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서를 손에 넣었다.

책 머리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기에 적힌 대로 따라하면 저주가 걸리지만, 순서를 틀리면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도 정말 저주를 하시겠습니까?'

물론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녀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주의 서를 찾아낸 것이다.

나는 저주를 걸기 시작했다.


'1. 우선 눈을 감고 저주를 걸 상대의 얼굴을 상상합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건데 말이지, 그리고 나는 녀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좋아, 다음은 어디보자...


'2. 어떤 저주를 걸 지를 상상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끝없이 주는 것이다.

좋아, 다음.


'3. 마지막으로 눈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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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하 우물

번역 괴담 2016. 1. 19. 01:36

이걸 쓰게되면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알것이다. 들킨다면 큰일날 것이다.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고 다시 찾으러 오겠지.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 우물의 존재는 어둠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쓸 것이다.


지금부터 몇 년 전의 일이다. 난 도쿄의 모 조직의 젊은 간부 밑에서 일했다. 이름은 N이다. 요즘엔 그런 조직도 자주 해야 하지만 들키면 번거로운 일은 하청을 줘 버린다. 그것도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고용하는 선에서. 경찰이 냄새를 맡으면 꼬릴 잘라내기 위함이다. 대신 보수는 짭짤했다.


나는 도쿄의 돈 많은 일본인과 외국인이 자주 찾는 유흥가에서 일했다. 자주 하지만 들키면 번거로운 일이라고 해봤자 내가 한 건 꽃을 잔뜩 떼서 승합차로 실어나르는 것 뿐이었다. 이 꽃을 유흥주점부터 고급 클럽까지 배달했다. 유흥주점 가면 꼭 있는 그 꽃이었다. 꽃을 갖다주고, 수금한다. 물론 떼 온 가격의 세 배에서 다섯 배정도 가격을 받는다. 3만엔에 떼 오면 10만엔. 5만엔에 떼 오면 25만엔으로 만드는 그런 거. 매월 3천만 엔은 벌었을 거다.


내 역할은 그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다. 수금을 하려 해도 돈 주는 사람이 산전수전 다 거쳐온 사람이 많으니까. 애송이라고 무시하고 가격을 후려치려는 멍청한 놈들도 있었고. 하지만 그 때마다 쌈박질을 했다간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난 아니었지만 싸워대는 녀석도 있었고. 경찰을 불렀다간 조직에서 좋게 보질 않는다. 수금하는 돈이 줄어버리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다. 그럴 때 내는 끈질기게 얘기로 풀었다. 얘기로 풀어도 중요한 부분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가격을 내리지도, 무슨 조건을 붙이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얘기가 좀 길어지긴 했는데, N의 동생 K는 나를 꽤 신뢰했다. 그래서 꽃 배달할 때 쓰는 승합차를 끌고 오라고 한밤중에 곧잘 불려나오곤 했다. 실은 건 아마 드럼통이나 종이 박스*1)였을 거다. 짐을 실을 때면 난 운전석 밖으로 나가면 안됐고, 뒤엔 가림막이 있어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짐을 싣고 벤츠 뒤를 졸졸 따라가다 짐을 내리면 좀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벤츠를 따라가고, 돈 받고 끝. 뭘 옮겼는지는 모른다. 대신 한 번 다녀올 때마다 꽃배달 한 달치 알바비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또 불려나가게 됐다. 가 봤더니 평소와 다른 사람이었다. 평소엔 S와 K, 그리고 젊은 부하였다. 하지만 그 날은 간부 N과 S, K 세 사람 뿐이었다. 세 사람 다 이상하리만치 긴장하고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평소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내가 도착하자 엔진 끄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기들끼리 뭐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은 그냥 돌려보내."


"그놈은 괜찮아요. 그것보다…"


토막난 대화가 조금씩 들려왔지만 결국 내가 운전하는 걸로 결정났다. 어쩐지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뒷문이 열리고 뭔가가 실렸다. 하지만 이번엔 드럼통도 종이 박스도 아니었다. 크게 무거운 건 아닌것 같았지만. 그리고 더 이상한 게 S와 K가 동승한 것이다. 평소엔 나 혼자 타서 벤츠를 따라간 것이다. 게다가 갑자기 수도 고속도로를 탔다. 거긴 카메라에다 N시스템까지 있다.*2) 이런 일을 할 때는 보통 피하는 길인데도.


