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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동침 드리머 2020. 11. 1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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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탓에 심장이 쿵쿵거려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잔 경험이 수도 없이 많음에도 도무지 졸려 오질 않았다.
"……저기, 멀었어?"
히츠지가 말했다.
"미안, 뭔가."
"긴장했어?"
그렇게 말하는 히츠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아서 부드럽게 들렸다.
"응…… 왜일까. 평소처럼 자면 되는 건데."
"숨 쉬는 타이밍을 맞춰보자. 천천히 숨을 쉬어봐. 편하게. 난 신경 안 써도 돼. 딱 붙어 갈 테니까."
"알겠어. 그럼…… 갈게."
사야는 호흡에 의식을 집중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히츠지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온다. 사야를 따라 들이쉬고, 내쉬고…….
커튼을 닫고 전등을 끈 방, 시계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힌다. 긴장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 같긴 해도 졸음은 한참 멀리 있다.
히츠지가 쿡쿡 웃더니 고요히 속삭였다.
"옆에서 꼬물거리니까 하나도 안 졸려."
"미안."
"자장가라도 불러볼래?"
"에~……"
"에~는 무슨. 진짜 날 재우려는 거 맞아?"
"맞아…… 잠깐만 있어봐……"
사야가 잠의 입구를 찾으려 하는 중에 히츠지가 모로 고쳐 누웠다.
"그럼 얘기 하자."
"무슨 얘기?"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슨 뜻이야?"
히츠지가 한숨을 폭 쉬었다.
"사야는 나이트랜드에 있을 땐 날 좋아하는데, 데이랜드에선 안 그러잖아."
"으, 응, 그렇지."
"지금도 그래?"
"엥."
"요샌 이름으로 부르니까 조금은 익숙해졌을까."
"익숙해졌다……기 보단"
사야가 우물거린다.
"아직 안 돼?"
"아니, 그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아 아니."
"반대라니……?"
당황한 사야를 놀리지도 않고 히츠지는 말을 흘렸다. 사야는 한숨을 쉰 후에 자백했다.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는데."
"응."
"언제부턴가 있지…… 너를 대하는 감정이, 나이트랜드랑 데이랜드에서 같아져서."
"응."
"지금도 그…… 좋아하는 것 같아."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앗~ 잠깐만, 아냐. 그런 얘길 하려고 온 게 아닌데. 미안, 잊어줘."
"잊을 리 없잖아. 난 기뻐."
히츠지의 어조는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것이었다.
"그, 그치만 히츠지는 그렇잖아, 날 좋아하는 건 나이트랜드에서만 그런 거잖아."
"아니. 난 처음부터, 나이트랜드건 데이랜드건 사야를 좋아했어."
"헤!?"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사야를 히츠지가 누운 채 치켜본다.
"……처음부터?"
"사야가 양호실에서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계속 좋아했어."
"엇, 앗, 그럼."
갑자기 나타난 건 히츠지잖아──. 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사야의 입에선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히츠지가 이어 말했다.
"내가 데이랜드에서 사야를 좋아하지 않는다곤 한 번도 말 안했는데."
"거짓말……"
어이없어하는 사야를 보며 히츠지가 킥킥 웃었다.
"정말이지 야박하긴. 네가 날 나이트랜드에서만 사랑하니까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치사해."
"안 치사해. 사야가 착각한 것뿐이지. 남 탓 하지 말라구."
말문이 막힌 사야의 등에 손을 대며 히츠지가 말했다.
"언젠간 전하고 싶었어. 말하길 잘했다. 사야가 털어놔줘서 나도 용기가 났어. 고마워."
"나, 나야말로, 고, 고마워……."
"정신 차려. 말투가 영 이상해."
히츠지가 우스워하며 말하기에 사야도 함께 웃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침대에 드러누워 서로를 마주보자 깔깔 웃음이 나왔다.
"정말, 조용히 해 줘. 잘 거 아니었어?"
"그, 그렇지. 진정하자."
