로 했다.
친구는 고쿠분지역 근처에서 룸쉐어 하고 살았다. 근처에서 자취하기엔 집세를 타협하기 어려워서 자전거로 왕복할 수 있는 거리 기준으로 찾았다.

다른 역에서 도보 14분 걸리는 목조 2층 맨션.
월세 6만 5천 엔인 원룸이었다.
사이타마였다면 6만 엔으로 꽤 큰 자취방을 구할 수 있었는데 원룸밖에 안되나 하면서도 애초에 '집' 자체에 집착이 없었기 때문에 첫 자취방으로 고른 곳에 불만은 없었다.

일본식 단칸방에 욕실과 화장실은 따로 있었고 채광도 좋았다.
근처에 슈퍼랑 편의점, 패밀리 레스토랑. 역 근처에는 책방과 문방구. 한 정거장 가면 고쿠분지고, 백화점이 있어서 뭐든 살 수 있었다.
본가에 살적엔 자전거 없이는 편의점도 못 가고, 역에 가려면 부모님한테 차로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할 만큼 걸어 다닐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입지는 꽤 좋았다.

중개해준 부동산업자는 예전에 살던 사람이 8년이나 살았다고 했다. 
난 어릴 때 이사가 잦아서 8년씩 산 적이 없었다. '대단하네, 엄청 살기 좋겠네.' 그렇게 생각했다.

사다리 침대와 컴퓨터 책상 그리고 책장을 넣자 단칸방은 삽시간에 복잡해졌다. 오타쿠라서 일단 책이 많았다.
하지만 첫 자취가 기뻐서 친구들도 막 불렀다.
고쿠분지 친구는 물론 신주쿠에 있는 학교 다닐 적 친구들하고도 자주 놀았다.
동인활동을 하려고 월 한 두 번 도쿄 빅사이트에 갔다.
인디 밴드 팬 활동을 시작하고 주 한 두 번 라이브 하우스에 갔다.
친구의 소개로 인쇄소 아르바이트도 했다. 지각에 조퇴를 밥 먹듯 하고 인쇄 일이나 동인지 입고시기가 코앞인데도 갑자기 쉬는, 끔찍한 근태였지만 인쇄소라는 업무 특성도 있고 사장님도 이해해줬기 때문에 잘리지도 않고 편하게 일했다.

늘 외출 중이었지만 우리 집이 정말 좋았다.
아주 편하고, 집에 있을 땐 '아무 데도 안 가고 계속 집에 있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8년이나 산 것도 이해가 된다. 일단 편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적지근한 늪에 잠겨가는 편안함과 비슷하다.

바쁘고 즐겁게 살다가 내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걸 깨달은 건 그 집에 산지 딱 1년쯤 됐을 무렵이었다.
아니, 나중에 생각하다가 '그 때였나' 싶었던 것뿐이지 당시엔 전혀 자각이 없었다.

이사한지 1년이 넘었는데 전문대 시절 친구가 '이사 선물'이라며 예쁜 하늘색 부엌 매트를 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왜 지금? 그리고 왜 이렇게 눈 아픈 파란색?'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맙게 받아 부엌에 깔았다.

그 무렵, 사이타마의 애인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한참 지났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
우울증 약 부작용으로 살이 찌고, 웃으면서 부정적인 말만 하니 말이 안 통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실제로 연락을 끊었다. 다행히 이사한 곳과 하는 일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도망칠 수 있었다.

일할 때도 그랬다. 편집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듣기 싫은 소리를 쏟아 부었다. 어떻게든 참고 웃어넘기려고 하다 보니 전화가 무서워졌다.
내 이야기를 고의로 비비 꼬아 인터넷에 올리고 '이런 소릴 들었어요.' 라며 이르려고 일부러 전화를 해서 정말 무서웠다.
편집자는 곧잘 웃으면서 죽으라고 했다. 엄마는 '남한테 죽으라고 하면 안 돼'라고 교육해서 매번 괴로웠다. 나 자신에게 별 것 아니라고 인식시키려고 일부러 죽으라는 말을 하게 됐다. 금세 말버릇이 됐다. 아직도 툭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매번 마음이 아파진다.

즐겁고 괴롭고 안 괴로운 척을 하며 정신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노골적으로 건강이 안 좋아졌다.
내내 37도가량 미열이 나고, 가끔 38도를 넘어 39도에 가까운 고열이 났다가, 이유 없는 복통에 시달리는 등, 말 그대로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심할 때는 너무 아파서 기절할 정도였다.
어느 병원을 가도 어째선지 제대로 진찰해주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구급차를 불러도 '이정도로 구급차 부르지 마세요!' 라는 간호사에게 혼나고. 그래도 너무 아파서 다른 병원에도 갔지만 정말 어째서인지 거의 모든 병원에서 검사는커녕 약도 안 줬다. 어쩔 수 없이 약국 진통제를 계속 먹었다.

심할 때는 하루에 10개 넘게 먹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영수증 정리할 때 진통제 48개 들이를 주에 2개씩 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통증과 열 때문에 일도 안 풀리고, 좋아하는 라이브나 동인 이벤트를 가다가도 몇 번씩 길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때로는 앉는 것도 고통스러워 바닥에 널부러지기도 했는데 주위 사람은 딱히 걱정해주지 않았다. 별 희한한 짓을 한다고 혼나거나, 무시당하거나, 혐오 당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이지, 왜 아무도 안 도와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병원에 갔다는 얘기, 제대로 진찰 안 해줬다는 설명을 해도 믿기는 커녕 '네 잘못이겠지'라고 혼났다.
틀림없이 당시의 내 상태가 어지간히 안 좋아서 그냥 미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당시의 기억이 흐릿해서 사실은 걱정해준 사람이 있었던 걸 잊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 일들은 기억에서 꽤 많이 사라져있다.