수도 고속도로의 환상선環状線*3) 엔 황거*4)가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몇 군데가 지하로 들어가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부끄러운 소리지만 난 운전은 잘해도 길치인지라 길은 잘 기억 못한다. 그 환상선을 두 바퀴쯤 돌았을 무렵이었다. 주위에 차가 없어지자 갑자기 N이 탄 벤츠의 비상등이 켜졌다. 그 때까지 S도 K도 말 한마디를 안하다가 한쪽에 세우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세웠더니 합류 지점이었다. 길 중간의 섬 같은 곳에 후진으로 차를 넣으라길래 시키는 대로 하고 라이트를 껐다. 양 옆이 기둥이라 그냥 다니는 차들은 어지간해선 안보였을 거다.


N이 탄 벤츠가 출발했다. S와 K가 둘이서 짐을 내리더니 나보고도 내리라고 했다. 이 때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내리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다. S와 K가 같이 짊어진 비닐 주머니는 영화 같은데서 자주 나오는 시체를 담는 주머니와 꼭 닮았다. 아무리 봐도 내용물은 인간이다. 큰일 났다 싶어서 허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조금만 더 놀랐으면 그대로 힘이 풀려 주저앉았을 것이다.


왜 조직 사람이 아니라 날 불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S가 자기 주머니 속에 든 열쇠를 꺼내서 철망의 자물쇠를 열라길래 그대로 했다. 철망을 열고 5미터쯤 가자 또 문이 있었다. 문이라기 보다는 철책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봐도 열 수 있을만한 손잡이도 없고 열쇠구멍조차 없던 것이다. 이걸 어쩌자는 건가 하고 보고 있었더니 S가 다른 주머니에 든 열쇠를 꺼내라고 헀다. 이번에는 큰 열쇠와 작은 열쇠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콘크리트 벽에 조그마한 스테인리스제 뚜껑이 있고 그걸 작은 열쇠로 열 수 있는 것이었다. 안에는 원통형 열쇠구멍이 있고 큰 열쇠로 열 수 있었다. 열쇠를 돌리자 찰칵 소리가 나며 철책이 약간 움직였다. 철책이 벽 안까지 파고들어서 그 안에서 잠긴 구조였다. 자물쇠만 부숴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인 것 같았다. 그 너머는 완전히 암흑이었다.


펜 라이트로 비추면서 걸어가는데 바로 다른 철문과 맞닥트렸다. 『무단출입 엄금 -방위시설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여긴 도로공단 시설일텐데. 이런 데를 들어와도 되는 생각부터 들긴 했다. 조직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 감시카메라 같은게 있진 않나 싶어서 불안해졌다. 안쪽에는 훨씬 더 알 수 없는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철문도 좀 전의 철책처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S도 K도 살짝 땀을 흘릴만큼 무거워 보였지만 도우라고는 하지 않았다. 문 안쪽엔 바로 계단이 있고 끝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상당히 오래 내려가는 동안 두 사람이 이따금 멈춰서 어깨에 짊어진 '짐'을 고쳐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굉장히 넓은 통로가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아마 폭이 10미터는 돼 보였다.


일단 우리는 잠시 쉬기로 했다. 통로에는 군데군데 낡은 전등이 있어서 굉장히 어둡긴 해도 일단 펜 라이트를 안 켜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맞은편 벽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갔다. 중간중간 쉬기도 하면서 얼마나 갔을까. 통로 자체는 일직선이었다. 끝없이 쭉 뻗은 통로 좌우 벽에 이따금 철 문이 붙어 있었다. 어떤 문 앞에서 S가 멈춰서서 말했다.


"이거 아냐? 이거같은데."


거기에는 '제국 육군 제 13호 갱도'라고 적혀 있었다. 낡은 글자였다. 믿기질 않았다. 지금 일본에 있는 건 육상 자위대 뿐인데. 대체 몇 년 전 터널인 건가. S도 K도 땀 범벅으로 헐떡거려서, 일단 갱도 안으로 들어가서는 '짐'을 내리고 쉬기로 했다. 둘 다 아무 말도 안해서 나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참을 쉬다 S가 슬슬 가자며 자루의 한쪽 끝. 아마 '다리'가 있는 부분을 들었다. 그러자…


'자루'가 갑자기 꿈틀거렸다.