심호흡 하려했지만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이래선 틀렸네. 바로 눕자."
"응."
둘은 다시금 천장을 향해 고쳐 누웠다.
"흐암……"
히츠지가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사야에게도 옮겨가, 큰 하품을 만들었다.
"……하으. 이젠 졸려?"
"하려던 말을 해서 안심이 됐는지 갑자기 졸려."
"나도……"
"먼저 자지 마. 사야가 재워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럴 거야……"
두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조용해지자 졸음이 물밀듯 다가왔다.
히츠지는 눈을 감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야."
"너도 잘 자, 히츠지──"



밝은 밤하늘 아래, 시트에 덮인 대지 위에 무수한 사람들이 잠들어있었다.
수정 알을 파괴한 순간 보인 풍경이 다시금 눈앞에 펼쳐졌다. 나이트랜드를 덮어왔던 모든 허식이 떨어져 나간 결과인 걸까. 의식을 잃고 잠든 사람들을 넘어 다니는, 코끼리를 확대한 것처럼 생긴 거대 수수가 활보하고 있었다.
시트 위에 내려선 나와 히츠지는 지평선까지 이어진 잠든 이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이걸…… 깨우러 가는 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지."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데."
"나이트랜드에선 상상력을 쓰는 거잖아. 다들 그렇게 가르쳐줬잖아."
나는 쪼그려 앉아 발치의 시트를 잡았다. 히츠지도 옆에서 따라했다.
"셋 하면 당기는 거다."
"알겠어."
"둘 셋……"
"셋!"
둘이 한 목소리로, 있는 힘껏 시트를 잡아당겼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잠든 사람들이 차례로 굴러간다. 번득 눈을 뜨자마자 그 모습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표정이 웃겨서 우리 둘은 깔깔 웃었다.
"다들, 일어나~~! 그만 자~~!"
히츠지가 비명 지르듯 폭소했다. 어느 틈엔가 우린 산처럼 커다래져서, 발밑으로는 미니추어로 변한 인류가 줄지어 나이트랜드에서 쫓겨나간다. 이상을 느낀 거대 수수가 다가오지만 시트의 파도에 다리가 걸려 도무지 이쪽으로 다가오질 못한다. 그 틈을 노려 우리는 시트를 무한히 잡아당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시트가 사라졌다. 대지는 매트리스 표면이 됐고, 잠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의 크기도 돌아왔다.
사라진 인간 대신 사방의 지평선에서 솟아나는 거대한 벽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무수히 많은 수수가 만들어낸, 난생 처음 볼만큼 거대한 무리다. 잠의 바다가 말라붙어 모든 수수가 우리 둘의 잠에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우와~ 장관이다."
히츠지는 기가 막힌 말투로 말했다.
"수수가 이렇게 많았구나. 이게 전부 우리 둘의 꿈속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이상한 느낌이야."
"나이트랜드가 이렇게 작은 건 사상 최초일 테니까 말야."
"이제 우리가 눈을 뜨면 수수가 전멸 당하는구나…… 똑똑하네, 사야."
"뭐 그렇지."
"란도, 카에데도, 미도리도── 이제 모두가 다시 슬립 워크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럴 거야."
"좋아, 그럼, 이제…… 일어날까."
달성감을 품으며 우리는 깨어나려고 했다.
"…………"
"…………"
"…………응?"
──깨어나는 건, 어떻게 하는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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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동침 드리머 2020. 11. 12. 00:47

17

현관을 연 사야를 맞이한 히츠지의 눈 밑에 커다란 다크서클이 자리해 제대로 못 잔 것이 일목요연했다.
"우와. 얼굴이 왜 그래."
사야의 말에 히츠지는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볼일인데?"
"할 얘기가 있어. 들어가도 돼."
"……상관은 없는데."
미심쩍어하면서도 히츠지는 사야를 집에 들였다. 집 안은 고요했다, 둘 외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히츠지 뿐이야?"
"응. 부모님은 본가에 피난하셨어. 부모님도 내 쿨쿨 파워를 잘 아시니까 자취생활을 만끽하는 중이지."