심신 모두 만신창이라 식욕도 전혀 없어서 매일 푸딩 하나만 먹었다.
저녁 즈음에 근처 편의점에 가서 하나 사고, 토하지 않게 하루 종일 천천히 먹었다.
더 이상 의자에 앉을 기력도 없어서 개복치라는 큼직한 앉은뱅이 의자를 사서 거의 눕듯이 지냈다. 무릎에 노트북을 대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개복치 주변에 빈 푸딩 껍데기가 굴러다녔다.

역시 미친 걸로밖에 안 보이네.

침대에서도 못 자게 돼서 개복치 위에서 큰 수건을 이불삼아 잤다.
사다리 침대를 못 올라갈 만큼 기운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또 하나의 큰 이유는 붙박이 벽장의 문이 침대에 있어서 내가 누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나는 벽장문이 거슬린다는 생각에 그걸 뗐다. 하지만 너무 커서 둘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대 위에 얹은 것이다.

쓰는 나도 이해가 안 된다. 당시엔 아주 당연했다고 해야 하나, 아주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면 웬 남자가 귓전에서 뭐라고 하는데 그게 시끄러워 잘 수가 없었다.
누가 있는 느낌은 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베개에 머리를 대면 남자의 말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내 집인데 누가 있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네, 그런 생각과 함께 침대에서 안 자게 됐다.

그렇게 살다가 열은 38도를 넘고선 내려가지 않고, 통증이 멎질 않아 계속 토하게 됐다.
어느 날 밤, 너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고통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전신에서 쿵쿵대는 욱신거림만이 이어졌다. 아, 이거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의외로 명확하게 죽음을 예감했다.
어렸을 때는 죽는 것, 혹은 죽음 그 자체가 무서워서 잠 못 드는 아이였는데 그 때만큼은 이 통증과 몸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참을, 몇 달째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고 싶었다. 그냥 자고 싶었다. 푹 자고 싶다. 지금 자면 두 번 다시 못 일어나도 되니까 일단 의식을 잃고 싶다. 자게 해줘.

그렇게 바라다가 잠들었다.
잠들었다기보단 기절했다.
깼다가 또 기절하기를 밤새 반복했다.
부엌에 벌러덩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 해 뜰 무렵이었다. 아, 안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기듯 밖에 나갔다.
사실은 구급차를 부르고 싶었지만 또 무서운 간호사한테 혼날까봐 열심히 집을 나서고 큰길로 갔다. 끙끙대며 택시를 잡았다.

택시 운전사가 몇 년간 만난 사람 중 가장 다정했다.
나도 모르게 계속 끙끙거렸는지 괜찮냐고, 천천히 갈지 몇 번이나 물어봤다.
차가 응급실 입구 근처에 도착하고서도 같이 가줄지 물어봤는데 어째선지 헤죽헤죽 웃으며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답하곤 혼자 걸어갔다.

아픈 건지 괴로운 건지도 모를 상태로 정말 기듯이 느릿느릿 복도를 걸어 접수처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나가던 의사와 간호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거기 있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나도 어째선지 의사 같은 사람들한테 '도와주지 않으려나' 하고 마음속으로만 바라고 말을 하진 않았다.
한참 걸려서 겨우 창구에 도착했다. 접수하고선 로비에서 또 기절했다.
간호사가 귀찮은 듯 여기서 자지 말라며 몇 번이고 깨웠다. 하지만 또 기절했다.

겨우 내 차례가 와서 진찰을 받았다.
더 이상 말할 기력이 없었지만 어찌어찌 상태를 말하자 의사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복부 초음파인지 뭔지를 보던 의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안색이 변했다.(아마도)
"보호자분 불러주세요."
라기에
"없어요."
라고 하자
"혼자 왔어!?"
비명처럼 소리 지른 건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간호사 두 명이 휠체어를 가져왔다.
"걸을 수 있어요" 내가 말했지만 "일단 앉아!" 라며 강제로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곤 중환자를 다루듯 천천히 검사실로 옮겨가선 더 자세히 검사했다.
다시 진료실에 가자 의사는 '바로 수술할 겁니다.'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뱃속에서 큰 종양이 터져 복막염이 됐다고 한다.

"당장 가족분 불러서 동의서를 써 주세요."
그래서 집에 전화했다.
내가 말을 제대로 못 했는지 엄마는
"집에 와서 이쪽 병원에서 수술할 순 없니?"
라고 했다.
아마 그 때 본가쪽 병원까지 갔다면 중간에 죽었을 것이다.

알바 하는 날이라 인쇄소에도 전화했다.
지금 수술해서 알바 못 간다고 했더니 사장님은 '에이~ 거짓말~' 이라며 믿어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연락을 돌리자 이번엔 휠체어가 아니라 수술대에 눕혔다.
정말로 바로 수술 안 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뒷일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간 중간에 옷을 갈아입은 것, 수술실에 간 것, 수술이 끝났다는 말과 함께 어디 갈 때 덜덜 떨며 헛소리처럼 춥다는 말만 반복한 기억이 난다.

어느 정도 의식이 돌아온 건 병실이었다.
몸이 이상하게 무겁고, 시야는 어둡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 팔에 링거가 달리고 배에는 농을 뺄 드레인이 꽂혔다. 소변관과 함께 등판에 진통제인 모르핀이 투여됐다. 고 한다.
아마 모르핀 때문인지 수술 후 며칠간 기억이 없다.

