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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동침 드리머 2020. 11. 1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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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 어디 가."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려던 사야는 그 물음에 뒤를 돌았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키가 벽에 기대 나른한 표정으로 사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 밑엔 큼직한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머리카락도 퍼석댔다.
"언니…… 괜찮아?"
"엉망이지. 너는?"
사야가 고개를 가로젓자 아키는 괴롭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가 안됐어. 잠을 못 자는 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사야는 그저 끄덕였다. 언니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지 며칠이 지났다. 아키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도 그랬다. 아직 짧은 시간이라면 수면유도제로 강제로 잠든다지만, 약의 효과도 점차 약해지는 듯했다.
"어디 가."
아키가 다시 물었다.
"친구 보러 가."
"아, 그 낮잠 동호회랬나. 걔들은 좀 잔대?"
"아니…… 요샌 그다지."
사야가 말을 흐리자 아키는 느릿하게 끄덕인다.
"불쌍하다, 진짜. 다들 편하게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응."
"나갈 거면 조심해. 너도 못 자서 좀 멍하니까."
그러더니 뒤로 돈 아키의 목과 어깨에 수수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찝찝해진 사야는 시선을 돌리고선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꿈의 빈곤화── 라는 단어가 있다고 미도리가 말했었다.
잠에서 깼을 때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뜻이다. 슬립 워크를 시작하고서부터 명석한 상태로 꾼 꿈은 확실히 기억했는데, 지금은 나이트랜드에서 자기들이 뭘 했는지 거의 다 잊게 됐다.
또 한편, 격렬한 데자뷔에 시달리게 되기도 했다. 간신히 남은 토막 난 꿈의 기억은 예전에도 체험한 것만 같았고, 루프에 사로잡혀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다 피폐한 상태로 눈을 뜨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이트랜드와 데이랜드를 헷갈리는 경우도 점점 늘었다. 학교에서 걷다가 하늘을 날려고 바닥을 찼다가 고꾸라지거나,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를 무의식적으로 건너려 하는 등 오싹한 체험이 늘어나 수시로 손가락을 잡아당기는 게 꿈이 돼 버렸다.
다섯 명이 서로를 보듬어가며 슬립 워크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사태는 악화될 뿐이었다.
"우린 잠에서 방축(放逐)당하고 만거야──"
란이 툭 내뱉은 말이 현 상황을 그대로 가리켰다. 다섯 명의 슬립 워크 능력은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만신창이가 됐다. 히츠지의 블랭킷 능력은 효과가 불안정해져선 의도치 않은 상황에 동료들을 기절시켰다. 카에데의 변신도 제어가 안 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괴물로 변해 본인과 동료들 모두를 패닉 상태에 빠트렸다.
거기에 더해 평범한 수면조차 침식당했다. 꿈의 컨트롤을 완전히 잃고, 기억도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나이트랜드에 들어가는 건 공포임에 다름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상황은 명석하지 않은, 평범한 꿈에 돌아간 것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슬립 워커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나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동시에 데이랜드에 출몰하는 수수가 점차 늘어났다. 햇빛 아래를 헤매다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들러붙는 수수의 모습은 보기 싫어도 눈에 들어왔다. 그에 비례하듯 주위엔 수면장애가 늘어났다. 가족도, 학교에도 수수가 들러붙은 사람들뿐이다. 눈 밑에 다크서클을 만들곤 휘청거리는 사람, 갑자기 쓰러져 잠드는 사람, 악몽을 꾸곤 절규하는 사람……. 우려해왔던 폭발적 감염(아웃 브레이크)가 시작됐다. 이 마을을 폭심지 삼아 수수의 데이랜드 침략이 급속도로 진행돼 가고 있다.
사야 일행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의심은 짙어졌다. 수수는 '알'을 향한 관심을 미끼삼아 사야 일행이 나이트랜드와 데이랜드를 잇는 통로를 만들게 유도했으리라. '알'의 기억이 애매해졌던 사실조차, 아마도 주의를 끌기 위한 수작이었으리라. 수수가 이런 지혜를 갖고 있었음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은 사야 일행을 완벽하게 추월한 것이다.
외출하면 강제로 자기들이 일으킨 사태를 직면당하지만, 집에 있어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가족들이 죄책감을 자극한다. 마침내 버티지 못한 사야는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서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겨 오랜만에 사카이모리 침구점을 방문한 것이다.
창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기 발소리만이 들려오고, 천창에서 비쳐드는 빛줄기 속을 먼지가 덧없이 날아다녔다.
처음 여기 왔을 때 같다.
침실 중앙의 킹 사이즈 침대는 저번에 쓴 상태 그대로 방치된 것처럼 시트와 이불이 주름져있었다.
누가 있으면 조금은 신경이 분산될 줄 알았지만 기대가 빗나갔다. 도저히 성공하지 않는 슬립 워크에 마음이 꺾여 마침내 아무도 안 오게 됐다.
넓은 침대에 쓰러진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고요한 창고에 혼자 누워있자니 문득 기척이 느껴졌다.
따각따각, 따각따각 바닥을 치는 단단한 소리는 신발이 아니라…… 발굽 소리다.
산양을 타고 후드를 둘러쓴 남자가 선반 사이에서 나타났다.
"또 만났군, 네버 슬리퍼."
"이건…… 꿈?"
"꿈이나 현실, 어느 쪽이건 언젠가 모든 것은 꿈이 된다. 너희들은 놈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남자는 침대 앞에 딱 멈추더니 사야와 마주했다.
