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쯤 전에 오랜만에 누나가 귀성해서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밤 늦게까지 하는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둘이 스테이크를 먹었다.


다 먹고 디저트나 시킬까 얘기를 하다가 맞은편 왼쪽에 빨간옷 입은 여자가 혼자 앉아있는게 보였다.


얼굴은 잘 안보였지만 나이는 아마 50 조금 전쯤.


펌이 들어간 긴머리의 멋부린 사람이었다.


그 사람 테이블에 딸기 파르페가 있는걸 보고 우리도 파르페를 시켰다.


파르페를 반쯤 먹었을 때쯤 그 여자를 봤더니, 파르페에는 거의 손을 안대고 계속 전화로 뭔가 얘기를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파르페를 다 먹었는데도 그대로 바쁜 듯 오른손으로 메모를 적으며 왼손으로 뺨을 괴고 얘기를 하고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녹은 파르페가 주루룩 녹아내렸다.


"저렇게 녹았는데 먹을까?"


"업무 얘기중인거 아냐?"


"잘나가는 사장님일지도 몰라."


라고 소근소근 얘기 했다.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가기 전 누나가 화장실에 들렀다. 난 자리에서 기다렸는데 누나가 뭔가 이상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저 사람 아까부터 얘기하고 있었잖아."


"엉 전화겠지."


"왼손에 아무 것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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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쯤에 사촌 여동생이 아이를 뗐을 때의 이야기.


그 아이를 A라고 부를게




걔는 좀 별난 애였어. 쉽게 말하자면 양아치.


뭐 걔네 엄마(내 입장에서 보면 숙모)도 아이한테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라 더 그랬던것 같아.


일단 고등학교는 다니고 있었는데 거의 확실히 유급이 결정됐다던 모양이야.



이런저런 사정 탓에 비뚤어진 거겠지.


가게 물건을 훔치거나 싸워서 잡혀간적도 많았어.


주위 친척들은 A네를 아예 무시했어.



그치만 가~끔 나한테 연락을 해서, 돈이 좀 있으면 밥도 사주고 그랬어.


나랑 있을 때는 엄청 평범하고 바른 애였어.


나한테는 여동생같은 거였지.



그리고 어느날 사건이 일어났어.



A가 임신했다는거야.


거기다가 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겠대.


나랑 친척들이랑 우왕좌왕 했는데, 숙모는 자기랑 아무 관계 없다는 듯이 있더라구


A도 곧잘 어두운 표정으로 "하아…어떡한담…." 하더라구



타개책은 떠오르질 않고 시간만 계속 흘렀어.



간단히 말하자면 낳느냐 떼느냐 둘 중 하나지만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A가 전화했어.


원래는 나한테 메일로 연락하고 나서 전화하는게 암묵적 규칙이었거든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로 받았더니


A가 "떼기로 했습니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했습니다." 는거야



이상하게 기계적이었던것 같아.



여기부터 본편이라고 해야하나, 오컬트같은 부분인데.


그 날부터 A가 갑자기 변했어


별의 별 색으로 염색했던 머리는 검은 색이 되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시작했다나봐.


학교 마치면 곧장 집에 와서 집안일을 돕기도 하고.


나도 처음엔 이번에 겪은 일로 사람이 바뀌었나, 잘됐네. 싶었는데


이게 뭔가 이상했어



사람이야 바뀔 수도 있는 건데 갑자기 근본부터 바뀌는 건 어려운 법인데


뭐라고 해야할까, '다른 사람'이 A의 가죽을 둘러썼다고나 할까…


어제까지 레슬링 선수였던 사람이 오늘은 변호사가 돼 있는 것 같은


어쨌든 '너 누구야?' 하고싶어지는 느낌이었어.



좀 꺼림칙하면서도 건실해져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섞여서 좀 복잡한 심경이었지.



어느 날 A한테서 또 전화가 왔어. 아버지를 찾았대.


그럴 수가 있나 반신반의 하면서도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어.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길래 밤에 A네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지



A는 앉아있고 애 아빠(가칭)도 그 옆에 있어서 엄청 어색했어


여하턴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어.