입원생활은 굉장히 힘들었다.
병원은 낡은데다 어둡고 냄새나고. 배는 아프지 다리는 붓지 등은 가렵지, 죽을 만큼 목이 말라도 물을 안 주고. 아빠가 왔나 했더니 '당신은 엄마가 돼서 딸이 아픈 것도 몰라!' 엄마한테 그렇게 말을 하지 않나. 뒤척이지도 못하는 게 괴로운데다 병실에 있을게 진절머리가 났다. 어찌됐건 매일같이 빨리 퇴원할 수 있기를, 내 방에 혼자 있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
이따금 이유 모를 발작이 일어나서 고열이 나는데도 온몸이 차갑고, 춥고 또 추워서 떨림이 멈추지 않는 공포에 공황이 온 게 제일 힘들었다.
좌약을 많이 맞았다.

한 달 가까이 입원했을 것이다.
그동안 엄마와 할머니가 내 방을 정리해줬다고 한다.
내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는데, 군데군데 토사물 흔적이 있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해서 빨래가 쌓여 있었는데, 다행히 푸딩 말고 음식을 먹은 적 없던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으로 청결한 걸 좋아하는 할머니가 치웠다니 엉망인 방에서 맘대로 뭘 많이 버려서 텅텅 비어있을 것이다.
각오를 한 나는 퇴원하고 오랜만에 내 집에 갔다.

택시가 집 앞에 서고 차에서 내렸다. 문득 건물을 본 나는 헉 하고 놀랐다.

"어… 나 왜 이런데 사는 거지…?"

건물이 기억하던 것과 달랐다.
자취는 굉장한 해방감과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했고, 집은 그 상징이었다.
목조집이지만 지붕은 어쩐지 멋지고 깔끔한, 좋은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초라했다.
판잣집 같았다.
그리고 어딘가, 어둡다.

이상하다, 아직 몸이 안 좋아서 마음까지 같이 어두운 탓에 그래 보인 건가.
다 나아서 퇴원한 게 아니라 통원치료를 하는 단계였던 나는 갸웃거리며 집에 들어갔다.
뭐든지 버려버리는, 깔끔한 걸 좋아하는 할머니 손에 걸려서 어떻게 변했을지 조심조심 들어간 집은 변함없다고 해도 될 만큼 어지러웠다.

책장에 다 안 들어가 근처에 흩어진 산더미 같은 책은 깔끔하게 쌓여있었고, 그 많던 빨래거리는 의류 정리함에 다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뭔가, 두서가 없었다.
가구, 커튼, 식기를 비롯한 모든 게 통일감이 없었다. 전부 '왜 이게 여깄지?' 하는 엄청난 위화감을 뿜고 있었다.

아니, 난 왜 여기가 편한 집이라고 생각했지?
공기는 텁텁하고 어둡고.
전부 엉망에다가 춥기까지 하다.

엄마와 할머니도 나를 걱정하긴 했지만 바로 본가로 돌아가셨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여길 뜨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안좋아 부동산에 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괴롭혔던 수수께끼의 발작도 이어져 밤은 고통 그 자체였다.
침대 위의 벽장문을 어떡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던 것 같은데…?

몇 달 후에 마침내 새 집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후에 하늘색 키친 매트를 준 친구를 만나 이사했다고 하자 친구가 말했다.
"왜 내가 누구한테 선물 잘 안하잖아."
맞아 안 하지. 쫌생이라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원래 선물을 주고받질 않잖아.
"근데 나오 방이 너무 무서웠어. 특히 욕실이나 부엌이 엄청나게 어둡고 추워서 밝은색 소품이라도 있으면 밝아질까 했거든…"

뭐야, 무서워져서 다른 친구들한테도 물어봤다.
"그게,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서 말 안 했는데 그 방 엄청 어두워서 무서웠어."
"맞아 놀러갔다가 오면서 그런 얘기 많이 했지."

뭐, 뭐야….

또 다른 지인과도 얘기했다. 멀리 사느라 우리 집에 온 적은 없지만 밖에서 몇 번 얼굴 보고 놀러간 적은 있는 사이였다.
이사하고 또 만났을 때 날 보고 굉장히 밝게 웃었다.
"아 다행이다, 오늘은 아무 것도 안 붙였네."
라고 했다.
어라, 화장 제대로 하고 왔을 텐데… 고개를 갸웃하자
"전에 봤을 때 남자가 두 명 붙어있었어요."
날씨 얘기라도 하듯 덧붙였다.
"둘 다 없어졌어요. 잘 됐네요."
난 심령현상을 믿지 않는다. 절대, 믿지 않는다.
"그래서 말해봤자 안 믿겠다 싶어서 아무 말 안 했는데."
…지금으로선 말해줬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자가 두 명 붙었으니 이사하래도 갑자기 이사할 순 없잖아요?"
거야 그렇지만.

본가를 나와 자취할 계기가 된 친한 친구도 한참 뒤에 그 얘기를 했다.
친구도 심령현상은 전혀 안 믿고, 자칭 영능력자 얘기가 나오면 슬쩍 웃으며 흐름을 바꾸는 타입이라 웃어넘기리라 믿었다.
실제로 웃어넘기긴 했다.
"그럴 리가 있나. 아 그래도 부엌이랑 욕실은 어두웠지. 아파트가 낡아서 전구도 낡은 거 아냐?"
이사할 때 전구가 없어서 전부 새것으로 끼웠어….
자주 고장 나서 생각보다 훨씬 자주 새걸로 바꿨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그 집에 왔던 친구들 모두, 100%가 어두웠다고 했다.
입을 모아 욕실이나 부엌이 어두웠다고 했다.
남자가 붙었느니 하는 소리는 당연히 빼고. 어두웠냐고 묻자 어둡고 무서웠다고들 답했다.
유도심문인가 싶어 저번 방 어땠냐고 물어본 사람들은 편하긴 했지만 빛이 잘 안 들었다고 했다.

