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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동침 드리머 2020. 11. 1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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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뒹굴고 있는데 아래층에 있던 엄마가 불렀다. 입원중인 할머니 병문안을 갈 테니 운전을 해달라고 했다.
귀찮긴 했지만 요즘은 성적도 썩 좋지 않았으니 내가 약자 쪽이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계단을 내려가 엄마랑 집을 나섰다. 차고에 들어있던 차를 타고 시동을 건 다음 어찌어찌 안 긁고 도로로 나와 시내 쪽으로 운전한다. 벌써 후회된다. 왜냐하면 나는 면허가 없기 때문이다.
왜 운전하겠다고 한 걸까. 사고 난다, 무조건 사고 난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겁먹은 상태로 핸들을 잡고 어깨너머로 배운 운전 실력으로 비틀비틀 직진한다. 브레이크와 액셀이 뭔지는 겨우 알고 있지만 힘조절이 안된다. 액셀을 살짝 밟으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속도가 나기에 당황해서 브레이크를 밟자 덜컹대며 차가 섰다. 운전이 너무 어색해 주변 차들에게 방해된다는 점도 느껴진다.
비지땀을 흘리며 도강교에 들어섰다. 아주 복잡한 다리 위에서 수없이 많은 줄을 이루는 차들이 느릿하게 통과중이다. 그 때 마침내 운전이 끝장났다. 앞뒤 차에 끼어 도망칠 틈도 없는 상태로 액셀을 꽉 밟아버린 것이다. 공황상태에 빠진 나는 냅다 핸들을 꺾었다. 앞차와의 사고는 피했지만 대신 다리 난간에 들이박고 말았다.
그리 빠르지 않았던 게 불행중 다행이었지만 시동이 꺼진 차는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내 뒤로 차들이 점점 늘어서고, 교통정체가 커지는 장면을 절망적인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앞 유리를 타고 흐르는 수막이 바깥 풍경을 점점 흐리게 만든다.
뒷좌석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룸미러를 보자 거기 앉아있을 어머니가 없다. 비로 흐릿한 창밖 풍경으로 어딘가 낯익은 인영이 멀어져간다.
분명 내가 사고를 내서 화가 나서 간 것이다. 차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외로움을 느끼던 내 바로 옆에서 갑자기 유리를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옆을 본 내 눈앞에서 주먹이 다시 유리를 친다. 쾅쾅쾅! 겁이 나 몸을 빼자 이번엔 주먹이 아니라 공구──너트를 돌리는 긴 스패너가 떨어졌다. 유리가 산산조각나기에 나는 그만 얼굴을 가렸다.
"사야! 꿈이야!"
깨진 유리 틈으로 들어온 말에 안도했다. 차 밖에 서있던 건 히츠지였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은 유리조각을 스패너로 정리한다. 물속에서 부상한 것처럼 의식이 급속도로 명확해진다. 내 눈을 본 히츠지가 말했다.
"빨리 나와. 여긴 위험해."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문이 찌그러져 잘 안 열렸다. 나는 히즈지가 깨준 운전석 창문으로 기어나갔다.
쏟아진 유리조각 위에 섰다.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히츠지, 웬일이람. 이런 데서 만나니 기쁜걸."
"진짜, 정신 차려. 명석해지지 않으면 큰일이라구."
화난 듯 말하는 표정 또한 귀여워서 끌어안고 싶어진다. 행동에 옮기려는 찰나, 어디선가 기적(汽笛)소리가 들렸다.
다리 저편에서 내리는 비를 뚫고 갑판이 수없이 겹쳐진 거대 호화 여객선이 다가온다. 차가 꽉꽉 들어찬 다리를 향해 배가 똑바로 밀어닥친다. 세우려는 기미도 없이, 이윽고 뱃머리가 닿았다. 귀를 찢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꺾이는 다리 경계선에서 차가 후두두둑 떨어진다.
발밑이 급격하게 기울어지더니 나와 히츠지도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졌다. 반응할 틈도 없이 공중에 내던져지자 시커먼 수면이 들이닥친다.
커다란 물보라를 만들며 수면에서 고래만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원자력 잠수함과 인간을 합체시킨 듯한, 인어로 변신한 카에데였다. 가슴팍으로 나와 히츠지를 받아낸 카에데가 말했다.
"깨 있어~?"
"깨 있진 않겠지."
내 말을 들은 카에데가 커다란 입을 벌리며 웃으니 상어 같은 치열이 보였다.
