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5


1주일쯤 전 일인데 마당에서 원숭이를 봤다.

근데 진짜 원숭이가 아니라 원숭이랑 사람의 중간쯤 되는 무언가.

이른 아침인지라 처음엔 꿈 꾼 줄 알았는데 대충 세수하고 다시 보니 진짜 있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 그대로 쓰러질 뻔했는데 원숭이랑 눈이 마주쳐버렸다.

원숭이는 슬쩍 웃더니 내 근처에 뭔가를 두며 말 했다.

유리 너머인데다 원숭이는 입을 벙긋대기만 했지만

텔레파시같은 느낌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이해가 됐다.

'산누키카노(?)'라는 것이 올 테니 오면 이걸 보여라.

직접 뽑았다고 하면 상대도 줄 테니 받은 건 마당에 묻어 버려라'

원숭이는 그러더니 잽싸게 담벼락을 넘어 갔다.

밖에 나가서 확인해 보니 원숭이가 뭔가를 두고 간 곳에 이가 떨어져 있었다.

인간의 이 같다(아마 어금니).


일단 지금도 보관은 해 뒀는데……뭐가 올지 무서워서 잠도 못 자겠다.



728 :665


또 받았다.

묻었다.



730


>>728 

산누키카노는 어떤 거였어?



731 :665


>>730 

사람이었어, 아마.

창문 너머로 얘기한 것 뿐인데 아직도 무서워.

산누키가 성이고 카노가 이름 아닐까.

그냥 할머니였어.


732


>>731 

만나게 된 상황을 자세히



736 :665


>>732 

낮잠을 자는데 할머니가 밖에 서 있었어. 원숭이랑 똑같이 마당에.

시골이라서 근처 사람들이 정원으로 올 때가 있긴 한데

그 사람은 척 봐도 낯선 사람인데다 옷도 고급스런 기모노였어.

잠이 덜 깨서 멍하니 있는데 할머니가 창문을 똑똑 두들겼어.

열어달라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나는 그 때 일어났어.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산누키카노라 합니다'래.

할머니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어.

그런데 서랍에 넣어둔 이를 꺼내서 보여주자 분위기가 바뀌었어.

"어찌 된 일입니까?"

"빼 왔습니다."

"정말로?"

"네"

그리고 잠시 말이 없더니 할머니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어.

소매 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발치에 뒀어.

놔둘 때 좀 구부정하게 숙였는데 그 자세 그대로

내 눈 앞에서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어.

밖에 아무도 없어서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마당에 나왔더니 역시나 이가 하나 있어서 씻고 사진을 찍어뒀어.

어두우면 무서워지니까 저녁 좀 전에 마당 빈 데다 두 개 다 묻었어.



741


>>736 

사람 아니네 ㅋㅋㅋ

근데 좀 궁금해지긴 한다야

괜찮으면 어느 지방인지만이라도 가르쳐 줘



749


>>736 

의문 투성이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네.

산누키면 佐貫(사누키)를 읽은 건가? 원숭이랑 할머니 정체가 궁금하네.

누구 아는 사람 없나.

구부정하게 숙인 채로 고속이동하는 건 예상을 넘어도 너무 넘어서 뿜었음 ㅋㅋ



751


산누키가 아니라 산노키 아니었을까?

엄마 고향에서 아이가 떼를 쓰면

노인들이 '산누키가 와서 잡아간다'고 겁줬던 게 생각나서.



753 :665


>>741>>749>>751 

지방은 토호쿠(東北). 

이제 완전 끝나긴 했을 텐데 신경이 안 쓰이냐면 거짓말이지.

지방 역사관같은 데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없나봐.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이상한 금기같은 거였으면 것도 싫고……

너무 파헤치기보단 아무 일도 없기만 기도할래.

그런데 이른 아침에 부모님이 마당에서 죽은 참새를 봤대. 이를 묻은 곳 근처에서.

벌써 버려서 찍진 못했어.

뭐 찍으려고 했어도 틀림없이 말리셨겠지만.



766


>751쓴 사람인데.

어렸을 때 노인들한테 들은 얘기라 기억은 잘 안나는데

산노키라는 요괴? 오니같은 게 있어서 큰 소리로 우는 아이가 있으면 듣고 찾아온대.

오기 전에 울음을 그치면 다행이고, 안 그치면 표식을 남겨.

밤이 되면 산노키는 표식을 더듬어 와서 아이를 납치하려 한대.

문단속을 잘 하면 괜찮지만 창문이나 문이 열려있으면 잡혀가니까 조심할 것. 이래.

납치를 안 해도 표식이 있으면 병에 걸리니 뭐니 하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아.

동네 청소할 때 이를 물어봤었어.

할머니 이름이 휘라서. 

'남한테 얘기하면 불행이 퍼져가니 말하지 마'라고도 했고.

원숭이나 할머니가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어.


그래도 옛날엔 죽은 사람의 이를 하나 뽑아서 부적으로 삼는 습관이 있었대.

어디든 그런 건 아니었고 지금은 이어지지 않지만.

아마 원숭이는 조상님이나 다른 누군가의 사자(使者)였고 할머니한테서 지켜준 게 아닐까.


아줌마한테 '벌써 이름을 얘기 했어요'라고 했더니

'부적을 줄 테니 이름을 거꾸로 읊고 기원하면 액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들었어.



휘: 한자권에서 유래한 풍습으로 고인의 생전 이름을 부르지 않기 위해 따로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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