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취방을 구했던 건 소설가로 데뷔하고 몇 년 지났을 무렵이다.

디자인 전문대를 졸업하고 어째선지 소설가가 되서 단행본도 그럭저럭 정기적으로 내게 됐다. 몇 년 지나자 혼자서도 살 수 있겠다 싶어 의외로 계획 없이 본가를 나와 상경했다.
본가는 사이타마에 있어서 한 시간이면 도쿄에 갈 수 있었고, 회의 자체도 전화가 메인이었다. 원고는 퀵서비스와 메일로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편집자와 굳이 만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집을 나오고 싶었던 건 소설가라는 직업을 아버지가 전혀 이해해주지 않은데다, 엄청난 이웃집 소음 탓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동인활동을 하기 때문에 코미케에 가기 편하면 좋다는 이유였다.
가장 큰 이유는 친한 친구 집이 도쿄에 있어서 허구헌 날 놀러갔다가 자고 오는데, 집에 오기가 귀찮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친구 집 근처로 가기로 했다.
친구는 고쿠분지역 근처에서 룸쉐어 하고 살았다. 근처에서 자취하기엔 집세를 타협하기 어려워서 자전거로 왕복할 수 있는 거리 기준으로 찾았다.

다른 역에서 도보 14분 걸리는 목조 2층 맨션.
월세 6만 5천 엔인 원룸이었다.
사이타마였다면 6만 엔으로 꽤 큰 자취방을 구할 수 있었는데 원룸밖에 안되나 하면서도 애초에 '집' 자체에 집착이 없었기 때문에 첫 자취방으로 고른 곳에 불만은 없었다.

일본식 단칸방에 욕실과 화장실은 따로 있었고 채광도 좋았다.
근처에 슈퍼랑 편의점, 패밀리 레스토랑. 역 근처에는 책방과 문방구. 한 정거장 가면 고쿠분지고, 백화점이 있어서 뭐든 살 수 있었다.
본가에 살적엔 자전거 없이는 편의점도 못 가고, 역에 가려면 부모님한테 차로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할 만큼 걸어 다닐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입지는 꽤 좋았다.

중개해준 부동산업자는 예전에 살던 사람이 8년이나 살았다고 했다. 
난 어릴 때 이사가 잦아서 8년씩 산 적이 없었다. '대단하네, 엄청 살기 좋겠네.' 그렇게 생각했다.

사다리 침대와 컴퓨터 책상 그리고 책장을 넣자 단칸방은 삽시간에 복잡해졌다. 오타쿠라서 일단 책이 많았다.
하지만 첫 자취가 기뻐서 친구들도 막 불렀다.
고쿠분지 친구는 물론 신주쿠에 있는 학교 다닐 적 친구들하고도 자주 놀았다.
동인활동을 하려고 월 한 두 번 도쿄 빅사이트에 갔다.
인디 밴드 팬 활동을 시작하고 주 한 두 번 라이브 하우스에 갔다.
친구의 소개로 인쇄소 아르바이트도 했다. 지각에 조퇴를 밥 먹듯 하고 인쇄 일이나 동인지 입고시기가 코앞인데도 갑자기 쉬는, 끔찍한 근태였지만 인쇄소라는 업무 특성도 있고 사장님도 이해해줬기 때문에 잘리지도 않고 편하게 일했다.

늘 외출 중이었지만 우리 집이 정말 좋았다.
아주 편하고, 집에 있을 땐 '아무 데도 안 가고 계속 집에 있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8년이나 산 것도 이해가 된다. 일단 편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적지근한 늪에 잠겨가는 편안함과 비슷하다.

바쁘고 즐겁게 살다가 내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걸 깨달은 건 그 집에 산지 딱 1년쯤 됐을 무렵이었다.
아니, 나중에 생각하다가 '그 때였나' 싶었던 것뿐이지 당시엔 전혀 자각이 없었다.

이사한지 1년이 넘었는데 전문대 시절 친구가 '이사 선물'이라며 예쁜 하늘색 부엌 매트를 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왜 지금? 그리고 왜 이렇게 눈 아픈 파란색?'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맙게 받아 부엌에 깔았다.

그 무렵, 사이타마의 애인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한참 지났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
우울증 약 부작용으로 살이 찌고, 웃으면서 부정적인 말만 하니 말이 안 통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실제로 연락을 끊었다. 다행히 이사한 곳과 하는 일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도망칠 수 있었다.

