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카메라 가게에서 알바를 했었다.


가게에는 디카로 찍은 사진을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기도 있어서 대부분의 손님은 프린터기를 쓰러 온다.


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오는지 일일히 체크하진 않는다.


알바가 프린터기를 체크하는 건 이상이 생겼을 때, 용지를 채울 때, 그리고 가게 문을 닫을 때 혹시 잊은게 있나 확인할 때 뿐이다.


가끔 메모리 카드나 사진만 놔두고 갈 때면 1년정도 사무실에 보관했다가 주인이 안오면 폐기한다.




2주쯤 전에 혹시 잊은게 있나 싶어 체크 하는데 사진 10장 정도가 프린터기 안에 들어있었다.


웬 일인가 해서 봤더니 리스트컷 사진이었다.


머리도 길었고 팔도 여자 팔 같았다.




손목만이 아니라 온 팔에, 심지어 어깨까지 수없이 커터칼로 벤 것, 벤 상처, 베는 중의 사진처럼 피투성이인 것 뿐이었다.


얼굴이 안찍혀서 누군지도 알 수가 없고, 장난 친건가 싶기도 했지만 도저히 만들어낸 상처같지 않았다.



너무 역겨워서 점장에게 이야기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신고도 못하니 일단 내버려 두라고 했다.


거의 봉인하듯 신문지로 둘둘 감아서 창고에 처박아뒀다.




그 날 밤부터 꿈인지 뭔지, 자는 도중에 갑자기 눈앞이 새빨개지면서 밤중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이어졌다.


꿈 속에서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무섭다.


숨이 쉬기 힘들어지고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이런 상황이라 다시 잘 수도 없고, 덜덜 떨면서 아침을 기다리는 상태였다.


일주일쯤 이런 일이 계속돼자 잠에 들지도 못해서 수면제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점장에게 말하고 아르바이트를 좀 쉬기로 했다


의사에게 약을 받아오자 신기하게 뭔가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오랜만에 이불이나 말리고 뽀송뽀송하게 자려고 베개니 이불이니 죄다 베란다에 널고 마지막으로 요를 들어올렸을 때



요 밑에 리스트컷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은 한 장. 


커터칼로 자르고 있는 사진에는 터져나오는 피까지 찍혀있었다. 



당연히 나는 사진을 가져온 적이 없다. 온 몸이 덜덜 떨렸지만 반사적으로 사진을 찢고 불태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진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그 발로 가게에 뛰어가 창고에 처박아둔 사진도 전부 태웠다.



점장은 걱정했지만 갑자기 사진을 태운 사실에 대해서는 별 말 하지 않았다. 내심 본인도 기분은 나빴겠지.


"진작에 태울걸 그랬네."라고 했으니까.



다음 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지금은 새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자취방도 이사할 준비중이다.



어찌어찌 잠은 잘 수 있게 됐지만 그게 약 때문인지 약을 태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사진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따금 플래시백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사진이 장난이었는지, 누가, 무엇을 위해 찍었는지, 그 사람은 무사한지


그런 건 궁금하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잊고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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