코앞이 대로변이고 빛을 막을 것도 없는, 아주 빛이 잘 드는 집이었는데.

몇 년 전 근처에 갈 일이 생겨서 그냥 그 집 근처를 가 봤다.
아파트는 아직 그곳에 있었고, 전혀 무섭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집은 '굉장히 살기 좋았던 집'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구글 맵으로 집 주소를 검색하고 로드뷰로 봤다.
이상하다. 외관이 기억과 다르다.
파란 지붕에 진한 크림색 현관이었을 텐데, 전혀 다르다.
이사하고 꽤 지났으니 다시 칠했을 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 기억과도 다르다.
중개업자 이름이 들어간 판만 기억과 완전 같았다.

난 정말 그 아파트에 살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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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014/05/20

저번에 아침에 쓰레기 버리고 오는데(일본 쓰레기 회수 시간은 아침. 그래서 버리는 시간도 아침이다;역주) 집 앞 공터에서 새끼 원숭이같은 걸 봤어. 처음엔 알몸 아저씬줄 알고 쫄았는데 키가 작았으니 아니었을 거야.


숨어서 보니 새끼 원숭이는 공터 땅을 한동안 파고 있다가 갑자기 내 쪽을 봤어. 아직 어둑어둑해서 얼굴은 못 알아봤는데 날 보고있다는 느낌이 확 와서 등골이 오싹했어.


새끼원숭이는 판 땅으르 가리키며 뭐라고 웅얼웅얼 얘기했는데, 거리가 좀 있었는데도 귓가에서 들리는 것처럼 이상한 목소리였어.


잘 못 알아 들었는데 '운이 좋았으니 주마'같은 내용이었을거야. 그리곤 엄청난 속도로 공터 담을 박차고 사라졌어.


완전히 날이 새고 땅을 다시 파 봤더니 이가 몇 개 묻혀 있었어. 일단 준다고 해서 챙겨놨는데 어떡하냐 ㅋㅋ



6: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13:10:39.14ID:m4aCJb470.net


이는 이게 다야.


사진으로 보면 잘 안 보일텐데 크기가 새끼손가락 마디 끝만 하니까 소형 동물 이빨일지도.



7: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15:24:12.97ID:Wo+2QzDV0.net

>>6

올려줘서 ㄳ, 잘 봤음.


이런 건 현 자연박물관 같은 데에 문의해서 감정하는 게 좋을 듯. 그대로 가져가라고 해도 되고.


'원숭이가 묻던 걸 보고 나중에 파 봤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어떨까.


그리고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하면 사실을 얘기 하고. 어찌 됐든 희한한 체험이네.



8: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17:15:33.62ID:m4aCJb470.net

>>7

감사합니다.


지인중에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으니 봐 줄 수 있을지 물어볼게요.



9: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18:00:16.28ID:TdhRMCU2O.net

씻었어? 묻힌 걸 파 낸 거 치곤 흙이 없네.



10: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19:07:54.77ID:m4aCJb470.net

>>9

씻었는데 애초부터 흙은 별로 안 묻어있었어.



11: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2014/05/20(火)19:20:44.07ID:EJ60OQ+h9

사람 젖니로 보이는데.



14: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22:20:42.26ID:gexvRSZF0.net

>>8

괜찮으면 조사한 결과도 가르쳐 줘. 궁금하네!



15: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23:13:16.37ID:GeFQNilE0.net

윗니가 빠지면 마당에 묻는 풍습이 있긴 한데 사람 이 같진 않네.

(빠진 유치 중 윗니는 마루 밑에, 아랫니를 지붕에 던지는 풍습이 있다. 먼저 빠진 이에게 영구치가 올바르게 자라게 해 달라는 기원; 역주)



16: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2014/05/20(火)23:47:43.87ID:EJ60OQ+h9

정체 모를 이빨을 어떻게 들고 왔냐



13: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0(火)20:33:53.95ID:RsrmR55W0.net(1)

>>3

참고로 지금까지 희한한 체험 해 본 적 있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식인가?



19: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1(水)12:44:54.57ID:uhaFMOHO0.net

산누키카노 생각난다



25: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2(木)23:32:35.21ID:y49cLTUF0.net

>>3인데 감정 받았어.


사람 이인 건 바로 알았는데 일단 연대같은 것도 이래저래 알아봐 준대.


>>13

영감같은 건 살면서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

이 얘기 흐름대로 가면 할머니가 오나?


이를 감정하긴 했는데 돌아오기 전에 할머니가 오면 어떡해? 죽어? 다른 얘기에서 이 받고 며칠쯤 있다가 할머니가 오더라?



36: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5/23(金)21:43:00.12ID:aIK7sEd/0.net

송곳니같은 건 꽤 심하게 충치 먹은 어금니같아. 뾰족한 부분이 뿌리 아냐?


아랫니가 빠지면 옥상에, 윗니가 빠지면 처마 밑에 묻는다는 옛날 풍습이 있긴 한데 그건 보통 유치가 빠졌을 때 하는 거란 말이지.


영구치같이 생긴 게 묻힌 게 뭔가 재수 없네.



↑작성 날짜 05/22 ~ 05/23

↓작성 날짜 06/08


191:本当にあった怖い名無し@\(^o^)/:2014/06/08(日)21:20:42.74ID:XTgPHPtC0.net

검사해봤더니 반 년쯤 지난 사람 치아였어.


이를 돌려받은 날에 할머니가 왔어. 산누키카노 같은 할머니는 아니었는데 트라우마 될 만큼 무서웠어.


꿈인지 현실인지 나도 모르겠는데 이를 가져갔니 아마 현실이겠지.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은 귀중한 체험이었는데 다시는 겪기 싫어.