S는 갑작스러운 일에 자루를 놏치고, 그 영향으로 자루 반대쪽 입구에서 사람 머리가 튀어나왔다. 재갈을 문 살짝 퉁퉁한 남자였다. 어쩐지 낯익은… 아니 그건 크게 놀랍지 않았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루 안에서 진짜 사람이,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쫄아서 벙쪘다. S가 K에게


"어떻게 일어난 거야!" "약 놔 약!" 자루에 넣어!"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K는 약이 없다느니 뭐라느니 대답했다. 그러는 도중에도 '자루'는 계속 발악했다. 발악이라기 보단 몸이 묶여있는지 온 몸을 뒤틀어서 자루에서 나오려고 했다. 그러자 S가 자루의 배 언저리를 짓밟듣 걷어찼다. 순간 '자루'가 멈추고 '끅~" 하는 신음소릴 내고는 또다시 버르적거렸다. S는 배 부분을 계속 걷어찼다. 그럼에도 '자루'는 계속 펄떡거렸다. 결국 S와 K가 같이 자루를 계속 걷어차게 됐다. 빡 하는 소리가 두 세번 났다. 아마도 골절이겠지. '자루'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 순간 어째선지 남자가 고개를 젓다가 나를 봤다. 그 순간까지 험악한 표정으로 꿈틀대던 남자가 갑자기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S가 자루에 넣으라고 하자 K가 남자의 어깨 언저리를 발로 밀고 자루를 잡아당겨서 자루 속으로 다시 넣었다. 이 광경은 슬로우 모션으로 내 뇌리에 박혀 있다. 남자는 자루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계속 나를 쳐다봤다. 평생 못잊을 것이다. K가 자루 입구를 꽉 묶는 걸 확인한 S가 몇 번 더 자루를 걷어찼다.


"이정도만 하지. 죽여버리면 곤란하잖아." S가 그렇게 말하더니 날 봤다.


"너, 이 녀석 얼굴 봤지?" 


"아뇨… 너무 갑작스러워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답하는 게 한계였다. 그 때는 정말로 낯익은 사람이었지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S와 K는 움직이지 않는 '자루'를 짊어졌다. 지금까지와 다른 건 나도 같이 옮기게 된 것이다. 내용물을 알아버렸으니 연대책임이 된 셈이다. 그리고서 13호 갱도라는 곳 안을 계속 걸어갔다. 지금까지 걸어온 넓은 통로와는 확연히 다른, 폭이 3미터도 안되는 좁은 통로였다. 오른쪽은 계속 벽 뿐이었지만 왼쪽에 한 번씩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폭 1미터쯤 되는 계단이고 몇 계단 내려가면 바로 문이 있었다. 몇 개 짼지는 모르겠지만 S가 어떤 문 앞에서 멈추라고 했다. 거기에도 '제국 육군'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국 육군 제 126호 우물'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S의 말을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꽤 넓은 곳이었다. 학교 교실 하나쯤 됐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뚜껑이 닫혀 있었다. 무거워 보이는 쇠 뚜껑. 한쪽 가장자리에 쇠사슬이 연결되서 그게 천장의 도르레와 이어져 있었다. 도르레에서 내려온 또 하나의 쇠사슬을 당겨서 도르레를 돌렸더니 뚜껑에 붙은 쇠사슬이 서서히 말리며 뚜껑이 열리는 원리였다.


시키는 대로 쇠사슬을 당겨 뚜껑을 열었다. 완전히 열렸을 때 두 사람이 자루를 들어 올렸다. 그제서야 이해했다. 땅 속 깊이 위치한, 아무도 없는 우물에 던져 넣으면 다신 못 나오겠지. 하지만 단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왜 '산 채로' 우물에 넣는 것인가. 두 사람은 자루를 우물 속으로 떨어트렸다. 첨벙~ 하는 물소리가 나야 했지만 실제로 난 건 찰팍 소리였다. 마른 우물인가 싶은 소리였다.


S와 K가 눈을 마주쳤다. S가 내 펜라이트를 보고 턱짓으로 우물 속을 들여다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비춰도 바닥까지 빛이 닿질 않았다. 렌즈를 조금 돌려서 초점을 조절하자 우물 바닥에 조그마한 빛이 비춰졌다. 빛줄기에는 자루가 조금 걸쳐 있었다. 역시 마른 우물이었는지 물은 거의 없다.


그곳에 손이 나타났다.


새하얀 손.


그리고 새하얀 대머리의 정수리.


아까 본 자루 속에 있던 사람은 대머리가 아니었는데.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있었는데 또 머리가 나타났다. 두 사람? 혼란스러운 상태로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그 머리통이 슥 내 쪽을 쳐다봤다.


눈이 없다.


