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긴급 슬립 워크는 정해둔 15분이되기도 전에 끝났다. 잠이 깬 셋은 급하게 옷차림을 정리하고 침대를 나섰다. 소란 탓에 깼는지 양호교사가 책상에서 고개를 들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미안, 온 줄 몰랐어. 무슨 일이니?"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지 고개를 흔들며 양호교사가 물었다. 그 뒤에 유령처럼 들러붙은 수수를 사야는 보았다. 아까 히츠지의 몸에서 나타난 개체와 많이 닮았다.
양호교사가 하품을 하곤 흐리멍텅한 음색으로 말했다.
"어디 안 좋니? 한 숨 잘 거면 침대──"
"앗, 아뇨, 벌써."
사야가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자 양호교사는 다시금 크게 하품했다.
"……하으. 미안. 선생님도 뭔가 좀 기운이 없네."
"괜찮으세요……?"
사야가 쭈뼛쭈뼛 묻자 양호교사가 말했다.
"그냥 갈 거면 선생님은 한숨 자야겠다."
셋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호교사가 칸막이 커튼을 치고 그 너머로 사라졌다.
"정말…… 선생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한숨 잔거야? 시트가 주름투성이네."
멍한 목소리가 커튼 너머에서 들려왔다.
"상관은, 없는데…… 일어났으면, 정리쯤은 해 둬……"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묵직한 털썩 소리가 났다.
"……선생님?"
셋이 커튼을 슬쩍 당기고 엿보자 양호교사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이불도 놔두고, 옷이며 신발, 안경조차 안 벗고 잠들었다.
사야의 눈에는 양호교사 위에 들러붙은 수수의 형태가 희미하게 보였다. 인간의 수면 상태를 어떠한 형태로 반영하는지 호흡이나 눈꺼풀의 떨림과 함께 수수의 형태도 미묘하게 변화한다. 그 모양새는 수수라기 보단 반투명 도시 미니어처가 인간 위에서 살아 숨쉬는 듯했다.
"수수가 기생했어── 둘은, 보여요?"
사야의 물음에 란과 히츠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안 보여."
"나도."
"역시 나한테만 보이는구나……."
"그런가보네. 어쩔래? 다시 한 번 슬립 워크 할래?"
히츠지가 물었다. 사야는 란과 눈을 마주치고서 말했다.
"놔두자. 이 녀석들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는지를 먼저 알아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
"그러게요. 수수잡이는 그 다음에 하죠. 방과 후에 침구점에서 봐요."
"알겠어."
잠든 양호교사를 뒤로하고 셋은 양호실 밖으로 나섰다. 한창인 점심시간, 학교는 소란과 활기로 가득차있다. 그런 학교를 걸어가던 사야의 낯빛은 점점 새파래졌다.
"왜 그래 사야."
낌새를 느꼈는지 히츠지가 말했다. 침을 꿀꺽 삼킨 사야가 말했다.
"이건, 위험할지도."
"뭐가요?"
란도 사야를 주목했다.
"늘어났어요──수수가."
사야의 눈에는 여러 수수들이 오가는 학생 사이를 걷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의 몸에 박혀 있거나, 머리와 어깨에 올라탄 개체도 있었다. 개중에는 많은 수수에게 기생당해 이형의 구조물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 학생도 보였다.
30분 전까진 이렇게 많진 않았는데.
변화의 계기는 명확했다. 세 사람이 슬립 워크를 했기 때문이다.
나이트랜드의 광경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 수수들은 세 사람의 잠에 다리를 세워 데이랜드로 건너온 것이다.
수수가 급속히 세력을 확장한다──.
사카이모리 침구점에 모인 다섯은 이 무시무시한 사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어."
란이 분한 듯 말했다.
"지금까진 이런 적 없었어요? 한 번도?"
사야의 물음에 넷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없었어요. 달리 들어본 적도 없구요."
미도리가 대답했다.
"아이조메 선배네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건 없어요? 비전서나 뭐 그런 거."
"적어도 내가 물려받은 부분에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사카이모리양 집안에서도 그런 건 없는 거죠?"
"네. 전혀요."
"그럼 새로운 현상이란 뜻이 되는데……."
사야의 말에 미도리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도움이 안 되서 죄송해요."
"괜찮아 미도리. 다 같이 생각해보자, 응?"
카에데가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
"정리해보죠.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사야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선, 수수가 데이랜드로 오고 있어요. 이건 저한테만 보이지만, 절 믿는다면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믿어."
말 한 마디 없던 히츠지가 툭 대답했다. 다른 셋도 끄덕인다.
