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나는 흔히 말하는 찐따였다.
완전히 외톨이는 아니고 이야기정도는 하지만 특별히 누구랑 모여다니지는 않는 준 찐따.
말을 걸면 대답은 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서지는 않았다.
왜 그렇냐면, 요는 남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반 친구들 이름도 못 외워서 친구들이 하는 얘기도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중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다들 그런 얘기에 푹 빠져서 대화에 섞여들 수가 없었다.
아마 나만 성장이 덜 된 것이었으리라.
다들 갖고 있던 휴대전화도 없어서 나는 완전히 뒤떨어진 아이였다.
우리 반에는 다른 애들이 피하던 여자얘가 하나 있었다.
딱히 성격이 모가 난 건 아니지만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안좋은 소문이 퍼져서, 남들 눈치를 보던 중학교때는 걔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찐따였던 나는 소문에 둔해서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걔가 말을 걸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걔는 말할 상대가 나 뿐이었는지 쉬는 시간마다 나에게 오곤 했다.
그 무렵에는 소문도 대충알게 됐지만 난 그냥 친구였다.
걔에게 있어서 친구가 나 뿐이었던 것처럼, 내 친구도 걔 뿐이었으니까.
걔도 분명 그런 걸 느끼고 안심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족 얘기는 안했다.
아마 나도 걔도 의도적으로 피했을 것이다.
사이가 좋아지고 나서도 여전히 걔네 엄마의 소문은 들려왔다.
밤에 걔네 집 근처로 가면 이상한 소리를 지른다는둥,
길고양이를 잡아서 집안으로 끌고가는 걸 봤다는둥,
사이비 종교에 푹 빠졌다는 둥,
걔가 편모가정인 건 엄마가 아빠를 자살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라는 둥둥...
뭐가 진짜고 뭐가 살이 붙은 건지 판가름하기도 어려운 것들이었다.
어쩌면 아무 근거 없는 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문보다 훨씬 무서운 걸 걔네 집에서 봐 버렸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 아이가 독감으로 학교를 쉬었다.
학교를 쉬는 건 처음이라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학교는 좀 외롭다고 생각하던 찰나,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수업중에 나온 프린트를 가져다 주면 되는 것이다.
집 방향이 반대인 그 아이에게는 원래 다른 애가 프린트를 가져다 주게 돼 있다.
재수없게 거기에 걸린 남자애는 흔쾌히 나한테 그 역할을 양보했다.
"너네 엄청 사이 좋네. 사귀는 거 아냐?"
남자애는 실실 웃었지만 내심 꽤 안심했을 것이다.
선생님한테 들은 주소대로 그 아이네 집에 가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프린트를 가져다 주겠다고 생각한 건 정말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친구의 집이 보고 싶다. 설마 정말로 소문대로는 아니겠지.
하지만 막상 가게 되자 내가 한 행동이 친구를 배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을 직접 한 적은 없지만 그 아이는 자기 가족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게 틀림없다.
나에게는 더욱 더.
후회됐지만 중요한 프린트도 있어서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동안 걸어서 그 아이네 집에 도착했다.
조금 작은 단독추택. 약간 낡았지만 주위와 비슷한 평범한 집이라서 나는 자신감을 조금 회복하고 심호흡을 한 후 인터폰을 눌렀다.
2층 창문이 열렸다. 친구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니라는 점에 나는 약간 안심하고 친구가 나오는 걸 기다렸다.
스윽- 탕.
장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다.
왜 그런 소리가 나나 싶었지만 바로 문이 열리고 친구가 나왔다.
독감은 아직 안나았는지 안색이 안좋다.
웬일로 왔냐고 묻기에 프린트를 가져왔다고 했다.
친구의 말투나 목소리는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안심하고 프린트를 줬다.
빨리 나으라느니 뭐라느니 두세마디 하고서 친구는 2층에 올라갔다.
아무 일 없이 프린트를 가져다줄 수 있어서 안심한 나는 집으로 가려고 했다.
집을 나서다가 어떤 것을 눈치챘다.
현관 바로 왼쪽 방 창문 커튼이 열려있었다.
아까 들은 장지문이 있는 방인가 싶어 슬쩍 들여다 봤다.
실수였다.
다다미방 가운데서 체구가 작은 여자가 양손으로 뭔가를 치켜 들고 휘청대며 서있었다.
꼭 전구를 갈아끼는 것처럼.
손에 들고있는 건 고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개였을지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시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무서워져서 나는 냅다 달렸다.
그 때 뒤에서 커튼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다음 날 친구는 학교에 왔다.
나는 어제 본 게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끙끙 앓았다.
친구는 평소와 똑같아서 나는 어쩌면 정말로 전구를 가는 걸 보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있지, 엄마까지 감기에 걸렸어. 나한테 옮았나봐. A는 괜찮아?"