계속 전진하던 호화 여객선이 마침내 다리를 끊었다. 철골로 만들어졌을 다리가 나무젓가락 공작품 같은 싸구려로 변하더니 점차 붕괴된다. 다리 위의 차들도 디테일을 잃어서 지금은 둥그렇게 말아낸 종잇조각으로만 보인다. 작게 튀어나온 다리가 버둥대는 것을 보고서야 저게 수수떼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늘에서 란과 미도리가 날아와 카에데의 양 어깨에 착륙했다. 란이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명석하죠? 서로의 언동에 주의하면서,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비상을 알려주세요. 수수가 우리를 암우(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리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음. 또는 그런 사람. 역주)로 만들려 하는 게 틀림없으니까."
미도리가 이어 말했다.
"기본적으로 제가 여러분을 모니터링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제가 당할 가능성도 높아요. 죄송하지만 저도 한 번씩 살펴봐주세요……."
"알겠어. 그럼 이제 어떡할 거야?"
히츠지가 물었다.
"수수들이 어디서 오는지 찾자. 그 녀석들은 어디에선가 나와 우리의 잠을 타고 데이랜드로 오고 있어── 그러니까 입구를 찾아서, 부순다."
강 속으로 무너지는 다리를 뒤로하며 우리는 강변에 상륙했다. 어딘가 자동차를 닮은 수수떼가 점점 다가와 다리가 있던 자리에 선다. 정체가 심해지자 앞쪽 수수가 밀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걸 다 해치우려면 뼈 빠지겠네~."
카에데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며 다리가 넷 달린 켄타우로스 같은 형태로 변신했다. 허공에서 긴 창을 만들어 수수떼를 찌르기 시작했지만 끝이 없어 보인다.
란이 카에데의 등을 타고 오르며 말했다.
"지금은 놔두죠. 여기서 시간을 뺏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아요. 녀석들이 오는 곳을 찾아내 본줄기를 끊어놓지 않으면 아무리 쓰러트려봤자 똑같아요."
미도리도 이어 말했다.
"저도 찬성이예요. 저희가 명석한 한 수수는 데이랜드에 들어올 수 없어요. 거꾸로 말하자면 꿈에 빠진 시점에 저희의 잠은 데이랜드행 통로가 돼 버리고요."
"있잖아, 혹시 수수 사냥에 빠지면 명석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내가 끼어들지 미도리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럴지도 몰라요. 수수를 잡는 행위 자체가 슬립 워커를 꿈에 열중하게 만드는 함정으로서 기능한다면──"
히츠지가 갸웃했다.
"그럼 우린 한참 전부터 함정에 빠진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수수의 행동이 변한 지는 얼마 안 됐으니까."
"저기 저기, 느긋하게 얘기해도 괜찮을까? 수수가 어디서 올지 찾으려면 일단 우리도 움직여야 하잖아."
카에데가 초조한 듯 말했다.
"그렇죠── 움직여요. 너무 떨어지지 말고 뭉쳐다니는게 좋겠어요."
"날 타면 돼지. 태워다 줄게!"
네 다리로 달려 나가는 카에데, 나는 당황하며 카에데에게 붙었다. 반쯤 잠수함일 때부터 따라온 금속 장갑에는 친절하게도 사다리와 난간이 있었다.
우리 넷을 등에 태운 카에데가 아스팔트 위를 달려간다. 마주치는 수수를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창으로 찌르고, 기계 발굽으로 짓밟으며 나이트랜드 심부로 달려간다.
황토색 흙 위로 마른 풀이 드문드문 박힌 황야에 한줄기 도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따금 수수떼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더니 스쳐 지나며 우리 뒤로 멀어진다.
머지않아 곧바르던 길이 구불대기 시작했다. 바닥의 경사도 험해져선 오르락내리락 커다란 파도모양을 이뤘다. 주위엔 나무가 늘어서 어느새 우리는 깊은 숲속을 달렸다.
우리는 카에데의 등 위에서 티 세트를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미도리가 입에 컵을 대더니 인상을 썼다.
"역시 틀렸어요. 맛이 안 나요."
"어느 틈에……. 사카이모리양 괜찮아? 명석해?"
"죄송해요, 명석한 상태예요. 이렇게 하면 맛으로 꿈속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구나."
"호카게 양도 괜찮으시면 드세요."
"난 됐어. 꿈속인데도 뭘 마시면 화장실 가고 싶어지더란 말이지."
"어, 저도 그런데."
란이 격렬하게 동의했다.
"맛은 안 나는데 요의(尿意)만 멀쩡하게 작동하는 건 불합리하지 않아요?"