저주가 있는 지는 모르겠는데 할머니 얘기를 써 둘게. 본인 책임으로 읽어줘.



저녁에 내 방에 누워 있는데 창문을 똑똑 두들기는 소리가 났어. 닫아뒀던 커튼을 열었더니 창밖에 낯선 할머니가 있었어.


내 방은 2층이라 비명을 지르곤 꼼짝도 못 했어.


할머니는 새빨간 기모노를 입었는데, 언뜻 보면 사람 같지만 눈초리가 특이했어. 번득거린다고 해야 하나, 당장이라도 덮쳐들어올 것 같은 눈빛이었어.


할머니가 다시 창문을 똑똑 두드리길래 나는 문을 열라는 소린가 싶었어. 당연히 창문은 안 열고 한동안 눈싸움을 했더니 할머니가 옆으로 슥 움직였어.


처음엔 안심했는데 직후에 옆에 있는 창고방도 창문이 있던 게 생각났어. 서둘러서 잠긴 지 보려고 방에서 나서려고 했는데 옆 방에서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


나는 할머니가 들어온 걸 확신하고 이젠 내 방 창문으로 도망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냉큼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했어.


그런데 창문을 열자 마자 할머니가 옆에서 내 손목을 잡고, '걸렸구나' 한 마디. 그 때 기절했어.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어. 내 방에서 기절한 채 이틀이나 눈을 못 떴대.


뇌 검사같은 걸 하고 다음 날 퇴원했는데, 집에 왔더니 챙겨둔 이가 사라졌었어. 가족한테도 이 얘기는 안 한데다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어.


참지 못하고 곧잘 보시하던 근처 절에서 할머니 얘기를 해 봤는데 스님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면서 일단 액막이 경을 읊어줬어.


스님은 어째선지 그 다음 날에 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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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


1주일쯤 전 일인데 마당에서 원숭이를 봤다.

근데 진짜 원숭이가 아니라 원숭이랑 사람의 중간쯤 되는 무언가.

이른 아침인지라 처음엔 꿈 꾼 줄 알았는데 대충 세수하고 다시 보니 진짜 있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 그대로 쓰러질 뻔했는데 원숭이랑 눈이 마주쳐버렸다.

원숭이는 슬쩍 웃더니 내 근처에 뭔가를 두며 말 했다.

유리 너머인데다 원숭이는 입을 벙긋대기만 했지만

텔레파시같은 느낌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이해가 됐다.

'산누키카노(?)'라는 것이 올 테니 오면 이걸 보여라.

직접 뽑았다고 하면 상대도 줄 테니 받은 건 마당에 묻어 버려라'

원숭이는 그러더니 잽싸게 담벼락을 넘어 갔다.

밖에 나가서 확인해 보니 원숭이가 뭔가를 두고 간 곳에 이가 떨어져 있었다.

인간의 이 같다(아마 어금니).


일단 지금도 보관은 해 뒀는데……뭐가 올지 무서워서 잠도 못 자겠다.



728 :665


또 받았다.

묻었다.



730


>>728 

산누키카노는 어떤 거였어?



731 :665


>>730 

사람이었어, 아마.

창문 너머로 얘기한 것 뿐인데 아직도 무서워.

산누키가 성이고 카노가 이름 아닐까.

그냥 할머니였어.


732


>>731 

만나게 된 상황을 자세히



736 :665


>>732 

낮잠을 자는데 할머니가 밖에 서 있었어. 원숭이랑 똑같이 마당에.

시골이라서 근처 사람들이 정원으로 올 때가 있긴 한데

그 사람은 척 봐도 낯선 사람인데다 옷도 고급스런 기모노였어.

잠이 덜 깨서 멍하니 있는데 할머니가 창문을 똑똑 두들겼어.

열어달라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나는 그 때 일어났어.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산누키카노라 합니다'래.

할머니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어.

그런데 서랍에 넣어둔 이를 꺼내서 보여주자 분위기가 바뀌었어.

"어찌 된 일입니까?"

"빼 왔습니다."

"정말로?"

"네"

그리고 잠시 말이 없더니 할머니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어.

소매 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발치에 뒀어.

놔둘 때 좀 구부정하게 숙였는데 그 자세 그대로

내 눈 앞에서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어.

밖에 아무도 없어서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마당에 나왔더니 역시나 이가 하나 있어서 씻고 사진을 찍어뒀어.

어두우면 무서워지니까 저녁 좀 전에 마당 빈 데다 두 개 다 묻었어.



741


>>736 

사람 아니네 ㅋㅋㅋ

근데 좀 궁금해지긴 한다야

괜찮으면 어느 지방인지만이라도 가르쳐 줘



749


>>736 

의문 투성이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네.

산누키면 佐貫(사누키)를 읽은 건가? 원숭이랑 할머니 정체가 궁금하네.

누구 아는 사람 없나.

구부정하게 숙인 채로 고속이동하는 건 예상을 넘어도 너무 넘어서 뿜었음 ㅋㅋ



751


산누키가 아니라 산노키 아니었을까?

엄마 고향에서 아이가 떼를 쓰면

노인들이 '산누키가 와서 잡아간다'고 겁줬던 게 생각나서.



753 :665


>>741>>749>>751 

지방은 토호쿠(東北). 

이제 완전 끝나긴 했을 텐데 신경이 안 쓰이냐면 거짓말이지.

지방 역사관같은 데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없나봐.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이상한 금기같은 거였으면 것도 싫고……

너무 파헤치기보단 아무 일도 없기만 기도할래.

그런데 이른 아침에 부모님이 마당에서 죽은 참새를 봤대. 이를 묻은 곳 근처에서.

