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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동침 드리머 2020. 11. 1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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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탓에 심장이 쿵쿵거려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잔 경험이 수도 없이 많음에도 도무지 졸려 오질 않았다.
"……저기, 멀었어?"
히츠지가 말했다.
"미안, 뭔가."
"긴장했어?"
그렇게 말하는 히츠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아서 부드럽게 들렸다.
"응…… 왜일까. 평소처럼 자면 되는 건데."
"숨 쉬는 타이밍을 맞춰보자. 천천히 숨을 쉬어봐. 편하게. 난 신경 안 써도 돼. 딱 붙어 갈 테니까."
"알겠어. 그럼…… 갈게."
사야는 호흡에 의식을 집중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히츠지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온다. 사야를 따라 들이쉬고, 내쉬고…….
커튼을 닫고 전등을 끈 방, 시계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힌다. 긴장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 같긴 해도 졸음은 한참 멀리 있다.
히츠지가 쿡쿡 웃더니 고요히 속삭였다.
"옆에서 꼬물거리니까 하나도 안 졸려."
"미안."
"자장가라도 불러볼래?"
"에~……"
"에~는 무슨. 진짜 날 재우려는 거 맞아?"
"맞아…… 잠깐만 있어봐……"
사야가 잠의 입구를 찾으려 하는 중에 히츠지가 모로 고쳐 누웠다.
"그럼 얘기 하자."
"무슨 얘기?"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슨 뜻이야?"
히츠지가 한숨을 폭 쉬었다.
"사야는 나이트랜드에 있을 땐 날 좋아하는데, 데이랜드에선 안 그러잖아."
"으, 응, 그렇지."
"지금도 그래?"
"엥."
"요샌 이름으로 부르니까 조금은 익숙해졌을까."
"익숙해졌다……기 보단"
사야가 우물거린다.
"아직 안 돼?"
"아니, 그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아 아니."
"반대라니……?"
당황한 사야를 놀리지도 않고 히츠지는 말을 흘렸다. 사야는 한숨을 쉰 후에 자백했다.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는데."
"응."
"언제부턴가 있지…… 너를 대하는 감정이, 나이트랜드랑 데이랜드에서 같아져서."
"응."
"지금도 그…… 좋아하는 것 같아."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앗~ 잠깐만, 아냐. 그런 얘길 하려고 온 게 아닌데. 미안, 잊어줘."
"잊을 리 없잖아. 난 기뻐."
히츠지의 어조는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것이었다.
"그, 그치만 히츠지는 그렇잖아, 날 좋아하는 건 나이트랜드에서만 그런 거잖아."
"아니. 난 처음부터, 나이트랜드건 데이랜드건 사야를 좋아했어."
"헤!?"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사야를 히츠지가 누운 채 치켜본다.
"……처음부터?"
"사야가 양호실에서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계속 좋아했어."
"엇, 앗, 그럼."
갑자기 나타난 건 히츠지잖아──. 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사야의 입에선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히츠지가 이어 말했다.
"내가 데이랜드에서 사야를 좋아하지 않는다곤 한 번도 말 안했는데."
"거짓말……"
어이없어하는 사야를 보며 히츠지가 킥킥 웃었다.
"정말이지 야박하긴. 네가 날 나이트랜드에서만 사랑하니까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치사해."
"안 치사해. 사야가 착각한 것뿐이지. 남 탓 하지 말라구."
말문이 막힌 사야의 등에 손을 대며 히츠지가 말했다.
"언젠간 전하고 싶었어. 말하길 잘했다. 사야가 털어놔줘서 나도 용기가 났어. 고마워."
"나, 나야말로, 고, 고마워……."
"정신 차려. 말투가 영 이상해."
히츠지가 우스워하며 말하기에 사야도 함께 웃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침대에 드러누워 서로를 마주보자 깔깔 웃음이 나왔다.
"정말, 조용히 해 줘. 잘 거 아니었어?"
"그, 그렇지. 진정하자."
심호흡 하려했지만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이래선 틀렸네. 바로 눕자."
"응."
둘은 다시금 천장을 향해 고쳐 누웠다.
"흐암……"
히츠지가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사야에게도 옮겨가, 큰 하품을 만들었다.
"……하으. 이젠 졸려?"
"하려던 말을 해서 안심이 됐는지 갑자기 졸려."
"나도……"
"먼저 자지 마. 사야가 재워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럴 거야……"
두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조용해지자 졸음이 물밀듯 다가왔다.
히츠지는 눈을 감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야."
"너도 잘 자, 히츠지──"



밝은 밤하늘 아래, 시트에 덮인 대지 위에 무수한 사람들이 잠들어있었다.
수정 알을 파괴한 순간 보인 풍경이 다시금 눈앞에 펼쳐졌다. 나이트랜드를 덮어왔던 모든 허식이 떨어져 나간 결과인 걸까. 의식을 잃고 잠든 사람들을 넘어 다니는, 코끼리를 확대한 것처럼 생긴 거대 수수가 활보하고 있었다.
시트 위에 내려선 나와 히츠지는 지평선까지 이어진 잠든 이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이걸…… 깨우러 가는 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지."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데."
"나이트랜드에선 상상력을 쓰는 거잖아. 다들 그렇게 가르쳐줬잖아."
나는 쪼그려 앉아 발치의 시트를 잡았다. 히츠지도 옆에서 따라했다.
"셋 하면 당기는 거다."
"알겠어."
"둘 셋……"
"셋!"
둘이 한 목소리로, 있는 힘껏 시트를 잡아당겼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잠든 사람들이 차례로 굴러간다. 번득 눈을 뜨자마자 그 모습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표정이 웃겨서 우리 둘은 깔깔 웃었다.
"다들, 일어나~~! 그만 자~~!"
히츠지가 비명 지르듯 폭소했다. 어느 틈엔가 우린 산처럼 커다래져서, 발밑으로는 미니추어로 변한 인류가 줄지어 나이트랜드에서 쫓겨나간다. 이상을 느낀 거대 수수가 다가오지만 시트의 파도에 다리가 걸려 도무지 이쪽으로 다가오질 못한다. 그 틈을 노려 우리는 시트를 무한히 잡아당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시트가 사라졌다. 대지는 매트리스 표면이 됐고, 잠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의 크기도 돌아왔다.
사라진 인간 대신 사방의 지평선에서 솟아나는 거대한 벽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무수히 많은 수수가 만들어낸, 난생 처음 볼만큼 거대한 무리다. 잠의 바다가 말라붙어 모든 수수가 우리 둘의 잠에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우와~ 장관이다."
히츠지는 기가 막힌 말투로 말했다.
"수수가 이렇게 많았구나. 이게 전부 우리 둘의 꿈속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이상한 느낌이야."
"나이트랜드가 이렇게 작은 건 사상 최초일 테니까 말야."
"이제 우리가 눈을 뜨면 수수가 전멸 당하는구나…… 똑똑하네, 사야."
"뭐 그렇지."
"란도, 카에데도, 미도리도── 이제 모두가 다시 슬립 워크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럴 거야."
"좋아, 그럼, 이제…… 일어날까."
달성감을 품으며 우리는 깨어나려고 했다.
"…………"
"…………"
"…………응?"
──깨어나는 건, 어떻게 하는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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