"그렇구나……. 우리 집이랑 반대네, 다 불면증이거든. 다음에 우리 집에 들려줘."
"상관은 없는데 가기가 힘들어. 그냥 걸어만 가도 차들이 전부 졸음운전을 하더라구."
그렇게 말을 하던 히츠지는 사야를 살펴보듯 고개를 갸웃했다.
"……사야는 안 졸려?"
"엄청 졸려. 그래도 아직 참을 만 해."
그렇게 말하다 하품을 해 버렸다. 내성이 있는 사야조차 이 꼴이니 네버 슬리퍼가 아닌 사람은 30초도 못 버티리라.
"흐음~. 뭐 너무 무리하진 마."
"나도 알아…… 하암."
히츠지의 방에 들어가자 침대 위에 죽 늘어선 인형들의 눈길이 환영했다.
"대충 앉아."
무뚝뚝한 말투로 한마디 던진 히츠지가 책상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사야가 바닥에 앉으려 하자 히츠지는 침대를 가리켰다.
"괜찮아?"
"특별히 봐 줄게. 걔들도 딱 하나라면 안아도 돼."
"알겠어. 그럼…… 실례합니다."
사야는 히츠지의 침대에 앉아 커다란 올빼미를 안았다. 보들보들한 타월 천에서 히츠지 냄새가 났다.
"그래서, 할 말은?"
"그 전에. 왜 말 안했어?"
"응?"
"집에서 못 나올 만큼 블랭킷 능력이 강해진 거. 다른 애들은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라서 충격 받았어."
"괜한 걱정시키기 싫어서."
"아무리 그래도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방금 만났으면 또 몰라도 이제는 그…… 왜…… 안 그렇잖아! 내 말이 틀려? 나만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 건…… 지금은 상관없잖아."
"상관 있어! 내 계획도 애들이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못 짜냈을 거라고!"
"계획이 뭔데."
"현재 상황을 타파할 계획. 수수를 해치우고 편하게 잠들기 위해."
"흐음~……?"
히츠지의 못미더워하는 눈빛이 재촉하자 사야는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계속 히츠지가 나를 잠 속으로 데려갔잖아? 그걸 반대로 해보면 어떨까 해서."
"응? 그게…… 무슨 뜻이야?"
"히츠지가 나랑 동침하는 게 아니라, 내가 히츠지랑 동침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히츠지의 '블랭킷'이 된다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불면증에 시달려."
"응?"
히츠지가 눈을 끔뻑인다.
"어어…… 일단 지금도 상당히 그렇지 않아?"
"아직 부족해. 더 뺏는 거야. 완전히 잠들지 못하게. 미안한 소리지만 수면제로 잠드는 불면증은 가짜야. 진짜 불면을 가르쳐 주는 거지."
급하게 말을 쏟아내는 사야를 히츠지가 수상한 사람 보듯 쳐다봤다.
"사야, 대체 언제 인류를 배신한 거야?"
"영원히 그러겠다는 게 아냐. 일시적으로. 아마. 조금만……"
"벌써 수상해지기 시작했는데."
"나이트랜드는 전부 이어졌다고 했었잖아. 수수는 인간의 잠을 매개 삼아 늘어나니까 잠이 없으면 살 수가 없지. 세상은 누가 일어난대도 다른 누가 자니까 잠에서 잠으로 계속 옮겨가면 영원히 존재할 수 있어. 보통은 말이야."
"그 잠을 없애버리자고? 그런 게 가능해?"
"혼자선 못 해. 하지만 히츠지한테는 블랭킷 능력이 있잖아. 내 불면을 히츠지의 능력으로 모두에게 나눠주는 거야. 나이트랜드에 남은 잠은 나랑 히츠지 것뿐이야. 그러면──"
"그러면……?"
"우리 말고 자는 사람이 없으면 수수는 나랑 히츠지의 잠 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잖아. 그렇게 되면 우리 둘이 일어나는 거야."