벌써 버려서 찍진 못했어.

뭐 찍으려고 했어도 틀림없이 말리셨겠지만.



766


>751쓴 사람인데.

어렸을 때 노인들한테 들은 얘기라 기억은 잘 안나는데

산노키라는 요괴? 오니같은 게 있어서 큰 소리로 우는 아이가 있으면 듣고 찾아온대.

오기 전에 울음을 그치면 다행이고, 안 그치면 표식을 남겨.

밤이 되면 산노키는 표식을 더듬어 와서 아이를 납치하려 한대.

문단속을 잘 하면 괜찮지만 창문이나 문이 열려있으면 잡혀가니까 조심할 것. 이래.

납치를 안 해도 표식이 있으면 병에 걸리니 뭐니 하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아.

동네 청소할 때 이를 물어봤었어.

할머니 이름이 휘라서. 

'남한테 얘기하면 불행이 퍼져가니 말하지 마'라고도 했고.

원숭이나 할머니가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어.


그래도 옛날엔 죽은 사람의 이를 하나 뽑아서 부적으로 삼는 습관이 있었대.

어디든 그런 건 아니었고 지금은 이어지지 않지만.

아마 원숭이는 조상님이나 다른 누군가의 사자(使者)였고 할머니한테서 지켜준 게 아닐까.


아줌마한테 '벌써 이름을 얘기 했어요'라고 했더니

'부적을 줄 테니 이름을 거꾸로 읊고 기원하면 액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들었어.



휘: 한자권에서 유래한 풍습으로 고인의 생전 이름을 부르지 않기 위해 따로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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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 : 1 04/07/14 08:22 ID:Bbq5U+// 




사흘 전 얘기예요. 일요일이요.


토쿠이와 요시오카, 저 셋이서 스마 해안에 놀러 갔어요.


그리 먼 데 사는게 아니라 자전거로 갔어요.


해안행 버스 정류장 옆길을 내려가는데 폭주족같은 사람 넷이 오토바이를 세워놨었어요.


피해가면 오히려 시비 걸 것 같아서 관심 없는 척 "어제 게임 하는데~" 하고 일부러 얘기를 하며 지나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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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막 서랍에 숨어있다가 내가 열면 으악! 하면서 놀래켰잖아~"


하지만, 나는 서랍에 숨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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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세 독거 남성 사망.


거미막하 출혈*입니다. 슬픈 죽음이었습니다.


아내분이 몇 년 전에 병사하고 외로운 나머지 유품에 둘러싸여 일상적으로 자위행위를 한 듯합니다.


하지만 설마, 본인도 그대로 죽을 줄은 몰랐겠지요.





*거미막: 세 겹의 뇌막중 가운데 있는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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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증명사진

번역 괴담 2017. 6. 28. 18:31


 사진관에서는 이상한 것이 찍히는 일이 드물지 않다.


보통은 수정해 주지만 아는 사진관 주인이 딱 한 번 수정을 안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력서용 증명사진을 찍으러 고등학생인 딸과 어머니가 같이 왔다.


사진을 현상했더니 의자에 앉은 딸 오른쪽에는 초로의 신사, 왼쪽에는 사모님이 싱긋 미소지으며 서 있었다고 한다.



증명사진은 가슴 위로 찍는것이 정석인데, 어째선지 그 사진은 의자에 앉은 딸의 전신과, 있을 수가 없는 두 사람이 같이 찍혀 있었다.



사진을 받아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사진에 찍힌 두 사람이 딸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라고 설명했다.


생전에 손자 얼굴이 보고 싶다고 늘 말했는데, 부모님이 지금도 이렇게 지켜보고 있었다며 울었다.


같이 우는 딸과 어머니를 보고 사진관 주인도 덩달아 울었다고 한다.



주인은 셋이 찍힌 사진에 어머니 사진도 합성해 넣고 액자에 넣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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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흔히 말하는 찐따였다.


완전히 외톨이는 아니고 이야기정도는 하지만 특별히 누구랑 모여다니지는 않는 준 찐따.


말을 걸면 대답은 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서지는 않았다.



왜 그렇냐면, 요는 남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반 친구들 이름도 못 외워서 친구들이 하는 얘기도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중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다들 그런 얘기에 푹 빠져서 대화에 섞여들 수가 없었다.


아마 나만 성장이 덜 된 것이었으리라. 


다들 갖고 있던 휴대전화도 없어서 나는 완전히 뒤떨어진 아이였다.



우리 반에는 다른 애들이 피하던 여자얘가 하나 있었다.


딱히 성격이 모가 난 건 아니지만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안좋은 소문이 퍼져서, 남들 눈치를 보던 중학교때는 걔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찐따였던 나는 소문에 둔해서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걔가 말을 걸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걔는 말할 상대가 나 뿐이었는지 쉬는 시간마다 나에게 오곤 했다.


그 무렵에는 소문도 대충알게 됐지만 난 그냥 친구였다.


걔에게 있어서 친구가 나 뿐이었던 것처럼, 내 친구도 걔 뿐이었으니까.


걔도 분명 그런 걸 느끼고 안심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족 얘기는 안했다.


아마 나도 걔도 의도적으로 피했을 것이다.


사이가 좋아지고 나서도 여전히 걔네 엄마의 소문은 들려왔다.


밤에 걔네 집 근처로 가면 이상한 소리를 지른다는둥,


길고양이를 잡아서 집안으로 끌고가는 걸 봤다는둥,


사이비 종교에 푹 빠졌다는 둥,


걔가 편모가정인 건 엄마가 아빠를 자살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라는 둥둥...



뭐가 진짜고 뭐가 살이 붙은 건지 판가름하기도 어려운 것들이었다.