"수수놈들은 이런 식으로 슬립 워커들을 수도 없이 함정에 빠트려 데이랜드를 나이트랜드로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현실이었던 것이 꿈이 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운 데이랜드가 시작된다. 그리고 슬립 워커도 꿈이 되어 사라진다. 이전에 우리가 그랬듯. 그리고 이번엔 너희가 그리 됐듯이."
"그럼…… 당신도, 슬립 워커?"
남자는 후드 속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있던 데이랜드에서는, 난 CIA 몽견(夢見)부대 일원이었다. 'GOAT'라 불리던 팀은 세계 각지의 몽견 전승자와 협력해 조직적으로 수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우리 팀도 전부 당했다. 나도 나이트랜드를 헤매는 꿈의 잔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너희가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우리도…… 꿈이 된다고?"
"그래. 하지만 우리 때는 없었던 요소가 단 하나 있다. 그게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뭔데?"
"너다, 네버 슬리퍼."
남자는 안장 위에서 팔을 뻗어 사야를 가리켰다.
"너만이 기나긴 불면 속에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너만이 데이랜드에 나타난 수수를 볼 수 있다── 그건 즉, 너는 데이랜드와 나이트랜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쳐도── 나보고 어떡하라고.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어떻게 멈추면 되는데."
짜증내는 사야에게 산양 기수는 비밀처럼 속삭였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No one shall sleep)."

"호카게 양?"
누가 나를 부른 것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미도리가 사야를 보고 있었다.
"아…… 안녕."
"사야찌네. 잘 지냈어?"
미도리 뒤에서 카에데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둘 다 웬일로 온 거야?"
"호카게 양이야말로."
"난── 여기 오면 누가 있지 않을까 해서."
미도리와 카에데가 눈을 마주치더니 슬쩍 웃었다.
"우리도 그래. 그치 미도리."
"네."
"슬립 워크가 안 되는 건 알겠는데 말이지, 너네랑 못 만나는 게 영 쓸쓸해서."
"소파에 앉아요. 차 내 올게요."
미도리의 말에 사야가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봐도 산양 기수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현실에서 일어난 일일리가 없다── 정신을 차리려 했을 때 사야의 눈길이 바닥에 빨려들었다.
침대 옆 바닥, 콘크리트 표면에 발굽자국 네 개처럼 작은 패임이 있었다.
"사카이모리 양…… 이거 원래 있던 거였나?"
사야가 가리키는 곳을 미도리가 돌아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랬었나요. 팔레트 자국 같은데── 이게 왜요?"
팔레트 자국?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산양을 탄 남자가 거기 있었다는 생각보다는 합리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사야는 방금 겪은 체험을 되새겼다.
최근 들어, 아마 수수가 방해했기 때문에 사야 일행은 나이트랜드에서 멀쩡한 기억을 가져올 수가 없었지만 이번엔 명확한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눌러앉아 사라지질 않았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
사야의 혼잣말에 생각지도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투란도트'인가요?"
고개를 들자 선반 틈새로 란이 보이더니, 당연한 양 소파에 앉았다.
"선배, 왜 여기에."
"너희랑 똑같은 이유 아닐까?"
미리 짠 것처럼 미도리가 모두의 머그컵을 테이블에 두고 커피를 따르기 시작했다.
"투란도트가 뭐예요?"
"오페라예요. 옛날 중국의 투란도트 공주에게 구혼하는 왕자가 수수께끼를 냈어요. 자기 이름을 동틀 때까지 맞추지 못하면 결혼하고, 못 맞추면 결혼을 포기하고 목숨을 내놓겠다, 고. 그 때 공주는 백성들에게 왕자의 이름을 밝힐 때까지 아무도 잠들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
"엥, 너무하잖아!?"
카에데가 비난했다.
"너무하죠. 결혼하기 싫은 것도 이해되지만."
"악질에도 정도가 있지. 상관없잖아, 백성은."
"백성……이라."
사야는 테이블의 머그컵중 딱 하나 비어있는, 히츠지의 컵을 보며 중얼댔다.
"히츠지는 안 오는 걸까."
"그 아인…… 안 올 것 같아요."
란이 말했다.
"왜요?"
"그 아이의 블랭킷 능력은 원래부터 너무 강력했어요. 히츠지가 잠들면 의도하건 아니건 주변 사람들도 잠들어요. 그래서 주변에 아무도 없을 곳을 찾아 잤는데, 지금은 그런 수작이 안 통할만큼 강해졌을 거예요."
카에데가 이어 말했다.
"나도 걱정돼서 히츠지찌 집에 가 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 가까이 가기만 해도 위험해."
"어떻게 위험한데?"
"졸려. 엄청 위험해. 전보다 범위가 늘어나서 진짜 위험해. 지금의 히츠지찌에게 다가가고도 멀쩡한 건 네버 슬리퍼인 사야찌 정도일걸."
이야기를 듣던 사야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히츠지는 사야에게 그런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카게 양, 나중에 어떤 상태인지 보러 가주지 않을래요?"
사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카게 양?"
"응? 아, 미안……. 있잖아, 물어볼 게 있거든. 히츠지의 블랭킷 능력은 얼마나 널리 펼쳐질 수 있을까."
"콘파루 양은 늘 억제했는데, 하려고만 하면…… 얼마나 펼쳐질지 예상이 안 되네요."
"그래……"
세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 사야를 쳐다본다. 마침내 사야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들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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