"일망타진 할 수 있다는 거구나. 고민좀 했겠네."
히츠지가 고요하게 말했다. 불안해진 사야는 말을 더했다.
"물론 말이지, 그래도 되나 싶은 생각은 해. 전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봐. 안 그러면 모두가 꿈이 돼 버려──"
히츠지가 일어나 사야에게 다가갔다.
당황하는 사야 옆, 침대에 앉았다. 매트리스가 가라앉자 둘의 어깨가 닿았다.
"히츠지?"
"알겠어. 하자."
"괘…… 괜찮아?"
"사야가 꺼낸 계획이잖아. 그래서 어떡하면 돼? 난 매번 먼저 자서 누가 재워주는 건 처음이야."
히츠지가 침대에 누워 사야를 올려본다.
"동침해줘, 사야."
"으, 아, 알겠어."
사야는 점잖게 히츠지 곁에 누웠다.
전 인류의 잠을 빼앗고, 둘이서 푹 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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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동침 드리머 2020. 11. 12. 00:46

16

"사야, 어디 가."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려던 사야는 그 물음에 뒤를 돌았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키가 벽에 기대 나른한 표정으로 사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 밑엔 큼직한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머리카락도 퍼석댔다.
"언니…… 괜찮아?"
"엉망이지. 너는?"
사야가 고개를 가로젓자 아키는 괴롭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가 안됐어. 잠을 못 자는 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사야는 그저 끄덕였다. 언니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지 며칠이 지났다. 아키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도 그랬다. 아직 짧은 시간이라면 수면유도제로 강제로 잠든다지만, 약의 효과도 점차 약해지는 듯했다.
"어디 가."
아키가 다시 물었다.
"친구 보러 가."
"아, 그 낮잠 동호회랬나. 걔들은 좀 잔대?"
"아니…… 요샌 그다지."
사야가 말을 흐리자 아키는 느릿하게 끄덕인다.
"불쌍하다, 진짜. 다들 편하게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응."
"나갈 거면 조심해. 너도 못 자서 좀 멍하니까."
그러더니 뒤로 돈 아키의 목과 어깨에 수수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찝찝해진 사야는 시선을 돌리고선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꿈의 빈곤화── 라는 단어가 있다고 미도리가 말했었다.
잠에서 깼을 때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뜻이다. 슬립 워크를 시작하고서부터 명석한 상태로 꾼 꿈은 확실히 기억했는데, 지금은 나이트랜드에서 자기들이 뭘 했는지 거의 다 잊게 됐다.
또 한편, 격렬한 데자뷔에 시달리게 되기도 했다. 간신히 남은 토막 난 꿈의 기억은 예전에도 체험한 것만 같았고, 루프에 사로잡혀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다 피폐한 상태로 눈을 뜨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이트랜드와 데이랜드를 헷갈리는 경우도 점점 늘었다. 학교에서 걷다가 하늘을 날려고 바닥을 찼다가 고꾸라지거나,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를 무의식적으로 건너려 하는 등 오싹한 체험이 늘어나 수시로 손가락을 잡아당기는 게 꿈이 돼 버렸다.
다섯 명이 서로를 보듬어가며 슬립 워크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사태는 악화될 뿐이었다.
"우린 잠에서 방축(放逐)당하고 만거야──"
란이 툭 내뱉은 말이 현 상황을 그대로 가리켰다. 다섯 명의 슬립 워크 능력은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만신창이가 됐다. 히츠지의 블랭킷 능력은 효과가 불안정해져선 의도치 않은 상황에 동료들을 기절시켰다. 카에데의 변신도 제어가 안 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괴물로 변해 본인과 동료들 모두를 패닉 상태에 빠트렸다.