일할 때도 그랬다. 편집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듣기 싫은 소리를 쏟아 부었다. 어떻게든 참고 웃어넘기려고 하다 보니 전화가 무서워졌다.
내 이야기를 고의로 비비 꼬아 인터넷에 올리고 '이런 소릴 들었어요.' 라며 이르려고 일부러 전화를 해서 정말 무서웠다.
편집자는 곧잘 웃으면서 죽으라고 했다. 엄마는 '남한테 죽으라고 하면 안 돼'라고 교육해서 매번 괴로웠다. 나 자신에게 별 것 아니라고 인식시키려고 일부러 죽으라는 말을 하게 됐다. 금세 말버릇이 됐다. 아직도 툭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매번 마음이 아파진다.

즐겁고 괴롭고 안 괴로운 척을 하며 정신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노골적으로 건강이 안 좋아졌다.
내내 37도가량 미열이 나고, 가끔 38도를 넘어 39도에 가까운 고열이 났다가, 이유 없는 복통에 시달리는 등, 말 그대로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심할 때는 너무 아파서 기절할 정도였다.
어느 병원을 가도 어째선지 제대로 진찰해주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구급차를 불러도 '이정도로 구급차 부르지 마세요!' 라는 간호사에게 혼나고. 그래도 너무 아파서 다른 병원에도 갔지만 정말 어째서인지 거의 모든 병원에서 검사는커녕 약도 안 줬다. 어쩔 수 없이 약국 진통제를 계속 먹었다.

심할 때는 하루에 10개 넘게 먹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영수증 정리할 때 진통제 48개 들이를 주에 2개씩 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통증과 열 때문에 일도 안 풀리고, 좋아하는 라이브나 동인 이벤트를 가다가도 몇 번씩 길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때로는 앉는 것도 고통스러워 바닥에 널부러지기도 했는데 주위 사람은 딱히 걱정해주지 않았다. 별 희한한 짓을 한다고 혼나거나, 무시당하거나, 혐오 당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이지, 왜 아무도 안 도와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병원에 갔다는 얘기, 제대로 진찰 안 해줬다는 설명을 해도 믿기는 커녕 '네 잘못이겠지'라고 혼났다.
틀림없이 당시의 내 상태가 어지간히 안 좋아서 그냥 미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당시의 기억이 흐릿해서 사실은 걱정해준 사람이 있었던 걸 잊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 일들은 기억에서 꽤 많이 사라져있다.

심신 모두 만신창이라 식욕도 전혀 없어서 매일 푸딩 하나만 먹었다.
저녁 즈음에 근처 편의점에 가서 하나 사고, 토하지 않게 하루 종일 천천히 먹었다.
더 이상 의자에 앉을 기력도 없어서 개복치라는 큼직한 앉은뱅이 의자를 사서 거의 눕듯이 지냈다. 무릎에 노트북을 대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개복치 주변에 빈 푸딩 껍데기가 굴러다녔다.

역시 미친 걸로밖에 안 보이네.

침대에서도 못 자게 돼서 개복치 위에서 큰 수건을 이불삼아 잤다.
사다리 침대를 못 올라갈 만큼 기운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또 하나의 큰 이유는 붙박이 벽장의 문이 침대에 있어서 내가 누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나는 벽장문이 거슬린다는 생각에 그걸 뗐다. 하지만 너무 커서 둘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대 위에 얹은 것이다.

쓰는 나도 이해가 안 된다. 당시엔 아주 당연했다고 해야 하나, 아주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면 웬 남자가 귓전에서 뭐라고 하는데 그게 시끄러워 잘 수가 없었다.
누가 있는 느낌은 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베개에 머리를 대면 남자의 말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내 집인데 누가 있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네, 그런 생각과 함께 침대에서 안 자게 됐다.

그렇게 살다가 열은 38도를 넘고선 내려가지 않고, 통증이 멎질 않아 계속 토하게 됐다.
어느 날 밤, 너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고통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전신에서 쿵쿵대는 욱신거림만이 이어졌다. 아, 이거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의외로 명확하게 죽음을 예감했다.
어렸을 때는 죽는 것, 혹은 죽음 그 자체가 무서워서 잠 못 드는 아이였는데 그 때만큼은 이 통증과 몸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참을, 몇 달째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고 싶었다. 그냥 자고 싶었다. 푹 자고 싶다. 지금 자면 두 번 다시 못 일어나도 되니까 일단 의식을 잃고 싶다. 자게 해줘.

그렇게 바라다가 잠들었다.
잠들었다기보단 기절했다.
깼다가 또 기절하기를 밤새 반복했다.
부엌에 벌러덩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 해 뜰 무렵이었다. 아, 안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기듯 밖에 나갔다.
사실은 구급차를 부르고 싶었지만 또 무서운 간호사한테 혼날까봐 열심히 집을 나서고 큰길로 갔다. 끙끙대며 택시를 잡았다.