어쩌면 아무 근거 없는 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문보다 훨씬 무서운 걸 걔네 집에서 봐 버렸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 아이가 독감으로 학교를 쉬었다.


학교를 쉬는 건 처음이라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학교는 좀 외롭다고 생각하던 찰나,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수업중에 나온 프린트를 가져다 주면 되는 것이다.



집 방향이 반대인 그 아이에게는 원래 다른 애가 프린트를 가져다 주게 돼 있다.


재수없게 거기에 걸린 남자애는 흔쾌히 나한테 그 역할을 양보했다.


"너네 엄청 사이 좋네. 사귀는 거 아냐?"


남자애는 실실 웃었지만 내심 꽤 안심했을 것이다.



선생님한테 들은 주소대로 그 아이네 집에 가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프린트를 가져다 주겠다고 생각한 건 정말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친구의 집이 보고 싶다. 설마 정말로 소문대로는 아니겠지.



하지만 막상 가게 되자 내가 한 행동이 친구를 배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을 직접 한 적은 없지만 그 아이는 자기 가족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게 틀림없다.


나에게는 더욱 더.


후회됐지만 중요한 프린트도 있어서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동안 걸어서 그 아이네 집에 도착했다.


조금 작은 단독추택. 약간 낡았지만 주위와 비슷한 평범한 집이라서 나는 자신감을 조금 회복하고 심호흡을 한 후 인터폰을 눌렀다.


2층 창문이 열렸다. 친구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니라는 점에 나는 약간 안심하고 친구가 나오는 걸 기다렸다.



스윽- 탕.


장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다.



왜 그런 소리가 나나 싶었지만 바로 문이 열리고 친구가 나왔다.


독감은 아직 안나았는지 안색이 안좋다.


웬일로 왔냐고 묻기에 프린트를 가져왔다고 했다.


친구의 말투나 목소리는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안심하고 프린트를 줬다.


빨리 나으라느니 뭐라느니 두세마디 하고서 친구는 2층에 올라갔다.


아무 일 없이 프린트를 가져다줄 수 있어서 안심한 나는 집으로 가려고 했다.



집을 나서다가 어떤 것을 눈치챘다.


현관 바로 왼쪽 방 창문 커튼이 열려있었다.


아까 들은 장지문이 있는 방인가 싶어 슬쩍 들여다 봤다.


실수였다.



다다미방 가운데서 체구가 작은 여자가 양손으로 뭔가를 치켜 들고 휘청대며 서있었다.


꼭 전구를 갈아끼는 것처럼.


손에 들고있는 건 고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개였을지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시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무서워져서 나는 냅다 달렸다.


그 때 뒤에서 커튼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다음 날 친구는 학교에 왔다.


나는 어제 본 게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끙끙 앓았다.


친구는 평소와 똑같아서 나는 어쩌면 정말로 전구를 가는 걸 보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있지, 엄마까지 감기에 걸렸어. 나한테 옮았나봐. A는 괜찮아?"


간접적이긴 했지만 친구가 엄마 얘기를 입에 담는 건 처음이라 놀랐다. 상당한 위화감이 있었다.



그리고 4교시에 친구는 쓰러져서 보건실에 갔다.


억지로 학교를 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지만 열이 38도까지 올라 꽤 위험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친구는 선생님이 데려다주겠다는 것도 거절하고 혼자서 걸어갔다.


친구를 걱정하다가 어떤 안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억지로 학교에 온 게, 학교를 쉬면 내가 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아귀가 들어맞았다.


오늘 엄마 얘길 한 건 내 신경을 돌려놓기 위해서인가 하는 식으로


안좋은 생각은 멈추질 않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어제 들은 커튼 소리는 어쩌면 2층 창문에서 날 지켜보던 친구가 커튼을 닫은 걸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을 품으면서도 지금까지처럼 우리는 친구였다.


그 여자가 뭐였건 간에, 친구는 내 좋은 친구였다.


들키고싶지 않아 하면 묻지 않는다.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2월 어느 날, 친구가 또 학교를 쉬었다.


선생님에 의하면 또 감기라고 한다.


반에서는 우리가 커플 취급 당해서 선생님은 당연한 듯 나에게 프린트를 넘겼다.



나는 가기 싫지만 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어서 저번처럼 터벅터벅 친구네 집으로 갔다.


우편함에 넣는게 친구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웅크려 앉아있었다.



친구였다.


깜짝 놀라 물어보자 친구는 창백한 얼굴로 날 보고 비슬비슬 웃었다.


"A가 프린트 가져다 줄것 같아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쨌든, 고마워.: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



친구는 나한테서 빼앗듯 프린트를 가져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 순간, 갑자기 프린트로 입을 막고 토했다.


"괜찮아, 난 진짜 괜찮아."


친구는 다시 쭈그려 앉았다. 프린트는 토사물로 더러워지고 옷에도 좀 튀었다.


"괜찮긴 무슨, 됐으니까 여기 있어."


이렇게 된 이상 어쩌구 저쩌구 할 수가 없었다.


현관 문 안에 고개를 들이밀고 친구네 엄마를 불렀다.



"저기요~ 아무도 안계세요~?"


"A, 제발. 그만해."


친구는 울먹이며 말렸지만 나는 갑자기 솟아난 우정에 불타는 중이었다.


이런 친구를 놔 둘 수는 없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건 얜 내 친구니까. 하는 식으로.



아무도 안 나와서 나도 짜증이 났다.


이런 상태인 친구를 두고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었다.


"집에 좀 들어갈게."


"안돼!"


말리는 친구 말도 무시하고 나는 집에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아무 소리도 안났다.



어쩔 수 없이 토해놓은 것만이라도 치우려고 화장실같은 데로 들어갔다.