거기에 더해 평범한 수면조차 침식당했다. 꿈의 컨트롤을 완전히 잃고, 기억도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나이트랜드에 들어가는 건 공포임에 다름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상황은 명석하지 않은, 평범한 꿈에 돌아간 것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슬립 워커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나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동시에 데이랜드에 출몰하는 수수가 점차 늘어났다. 햇빛 아래를 헤매다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들러붙는 수수의 모습은 보기 싫어도 눈에 들어왔다. 그에 비례하듯 주위엔 수면장애가 늘어났다. 가족도, 학교에도 수수가 들러붙은 사람들뿐이다. 눈 밑에 다크서클을 만들곤 휘청거리는 사람, 갑자기 쓰러져 잠드는 사람, 악몽을 꾸곤 절규하는 사람……. 우려해왔던 폭발적 감염(아웃 브레이크)가 시작됐다. 이 마을을 폭심지 삼아 수수의 데이랜드 침략이 급속도로 진행돼 가고 있다.
사야 일행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의심은 짙어졌다. 수수는 '알'을 향한 관심을 미끼삼아 사야 일행이 나이트랜드와 데이랜드를 잇는 통로를 만들게 유도했으리라. '알'의 기억이 애매해졌던 사실조차, 아마도 주의를 끌기 위한 수작이었으리라. 수수가 이런 지혜를 갖고 있었음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은 사야 일행을 완벽하게 추월한 것이다.
외출하면 강제로 자기들이 일으킨 사태를 직면당하지만, 집에 있어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가족들이 죄책감을 자극한다. 마침내 버티지 못한 사야는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서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겨 오랜만에 사카이모리 침구점을 방문한 것이다.
창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기 발소리만이 들려오고, 천창에서 비쳐드는 빛줄기 속을 먼지가 덧없이 날아다녔다.
처음 여기 왔을 때 같다.
침실 중앙의 킹 사이즈 침대는 저번에 쓴 상태 그대로 방치된 것처럼 시트와 이불이 주름져있었다.
누가 있으면 조금은 신경이 분산될 줄 알았지만 기대가 빗나갔다. 도저히 성공하지 않는 슬립 워크에 마음이 꺾여 마침내 아무도 안 오게 됐다.
넓은 침대에 쓰러진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고요한 창고에 혼자 누워있자니 문득 기척이 느껴졌다.
따각따각, 따각따각 바닥을 치는 단단한 소리는 신발이 아니라…… 발굽 소리다.
산양을 타고 후드를 둘러쓴 남자가 선반 사이에서 나타났다.
"또 만났군, 네버 슬리퍼."
"이건…… 꿈?"
"꿈이나 현실, 어느 쪽이건 언젠가 모든 것은 꿈이 된다. 너희들은 놈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남자는 침대 앞에 딱 멈추더니 사야와 마주했다.
"수수놈들은 이런 식으로 슬립 워커들을 수도 없이 함정에 빠트려 데이랜드를 나이트랜드로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현실이었던 것이 꿈이 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운 데이랜드가 시작된다. 그리고 슬립 워커도 꿈이 되어 사라진다. 이전에 우리가 그랬듯. 그리고 이번엔 너희가 그리 됐듯이."
"그럼…… 당신도, 슬립 워커?"
남자는 후드 속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있던 데이랜드에서는, 난 CIA 몽견(夢見)부대 일원이었다. 'GOAT'라 불리던 팀은 세계 각지의 몽견 전승자와 협력해 조직적으로 수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우리 팀도 전부 당했다. 나도 나이트랜드를 헤매는 꿈의 잔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너희가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우리도…… 꿈이 된다고?"
"그래. 하지만 우리 때는 없었던 요소가 단 하나 있다. 그게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뭔데?"
"너다, 네버 슬리퍼."
남자는 안장 위에서 팔을 뻗어 사야를 가리켰다.
"너만이 기나긴 불면 속에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너만이 데이랜드에 나타난 수수를 볼 수 있다── 그건 즉, 너는 데이랜드와 나이트랜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쳐도── 나보고 어떡하라고.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어떻게 멈추면 되는데."
짜증내는 사야에게 산양 기수는 비밀처럼 속삭였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No one shall sleep)."

"호카게 양?"
누가 나를 부른 것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미도리가 사야를 보고 있었다.