택시 운전사가 몇 년간 만난 사람 중 가장 다정했다.
나도 모르게 계속 끙끙거렸는지 괜찮냐고, 천천히 갈지 몇 번이나 물어봤다.
차가 응급실 입구 근처에 도착하고서도 같이 가줄지 물어봤는데 어째선지 헤죽헤죽 웃으며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답하곤 혼자 걸어갔다.

아픈 건지 괴로운 건지도 모를 상태로 정말 기듯이 느릿느릿 복도를 걸어 접수처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나가던 의사와 간호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거기 있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나도 어째선지 의사 같은 사람들한테 '도와주지 않으려나' 하고 마음속으로만 바라고 말을 하진 않았다.
한참 걸려서 겨우 창구에 도착했다. 접수하고선 로비에서 또 기절했다.
간호사가 귀찮은 듯 여기서 자지 말라며 몇 번이고 깨웠다. 하지만 또 기절했다.

겨우 내 차례가 와서 진찰을 받았다.
더 이상 말할 기력이 없었지만 어찌어찌 상태를 말하자 의사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복부 초음파인지 뭔지를 보던 의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안색이 변했다.(아마도)
"보호자분 불러주세요."
라기에
"없어요."
라고 하자
"혼자 왔어!?"
비명처럼 소리 지른 건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간호사 두 명이 휠체어를 가져왔다.
"걸을 수 있어요" 내가 말했지만 "일단 앉아!" 라며 강제로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곤 중환자를 다루듯 천천히 검사실로 옮겨가선 더 자세히 검사했다.
다시 진료실에 가자 의사는 '바로 수술할 겁니다.'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뱃속에서 큰 종양이 터져 복막염이 됐다고 한다.

"당장 가족분 불러서 동의서를 써 주세요."
그래서 집에 전화했다.
내가 말을 제대로 못 했는지 엄마는
"집에 와서 이쪽 병원에서 수술할 순 없니?"
라고 했다.
아마 그 때 본가쪽 병원까지 갔다면 중간에 죽었을 것이다.

알바 하는 날이라 인쇄소에도 전화했다.
지금 수술해서 알바 못 간다고 했더니 사장님은 '에이~ 거짓말~' 이라며 믿어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연락을 돌리자 이번엔 휠체어가 아니라 수술대에 눕혔다.
정말로 바로 수술 안 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뒷일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간 중간에 옷을 갈아입은 것, 수술실에 간 것, 수술이 끝났다는 말과 함께 어디 갈 때 덜덜 떨며 헛소리처럼 춥다는 말만 반복한 기억이 난다.

어느 정도 의식이 돌아온 건 병실이었다.
몸이 이상하게 무겁고, 시야는 어둡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 팔에 링거가 달리고 배에는 농을 뺄 드레인이 꽂혔다. 소변관과 함께 등판에 진통제인 모르핀이 투여됐다. 고 한다.
아마 모르핀 때문인지 수술 후 며칠간 기억이 없다.

입원생활은 굉장히 힘들었다.
병원은 낡은데다 어둡고 냄새나고. 배는 아프지 다리는 붓지 등은 가렵지, 죽을 만큼 목이 말라도 물을 안 주고. 아빠가 왔나 했더니 '당신은 엄마가 돼서 딸이 아픈 것도 몰라!' 엄마한테 그렇게 말을 하지 않나. 뒤척이지도 못하는 게 괴로운데다 병실에 있을게 진절머리가 났다. 어찌됐건 매일같이 빨리 퇴원할 수 있기를, 내 방에 혼자 있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
이따금 이유 모를 발작이 일어나서 고열이 나는데도 온몸이 차갑고, 춥고 또 추워서 떨림이 멈추지 않는 공포에 공황이 온 게 제일 힘들었다.
좌약을 많이 맞았다.

한 달 가까이 입원했을 것이다.
그동안 엄마와 할머니가 내 방을 정리해줬다고 한다.
내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는데, 군데군데 토사물 흔적이 있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해서 빨래가 쌓여 있었는데, 다행히 푸딩 말고 음식을 먹은 적 없던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으로 청결한 걸 좋아하는 할머니가 치웠다니 엉망인 방에서 맘대로 뭘 많이 버려서 텅텅 비어있을 것이다.
각오를 한 나는 퇴원하고 오랜만에 내 집에 갔다.

택시가 집 앞에 서고 차에서 내렸다. 문득 건물을 본 나는 헉 하고 놀랐다.

"어… 나 왜 이런데 사는 거지…?"

건물이 기억하던 것과 달랐다.
자취는 굉장한 해방감과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했고, 집은 그 상징이었다.
목조집이지만 지붕은 어쩐지 멋지고 깔끔한, 좋은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초라했다.
판잣집 같았다.
그리고 어딘가, 어둡다.