그 순간 무슨 소리가 들렸다. 복도 왼쪽. 장지문으로 닫힌 방이다.


역시 누가 있구나. 무서울 게 없던 나는 주저 없이 장지문을 열었다.



정황상 친구네 엄마같은 여자가 있었다.


전과 같은 자세로.


마찬가지로 죽은 고양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세가 하나도 신경 안쓰일만큼 훨씬 이상한 게 그 방에 있었다.


나한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걔네 엄마의 손에 들린 고양이를 따라 내 시선은 천장으로 올라갔다.





천장에는 커다란 얼굴이 있었다.


눈, 코, 입만 있는 것이었다.


머리카락도 눈썹도 없이, 그저 살덩이로 된 가면을 붙인 것처럼 찰싹 붙어있었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사태에 이해를 못한 나는 소릴 지르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걸 멍하니 지켜봤다.


눈썹도 머리카락도 없는 얼굴은 성별조차 알 수 없었다. 무감정한 눈은 그저 바닥을 보고 있었다.



꼼짝도 못하고 그걸 쳐다보던 나한테 친구네 엄마가 타박타박 걸어와서


"자"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고양이 시체를 나한테 내밀었다. 거기서 한계를 초월했다.



소리도 못 지르고 나는 문을 열고 현관을 뛰쳐나왔다.


밖에 있던 친구는 내 얼굴을 보고 모든 걸 깨달은 것 같았다.


"A, 아니야! 저건 그냥 물건이야! 우리 엄마가 좀 이상해, 엄마가 이상한 것 뿐이야!"


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도망쳤다.



친구를 두고 도망친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것은 만들어낸 뭔가가 아니었다.


장지문에서 도망치기 직전에 천장의 얼굴이 눈을 깜빡이는 걸 봐버린 것이다.



다음 날부터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지금은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너무 무서워서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었다.


그 후, 나는 그 친구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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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신기한 힘

번역 괴담 2017. 6. 14. 23:49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겪은 신기한 일.


엄마는 동북쪽 시골 마을 출신이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아직 집집마다 전화가 없었고, 유일하게 좀 사는 엄마네 집에만 전화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에게 전화가 오면 부모님한테 불려서 그 사람을 부르러 가는 게 꼬마들이 할 일이었다.




어느날 밤 늦게 전화가 와서 조금 멀리 사는 의사를 부르러 가라고 했다.


당시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초롱불을 들고 의사를 부르러 갔다.




원래 아는 길인데 정신이 들자 묘지에 있었다.


당시의 묘지는 지금처럼 거창하게 묘석이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난한 집에서 흙을 덮고 그 위에 돌을 얹어 표시만 겨우 한 것도 있었다.




당황했던 엄마는 그런 돌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일어나려고 해도 발목이 무거워서 일어날 수 없었다.


등롱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흙이 부드러운 곳에서 하얀 손이 빼꼼 튀어나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그만 등롱을 던져버리고 필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해도 손은 발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엉엉 울고 있을 때 멀리서 한 노파가 다가와 "왜 그러니, 괜찮아?"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발이... 손이..." 그렇게 설명하려고 하자 붙잡고 있던 손이 스르륵 없어지고 땅에는 구멍조차 없었다.


노파는 "이제 괜찮단다."라며 안아서 일으켜 세우고 엉엉 우는 어머니와 함께 의사네 집 근방까지 같이 갔다.



의사네 집의 불빛이 보이는 곳 즈음에서 "그럼 나는 이제 가 보련다." 라며 그대로 돌아갔다.



썩 밝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는 사실과 왼손에 심한 화상자국이 있다는 것밖에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엄마는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 노파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런 사람은 마을에 없었기 때문에 혹시 수호령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듣고 삼촌 집에 갔다. 


할머니는 환갑 넘어서 할아버지와 이혼하고, 아내와 자식이 야반도주한 삼촌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한때는 우리집에서 같이 살았지만 아이가 셋이나 있으니 더 이상 폐를 끼칠 수가 없다며 삼촌네로 간 것도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볼 기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 때 5년만에 만난 것이었다.



이제는 의식조차 거의 없이 바싹 말라버린 할머니를 보고 엄마가 그 팔을 자기도 모르게 꼭 붙잡았을 때, 문득 이전엔 없었던 화상 자국을 알아차렸다.




삼촌에게 물어보자 2년쯤 전에 화상을 입어서 그 흉터가 남은 것이라고 했다.


그걸 보고 "아, 그 때 도와준 건 할머니였구나." 하고 묘하게 납득해버렸다고 한다.



할머니에게는 조금 신기한 힘이 있다. 유령을 보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내가 어렸을 때 놀러갔더니 얼굴을 보자마자 눈병에 효험이 있다는 유명한 절에 가자고 하셨다.


그 후, 나는 매년 그 절의 부적을 받았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눈에 문제가 없었지만, 10년쯤 전에 왼쪽 눈이 뭔가 이상해서 병원에 가고 수술을 세 번 했다.


지금은 왼쪽 눈으론 사물이 뒤틀려 보이고, 낮아진 시력은 낫지 않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또, 동생을 데리러 갔을 때는 언뜻 보고 "이 아이는 절대로 바다에 가까이 데려가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부라서 바다에 안 갈수가 없으니, 늙은이의 헛소리라고 치부했지만 실제로 동생은 바다에서 사고로 죽었다.



할머니에게 뭔가 보이는지 물어봤더니 "아무 것도 안보여. 그냥 아는 게야."라고 말했다.



뭘 어떻게 아는 거냐고 물었더니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주먹밥을 봤을 때 '아 이건 주먹밥이다.' 하는 식으로 그냥 아는 거란다..." 라고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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