"맞아. 꿈속에서 화장실이 나오면 긴장돼. 데이랜드에서도 순간적으로 헷갈릴 때가 있어서 무서워."
히츠지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얘기를 꺼내서일까, 카에데가 불안하게 외쳤다.
"너네 내 위에서 오줌 지리면 안 된다!?"
진심으로 겁먹은 듯 한 카에데의 말에 왁 웃음이 터졌다.
"카에데는 그런 경험 없어?"
"난 슬립 워크중엔 계속 변신한 상태라서 꿈인 줄 아는데. 너희도 변신하면 오줌 안 쌀걸?"
"카에데만큼 변신을 못하거든."
"다들 상상력이 부족하구나~"
자랑하듯 가슴을 내미는 카에데를 향해 히츠지가 입술을 비쭉 내민다. 삐친 표정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난 히츠지가 오줌 싸도 안 웃을 거야."
최고다. 내가 했지만 멋진 말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히츠지가 눈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 이 사람 지금 완전 명석하지 않은 것 같은데."
"늘 그렇지 않아? 그 양반."
"사야찌는 원래 이런 애 아냐?"
"호카게 양은 콘파루 양과 붙으면 대체적으로 이상한걸요."
제각기 내뱉은 평가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부끄러워진 내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이야~ 너무 그렇게 칭찬하면 부끄러운데."
"앗, 이 사람 틀렸어! 꽉 잡아!"
"야! 내 등에서 난리치지 마!"
꿈에서 마시는 차는 맛이 안 나는데 꿈에서 맞은 딱밤은 엄청나게 아팠다. 명석함은 되찾았지만 불합리하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소란스럽고 명석한 우리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꿈의 심부, 수수의 둥지──. 다들 서너 번씩 골고루 명석함을 잃을 뻔한 경험 후에 마침내 우리는 목적지를 찾아냈다.
숲 속의 절구모양 경사면 바닥에 샘이 있었다. 흔들리는 수면에 시선을 집중하자 수정을 깎아 만든 듯한 알이 잠겨있었다. 알은 안쪽에서부터 반짝이며 빛을 내고, 난반사되는 빛이 물 위에서 형태를 만들자, 제각기 다르게 생긴 수수가 되어 샘 밖으로 나온다. 큰 것, 작은 것, 아름다운 것, 추한 것. 수수들은 어색한 움직임으로 경사면을 기어올라 데이랜드를 향해 긴 여행을 시작했다.
"이게…… 수수의 둥지."
란이 중얼댄다. 우리는 한동안 매혹당한 양 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구조였군요."
"저 알에서 수수가 태어난다는 거야?"
"그래 보이는데…… 우리가 보는 게 정확한걸까?"
"나이트랜드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겉보기와 다를 때가 많지만 적어도 수수가 저기서 나온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어보여요."
"쪼-아, 그럼 저것만 박살내면 된다 이거지."
카에데가 육식동물처럼 으르렁댔다. 여기서 수수에게 가장 직접적인 원한이 있는 건 카에데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히츠지가 조용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옆을 보자 카에데의 등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몸을 내밀고 집어삼킬 듯 샘을 주시한다.
"히츠지? 위험해."
내가 안아들려 하자 히츠지가 툭 내뱉었다.
"저거야."
"응?"
"난, 저걸 찾고 있었어."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기억이 폭발했다.
알! 맞아! 히츠지가 나이트랜드에서 찾아헤메던 알이잖아!
모두에게 그토록 필사적으로 떠올리게 하려 했는데 어느 샌가 내가 잊어버렸다. 이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나는 히츠지의 주목을 끌려 했다.
"얘들아, 저거야! 내가 계속 말했던 거!"
"저도 방금 생각났어요……."
란이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나도야. 우린 분명히 이런 행동을 여러 번 되풀이했어."
"저도예요── 왜죠? 지금 저희는 명석한 상태일 텐데."
"이 기억만 이상해. 누가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잊혀져버려."
그렇게 말하며 다시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방금까지 우리를 인식도 못하는 것 같던 수수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고요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름답다고 형언해야할 달 아래 샘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날이 바짝 선 것으로 변했다.
"어쨌건, 목표물은 찾아냈다 이거네요."
우리는 수수들을 계속 쳐다보며 카에데의 등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저걸 부수면 모든 수수를 섬멸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또 잊기 전에 해치워버리죠."
"쪼-아, 그럼 간다."
카에데의 등 끄트머리에서 철컹철컹 대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해치가 열렸다. 그 안에서 미사일이 잇달아 발사되더니 수수들의 머리 위로 날아간다.