이상하다, 아직 몸이 안 좋아서 마음까지 같이 어두운 탓에 그래 보인 건가.
다 나아서 퇴원한 게 아니라 통원치료를 하는 단계였던 나는 갸웃거리며 집에 들어갔다.
뭐든지 버려버리는, 깔끔한 걸 좋아하는 할머니 손에 걸려서 어떻게 변했을지 조심조심 들어간 집은 변함없다고 해도 될 만큼 어지러웠다.

책장에 다 안 들어가 근처에 흩어진 산더미 같은 책은 깔끔하게 쌓여있었고, 그 많던 빨래거리는 의류 정리함에 다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뭔가, 두서가 없었다.
가구, 커튼, 식기를 비롯한 모든 게 통일감이 없었다. 전부 '왜 이게 여깄지?' 하는 엄청난 위화감을 뿜고 있었다.

아니, 난 왜 여기가 편한 집이라고 생각했지?
공기는 텁텁하고 어둡고.
전부 엉망에다가 춥기까지 하다.

엄마와 할머니도 나를 걱정하긴 했지만 바로 본가로 돌아가셨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여길 뜨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안좋아 부동산에 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괴롭혔던 수수께끼의 발작도 이어져 밤은 고통 그 자체였다.
침대 위의 벽장문을 어떡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던 것 같은데…?

몇 달 후에 마침내 새 집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후에 하늘색 키친 매트를 준 친구를 만나 이사했다고 하자 친구가 말했다.
"왜 내가 누구한테 선물 잘 안하잖아."
맞아 안 하지. 쫌생이라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원래 선물을 주고받질 않잖아.
"근데 나오 방이 너무 무서웠어. 특히 욕실이나 부엌이 엄청나게 어둡고 추워서 밝은색 소품이라도 있으면 밝아질까 했거든…"

뭐야, 무서워져서 다른 친구들한테도 물어봤다.
"그게,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서 말 안 했는데 그 방 엄청 어두워서 무서웠어."
"맞아 놀러갔다가 오면서 그런 얘기 많이 했지."

뭐, 뭐야….

또 다른 지인과도 얘기했다. 멀리 사느라 우리 집에 온 적은 없지만 밖에서 몇 번 얼굴 보고 놀러간 적은 있는 사이였다.
이사하고 또 만났을 때 날 보고 굉장히 밝게 웃었다.
"아 다행이다, 오늘은 아무 것도 안 붙였네."
라고 했다.
어라, 화장 제대로 하고 왔을 텐데… 고개를 갸웃하자
"전에 봤을 때 남자가 두 명 붙어있었어요."
날씨 얘기라도 하듯 덧붙였다.
"둘 다 없어졌어요. 잘 됐네요."
난 심령현상을 믿지 않는다. 절대, 믿지 않는다.
"그래서 말해봤자 안 믿겠다 싶어서 아무 말 안 했는데."
…지금으로선 말해줬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자가 두 명 붙었으니 이사하래도 갑자기 이사할 순 없잖아요?"
거야 그렇지만.

본가를 나와 자취할 계기가 된 친한 친구도 한참 뒤에 그 얘기를 했다.
친구도 심령현상은 전혀 안 믿고, 자칭 영능력자 얘기가 나오면 슬쩍 웃으며 흐름을 바꾸는 타입이라 웃어넘기리라 믿었다.
실제로 웃어넘기긴 했다.
"그럴 리가 있나. 아 그래도 부엌이랑 욕실은 어두웠지. 아파트가 낡아서 전구도 낡은 거 아냐?"
이사할 때 전구가 없어서 전부 새것으로 끼웠어….
자주 고장 나서 생각보다 훨씬 자주 새걸로 바꿨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그 집에 왔던 친구들 모두, 100%가 어두웠다고 했다.
입을 모아 욕실이나 부엌이 어두웠다고 했다.
남자가 붙었느니 하는 소리는 당연히 빼고. 어두웠냐고 묻자 어둡고 무서웠다고들 답했다.
유도심문인가 싶어 저번 방 어땠냐고 물어본 사람들은 편하긴 했지만 빛이 잘 안 들었다고 했다.

코앞이 대로변이고 빛을 막을 것도 없는, 아주 빛이 잘 드는 집이었는데.

몇 년 전 근처에 갈 일이 생겨서 그냥 그 집 근처를 가 봤다.
아파트는 아직 그곳에 있었고, 전혀 무섭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집은 '굉장히 살기 좋았던 집'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구글 맵으로 집 주소를 검색하고 로드뷰로 봤다.
이상하다. 외관이 기억과 다르다.
파란 지붕에 진한 크림색 현관이었을 텐데, 전혀 다르다.
이사하고 꽤 지났으니 다시 칠했을 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 기억과도 다르다.
중개업자 이름이 들어간 판만 기억과 완전 같았다.

난 정말 그 아파트에 살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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