"고마워요. 다음으로, 어떻게 왔느냐에 대해선데, 이건 저랑 아이조메 선배가 봤어요. 수수는 저희의 꿈을 타고 나이트랜드에서 데이랜드로 이동해요."
란이 끄덕이며 보충설명을 했다.
"큰 다리 같은 수수였어요. 그런 게 수없이, 우리를 받침대 삼아 데이랜드와 통하는 통로를 만들어서…… 그보다 작은 수수들이 그걸 타고 건너왔어요."
"제가 알아챈 건 나이트랜드에서, 잠든 히츠지 위에 다리가 세워진 것을 봤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히츠지뿐만이 아니었어요. 아이조메 선배도 저도, 명석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샌가 받침대가 돼 있었어요. 중간에 알아채긴 했어도 그러는 동안에 이미 많은 수수가 데이랜드에 들어왔어요."
미도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얘기, 엄청 무섭네요. 몰랐으면 더 큰 일로 번졌을 거란 얘기죠."
"그렇다고 봐. 아니, 지금까지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던게 아닌가 해서……"
"진짜……?"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내뱉은 카에데에게 사야가 말했다.
"요즘 우리가 꿈 속 통제권을 많이 잃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수수가 벌인 짓이라고 봐요."
"실험했던 걸지도."
미도리가 끼어들었다.
"실험?"
"수수에게 지성이 있다, 는 전제를 깔아야 하는데──. 잠들었을 때 우리가 명석하다고 믿게 하고선 실제론 통제권을 빼앗아 받침대로 삼는다. 꽤 수준 높은 작전같지 않아요?"
"컴퓨터 바이러스 같네요……."
고민에 빠져드는 란 옆에서 카에데가 말했다.
"그치만 바이러스는 지성이 없잖아. 그치? 지성이 있든 없든 수준 높은 짓을 할 수 있는거 아냐? 우와, 나 금방 엄청 똑똑하게 얘기했어, 대단하지 않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마친 카에데의 머리를 쓰다듬던 미도리가 말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어찌 됐건 수수들이 우리를 찾는 건 틀림없다고 봐요."
"우리를 이용해서 데이랜드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기생하고…… 근데 굳이 데이랜드로 나올 이유가 있을까요?"
"나이트랜드에선 슬립 워커가 방해하니까 우리의 의표를 찌른 건 아닐까요……? 추측이긴 하지만."
"귀찮게 됐네요. 이대론 저희를 중심으로 데이랜드에 수수 아웃브레이크(폭발적 감염)가 터지겠어요."
란이 한숨을 폭 쉬고 말했다.
"우린 데이랜드에서 수수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렇다고 슬립 워크를 하면 통제권을 뺏겨서 감염을 확대하게 돼."
"그럼…… 앞뒤가 막힌 건가요?"
사야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자 미도리가 말했다.
"그렇지만은 않을 거예요. 실제로 호카게양 일행은 수수가 손쓴 걸 잠 속에서 알아챘으니까요. 여태까진 컨디션이 안 좋던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젠 아니예요. 다 같이 경계하면 알아챈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명석 상태로 만들 수 있어요."
"응. 우리를 속이려 하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으니까."
사야가 끄덕이자 카에데는 열기를 품은 어투로 말했다.
"해 보자고. 당하기만 하는 건 분하잖아."
사야 일행이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히츠지는 앉아서 쿠션을 안은 상태로 사야만 쳐다볼 따름이었다. 어색함을 버티지 못한 사야가 반응했다.
"히츠지는 할 말 있어?"
"에."
수업 중에 졸다가 들킨 것처럼 히츠지는 눈을 깜빡거렸다.
"어~, 음~, 딱히 없으려나."
"콘파루양 괜찮아요?"
란이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히츠지를 자세히 본다.
"미안, 좀 벙벙해서."
"정신 차려야지 히츠지."
사야의 말에 란이 미소 지었다.
"호카게양, 어느 샌가 콘파루양이랑 많이 친해졌네요."
"엥?"
"이름."
란이 말했다.
"전엔 굳이 성으로 불렀잖아요. 언제부터 이름으로 부르게 됐어요?"
"어……"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사야는 당황했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히츠지를 보자 고개를 휙 돌렸다. 나만 친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처음 보는데 잠에 취해서 갑자기 키스를 했다는 악행을 아직 용서받지 못한 모양이다.
어색해하는 사야의 등을 카에데가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친해지는 건 좋은 거잖아. 사야찌는 그동안 내내 거리를 두려고 했잖아. 그치, 히츠지찌"
"……그럴지도."
히츠지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란은 자기 차를 다 마시곤 일어섰다.
"좋아, 그럼 가 볼까. 지금 오시면 수수 무한사냥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