간접적이긴 했지만 친구가 엄마 얘기를 입에 담는 건 처음이라 놀랐다. 상당한 위화감이 있었다.
그리고 4교시에 친구는 쓰러져서 보건실에 갔다.
억지로 학교를 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지만 열이 38도까지 올라 꽤 위험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친구는 선생님이 데려다주겠다는 것도 거절하고 혼자서 걸어갔다.
친구를 걱정하다가 어떤 안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억지로 학교에 온 게, 학교를 쉬면 내가 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아귀가 들어맞았다.
오늘 엄마 얘길 한 건 내 신경을 돌려놓기 위해서인가 하는 식으로
안좋은 생각은 멈추질 않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어제 들은 커튼 소리는 어쩌면 2층 창문에서 날 지켜보던 친구가 커튼을 닫은 걸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을 품으면서도 지금까지처럼 우리는 친구였다.
그 여자가 뭐였건 간에, 친구는 내 좋은 친구였다.
들키고싶지 않아 하면 묻지 않는다.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2월 어느 날, 친구가 또 학교를 쉬었다.
선생님에 의하면 또 감기라고 한다.
반에서는 우리가 커플 취급 당해서 선생님은 당연한 듯 나에게 프린트를 넘겼다.
나는 가기 싫지만 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어서 저번처럼 터벅터벅 친구네 집으로 갔다.
우편함에 넣는게 친구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웅크려 앉아있었다.
친구였다.
깜짝 놀라 물어보자 친구는 창백한 얼굴로 날 보고 비슬비슬 웃었다.
"A가 프린트 가져다 줄것 같아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쨌든, 고마워.: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
친구는 나한테서 빼앗듯 프린트를 가져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 순간, 갑자기 프린트로 입을 막고 토했다.
"괜찮아, 난 진짜 괜찮아."
친구는 다시 쭈그려 앉았다. 프린트는 토사물로 더러워지고 옷에도 좀 튀었다.
"괜찮긴 무슨, 됐으니까 여기 있어."
이렇게 된 이상 어쩌구 저쩌구 할 수가 없었다.
현관 문 안에 고개를 들이밀고 친구네 엄마를 불렀다.
"저기요~ 아무도 안계세요~?"
"A, 제발. 그만해."
친구는 울먹이며 말렸지만 나는 갑자기 솟아난 우정에 불타는 중이었다.
이런 친구를 놔 둘 수는 없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건 얜 내 친구니까. 하는 식으로.
아무도 안 나와서 나도 짜증이 났다.
이런 상태인 친구를 두고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었다.
"집에 좀 들어갈게."
"안돼!"
말리는 친구 말도 무시하고 나는 집에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아무 소리도 안났다.
어쩔 수 없이 토해놓은 것만이라도 치우려고 화장실같은 데로 들어갔다.
그 순간 무슨 소리가 들렸다. 복도 왼쪽. 장지문으로 닫힌 방이다.
역시 누가 있구나. 무서울 게 없던 나는 주저 없이 장지문을 열었다.
정황상 친구네 엄마같은 여자가 있었다.
전과 같은 자세로.
마찬가지로 죽은 고양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세가 하나도 신경 안쓰일만큼 훨씬 이상한 게 그 방에 있었다.
나한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걔네 엄마의 손에 들린 고양이를 따라 내 시선은 천장으로 올라갔다.
천장에는 커다란 얼굴이 있었다.
눈, 코, 입만 있는 것이었다.
머리카락도 눈썹도 없이, 그저 살덩이로 된 가면을 붙인 것처럼 찰싹 붙어있었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사태에 이해를 못한 나는 소릴 지르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걸 멍하니 지켜봤다.
눈썹도 머리카락도 없는 얼굴은 성별조차 알 수 없었다. 무감정한 눈은 그저 바닥을 보고 있었다.
꼼짝도 못하고 그걸 쳐다보던 나한테 친구네 엄마가 타박타박 걸어와서
"자"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고양이 시체를 나한테 내밀었다. 거기서 한계를 초월했다.
소리도 못 지르고 나는 문을 열고 현관을 뛰쳐나왔다.
밖에 있던 친구는 내 얼굴을 보고 모든 걸 깨달은 것 같았다.
"A, 아니야! 저건 그냥 물건이야! 우리 엄마가 좀 이상해, 엄마가 이상한 것 뿐이야!"
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도망쳤다.
친구를 두고 도망친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것은 만들어낸 뭔가가 아니었다.
장지문에서 도망치기 직전에 천장의 얼굴이 눈을 깜빡이는 걸 봐버린 것이다.
다음 날부터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지금은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너무 무서워서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었다.
그 후, 나는 그 친구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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