날아가는 사이에 우리도 싸울 준비를 했다. 란은 칠흑 같은 사자, 미도리는 북극곰, 나는 머리통이 몸통 앞뒤에 달린 영양을 탔다. 히츠지만이 도보에 금색 권갑을 찬 평소 모습이었다.
"돌격!"
란이 사브르를 치켜들며 외쳤다. 우리는 경사면을 달려내려 수수떼에게 파고들었다. 모두가 소리쳤다. 나도 엘리펀트 건을 갈겨대며 샘을 향해 달렸다.
수수의 파편을 폭풍처럼 흩날리며 샘에 처음으로 당도한 것은 히츠지였다. 걱정하는 낌새도 없이 물속에 들어가더니 수정 알을 향해 갔다. 방금 막 생겨난 수수가 금색 권갑에 두들겨 맞고 산산조각났다.
히츠지의 손이 물속에서 알을 건져 올렸다.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수정 알은 공기중으로 나온 순간 한층 더 밝게 빛났다. 빠져들듯 그것을 쳐다보는 히츠지의 표정에 위기감을 느낀 나는 외쳤다.
"히츠지! 부숴버려!"
순간적으로 흐릿해졌던 히츠지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수수떼가 히츠지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나는 방아쇠를 끊임없이 당겼다. 잠시간 나와 히츠지의 눈이 맞았다. 히츠지는 끄덕이곤 마주쥔 두 손을 쥐어냈다.
알이 빠지직 짜부러지며 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시야가 새하얗게 되곤 갑자기 의식이 멀어져──.



주위엔 온통 이음매 없는 침대가 펼쳐져있었다. 발치부터 지평선까지 끝없는 시트의 바다가 이어졌다.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있었다. 파자마를 입은 사람, 알몸인 사람, 아이마스크를 낀 사람, 묶인 사람, 피범벅인 사람……. 인종, 복장, 자세 모두 제각각인 남녀노소가 누워서 한사람도 빠짐없이 자고 있었다.
바로 곁에는 란과 카에데, 미도리도 자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을 보니 낯익은 사람들도 여기저기 섞여있었다. 같은 반 친구, 선생님, 그리고 우리 부모님과 언니.
수많은 사람들의 숨소리, 잠꼬대,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앓는 소리가 대기를 낮게 진동시켰다. 인류가 전부 잠든 듯 한 광경 속에 나와 히츠지 둘만이 잠들지 않고 서 있었다.
"히츠지,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내 물음에 히츠지도 어리둥절한 대답을 했다.
"모르겠어…… 여긴, 어디지? 나이트랜드, 맞지?"
나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저 위에 펼쳐진 것은 달과 별이 모두 빛나는 나이트랜드의 밤하늘이었지만 지금까지 슬립 워크를 하면서 이런 곳은 처음 봤다.
"아이조메 선배…… 카에데…… 미도리!"
말을 걸면서 흔들었지만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다.
"있지, 사야. 저게 뭘까."
히츠지의 말에 고개를 들자 어느새 밤하늘 한켠이 시커멓고 거대한 것에 가려 있었다. 수수, 인걸까── 전체적인 형태는 아리송했지만 코끼리 코처럼 부드럽게 꺾이는 장대한 구조물이 암흑 속에서 지면에 늘어져있었다.
그 코가 누운 사람들의 상공을 쓰다듬는 듯 움직임에 따라 반짝이던 무언가가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까 샘에서 나온, 수수의 씨앗같은 것과 비슷했다.
코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자 란, 카에데, 미도리의 모습에 변화가 생겼다. 주변에서 자는 사람들과는 달리 셋의 몸에서는 명확한 이미지가 빨려나갔다. 하늘을 나는 범선, 반짝이는 마법검, 낙타 대열, 종이비행기 편대, 달에 박힌 로켓, 색색깔 꽃다발, 교실에서 수업 받는 학생들, 눈 덮인 산맥……. 맥락없는 비전(vision)이 떠오르더니, 마치 청소기라도 달려든 양 빨려들어가 사라진다.
직감적으로 큰일 난 것 같았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소리 없는 외침을 터트리며 이미지의 수확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비정상적인 감각에 사로잡힌 나는 신음했다. 재빨리 만들어내려한 총, 내 공격성을 그대로 빚어낸 듯 한 야수의 이미지가 완전히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내 안에서 뽑혀나간다. 나뿐만이 아니라 히츠지도 비명을 질렀다.
"사야! 사야, 살려줘── 전부 뺏길 거야!"
겁먹은 히츠지를 끌어안으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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