남자는 굉장히 초췌해서 안팔리는 호스트같은 느낌이었어.


그 사람 왈, "매일 A를 죽이는 꿈을 꿔요. 매번 다른 방법으로… 게다가 A의 배가 불러 있고,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예요. 그걸 내가 때리거나 밟아서… 무서워서 A한테 연락했더니 아이가 생겼다고 하고…매일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자요."


그 때 A가 한 마디 소근거렸다.




"잘 됐 다"





소름이 돋았다.


노멘같은 표정이었던 것도 한몫 하지만 무엇보다 목소리가 그야말로 아저씨였다.


남자도 깜짝 놀라서 울며 사과했다.



그 다음 A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너 때문에 태어날 수 없어. 떼는 게 아니라 '죽인'거야. 용서 못해. 꼴 좋다."


고 말했다.



나는 어쩐지 이해했다.


얘는 A가 아니다.


틀림없이 뱃속의 아기다. 라는 것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남자도 그렇게 느꼈는지 창백한 얼굴로 연신 사과했지만


"절대로 용서 못해. 죽어도 용서 못해."라고, 그야말로 배 밑바닥에서부터 울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다음에 남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A는 아이를 떼고 유급은 했지만 졸업은 제대로 한 모양이다.


이전의 양아치였던 때랑은 비교도 안될만큼 얌전해졌다.


하지만 가끔 '하늘에서 아기가 떨어지는'꿈을 꾼다는 모양이다



본인은 벌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딱히 무섭진 않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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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리된 신

번역 괴담 2017. 5. 25. 05:04


 우리 부모님은 나를 가지던 날과 내가 태어나던 날 밤에 빛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신비로운 꿈월 꿔서 나에게는 뭔가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가족에게 뭔가 고민거리(아버지의 전근에 가족이 따라갈지 여부 등)가 있을 때는 내가 마지막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신이 그러길 바라신 거겠지' 하고 말하는 가족이다.


 나 자신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반항기를 거쳐서 나는 평범하고 초능력같은 건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고, 우리 식구들도 남한테 얘기하지도 않은데다 형제자매도 그 부분은 길이 들어서, 그냥 마지막 결정을 내가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동생네 아이(나한테는 조카)가 병에 걸렸다.


 처음엔 어느 병원을 가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겨우 병명을 알아냈더니 비싼 치료비가 장기적으로 들어가는 난치병이었다.


 치료비를 못내서 아이를 포기하는 부모도 많다고 한다.


 물론 동생과 부모님이 모아둔 돈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집을 팔아서 조금이라도 치료비를 충당하는게 어떻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리고 부모님은 멀리서 살던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결정해달라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연말 점보 복권을 산다는 결론이 났다.


 우리 가족은 연말 점보 복권을 서른장 샀다.


 그리고 당첨됐다.



 어찌어찌 집을 팔지 않고 10년은 버틸 수 있는 액수였다. 그 동안에 정부 지정 난치병이 되면 어떻게든 된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네 몫이다.' 라며 백만 엔을 받았을 때 알게 됐다.


 뭘 사라고 한 적도 없을 뿐더러 전화를 받은 기억조차 없다.


 아니, 사실 조카가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처음 들었다.


 전화를 걸었던 번호는 내 전화번호와 한 끗 차이.


 다시 전화를 걸어보자, 모르는 남자가 받자 마자 끊고 다시 걸었더니 없는 번호였다.


 어머니는 내가 곧잘 상담도 도와주고, 조카가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 지도 모를 때도 내가 다른 현의 병원을 가르쳐줘서 병명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이 번호(비슷하지만 다른 번호)로 바꿨다고 연락했다고 어머니가 얘기해서 보이스피싱인가 했는데 사기를 친 것도 아니라 영문을 알 수 없다.


 어머니는 '네 신이 분리된걸까.'라고 말했다.


 어제 부모님이 올해도 연말 점보 복권 사는게 좋을까 하고 전화 해서 사지 말라고는 얘기 했지만 


 혹시 신이 분리됐으면 나한테는 아무 능력도 없으니까 막 답해도 될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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