"아…… 안녕."
"사야찌네. 잘 지냈어?"
미도리 뒤에서 카에데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둘 다 웬일로 온 거야?"
"호카게 양이야말로."
"난── 여기 오면 누가 있지 않을까 해서."
미도리와 카에데가 눈을 마주치더니 슬쩍 웃었다.
"우리도 그래. 그치 미도리."
"네."
"슬립 워크가 안 되는 건 알겠는데 말이지, 너네랑 못 만나는 게 영 쓸쓸해서."
"소파에 앉아요. 차 내 올게요."
미도리의 말에 사야가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봐도 산양 기수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현실에서 일어난 일일리가 없다── 정신을 차리려 했을 때 사야의 눈길이 바닥에 빨려들었다.
침대 옆 바닥, 콘크리트 표면에 발굽자국 네 개처럼 작은 패임이 있었다.
"사카이모리 양…… 이거 원래 있던 거였나?"
사야가 가리키는 곳을 미도리가 돌아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랬었나요. 팔레트 자국 같은데── 이게 왜요?"
팔레트 자국?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산양을 탄 남자가 거기 있었다는 생각보다는 합리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사야는 방금 겪은 체험을 되새겼다.
최근 들어, 아마 수수가 방해했기 때문에 사야 일행은 나이트랜드에서 멀쩡한 기억을 가져올 수가 없었지만 이번엔 명확한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눌러앉아 사라지질 않았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
사야의 혼잣말에 생각지도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투란도트'인가요?"
고개를 들자 선반 틈새로 란이 보이더니, 당연한 양 소파에 앉았다.
"선배, 왜 여기에."
"너희랑 똑같은 이유 아닐까?"
미리 짠 것처럼 미도리가 모두의 머그컵을 테이블에 두고 커피를 따르기 시작했다.
"투란도트가 뭐예요?"
"오페라예요. 옛날 중국의 투란도트 공주에게 구혼하는 왕자가 수수께끼를 냈어요. 자기 이름을 동틀 때까지 맞추지 못하면 결혼하고, 못 맞추면 결혼을 포기하고 목숨을 내놓겠다, 고. 그 때 공주는 백성들에게 왕자의 이름을 밝힐 때까지 아무도 잠들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
"엥, 너무하잖아!?"
카에데가 비난했다.
"너무하죠. 결혼하기 싫은 것도 이해되지만."
"악질에도 정도가 있지. 상관없잖아, 백성은."
"백성……이라."
사야는 테이블의 머그컵중 딱 하나 비어있는, 히츠지의 컵을 보며 중얼댔다.
"히츠지는 안 오는 걸까."
"그 아인…… 안 올 것 같아요."
란이 말했다.
"왜요?"
"그 아이의 블랭킷 능력은 원래부터 너무 강력했어요. 히츠지가 잠들면 의도하건 아니건 주변 사람들도 잠들어요. 그래서 주변에 아무도 없을 곳을 찾아 잤는데, 지금은 그런 수작이 안 통할만큼 강해졌을 거예요."
카에데가 이어 말했다.
"나도 걱정돼서 히츠지찌 집에 가 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 가까이 가기만 해도 위험해."
"어떻게 위험한데?"
"졸려. 엄청 위험해. 전보다 범위가 늘어나서 진짜 위험해. 지금의 히츠지찌에게 다가가고도 멀쩡한 건 네버 슬리퍼인 사야찌 정도일걸."
이야기를 듣던 사야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히츠지는 사야에게 그런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카게 양, 나중에 어떤 상태인지 보러 가주지 않을래요?"
사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카게 양?"
"응? 아, 미안……. 있잖아, 물어볼 게 있거든. 히츠지의 블랭킷 능력은 얼마나 널리 펼쳐질 수 있을까."
"콘파루 양은 늘 억제했는데, 하려고만 하면…… 얼마나 펼쳐질지 예상이 안 되네요."
"그래……"
세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 사야를 쳐다본다. 마침내 사야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들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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