눈알이 있어야 할 부분이 비어 있었다 그런게 아니라 콧구멍만한 작은 구멍만 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우리는 전부 굳었다. 게다가 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놈들의 주위에서 뭔가 우글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왜 우물 안에 있는가, 뭘 하는가, 인간이긴 한 건가.


그 때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놀라서 펜라이트를 떨어트리고 일어섰다. S와 K도 일어섰다. N이 들어온 것이다. N은 우릴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S, 벌써 끝났냐." S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바로 대답했다.


"끝냈습니다." N은 우리의 언행에서 우리가 우물 안을 봤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봤냐. 저 안." 우린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행동 자체가 그렇다는 뜻이었다.


"얼른 뚜껑 닫아." 나는 헐레벌떡 쇠사슬 쪽에 가서 아까 당긴 것과 반대쪽 쇠사슬을 당겼다. 뚜껑이 조금씩 닫혔다.


"쓸 데 없는 생각 하지 마. 그냥 잊어."


확실히 그 말이 맞지만 계속 생각이 떠올랐다. S는 죽이면 안된다고 했다. S도 왜 죽여선 안되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산 채로 떨어트리는 이유는? 산 채… 저 괴물같은 것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생각하기 싫어졌다. 


우린 온 길을 거꾸로 나와서 차를 탔다. 이번엔 S와 K가 N의 벤츠에 탔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세 사람을 본 순간이기도 했다.


생각이 났다. 그 때 자루 속에 들어있던 남자가 누군지. 얼마 전에 출소한 회장의 셋째였다. 못써먹을 작자라는 소문은 들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질 못해서 복역했다고 했다. 내가 본 건 두세 번 뿐이었지만 별것도 아닌데 거드름 피워대던 게 꼴보기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회장의 아들을 죽이는 건 말도 안되는 짓이다. 시체를 숨겨봤자 언젠간 들킨다. 그래도 가능한 한 늦게 들키게 날 이용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2주쯤 후에 N이 사라졌다. '너도 몸을 숨겨라'고 S가 전화로 말했다. 들킨 것이다. 회장의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조직에서 거리를 둔 상태기 때문에 난 다행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S와 K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그 후로 몇 년동안 난 사람이 많은 마을을 전전하고 있다.


이 글은 어떤 PC방에서 쓴 것이다. 곧 PC방도 신분증 없이는 못 온다는 얘길 들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조직원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디서 쓴 글인지 바로 알아내리라. 그러니까 난 이 마을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본 누군가가 그 우물의 정체를 밝혀줬으면 한다. 왜 우물의 열쇠를 조폭따위가 가지고 있었는지. 그렇게 되면 날 쫓는 사람들도 잡혀갈지 모른다.




난 잡히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 도망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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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급행이 멈추는 역이 가깝고, 놀 곳이나 맛있는 밥집도 많다. 게다가 집 근처는 한적한 주택가에다 강도 있어서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강가에는 보도가 있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깅이나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이 많았다.


고등학교때 육상부였던 나는 자주 거기서 뛰었다. 그 보도는 동쪽과 서쪽이 있는데 동쪽은 사람이 거의 다니질 않았다. 밤이 되면 아예 아무도 없었다. 동쪽 보도엔 가로등이 적어서 밤엔 어두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무서운 일이 일어난 건 대학교 3학년 7월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가끔씩이긴 했지만 런닝은 계속 해왔다. 그 날도 강가를 뛰었다. 만월이 사람을 들뜨게 만들어서일까, 나는 평소보다 하이페이스로 노래를 들으면서 뛰었다. 나도 평소엔 밝고 사람도 많은 서쪽에서 주로 뛰었다. 하지만 그 날은 어째선지 평소에 가질 않는 동쪽에서 뛰고싶어져서 서쪽 보도에서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갔다.


한참을 뛰다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처음엔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고 뭔가 어색한 느낌만 받으면서 뛰었는데 20분 정도 있다가 그 이상함의 정체를 알아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동쪽에 사람이 없는 건 여느때와 다름없었지만 강 건너 서쪽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좀 무서워서 다리까지 가면 다시 서쪽으로 가야지 생각하고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앞에 사람이 있는 걸 봤다. 멀리서 봐도 어머니와 아이인 걸 알 수 있었다. 거리가 50미터쯤 됐을 때, 어머니가 아이의 머리를 때려서 아이가 넘어졌다. '가정 폭력!? 그냥 혼나는 건가!?'생각하며 멈춰서서 지켜봤다. 그냥 혼나는데 참견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근처 벤치에 앉아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지켜보는데 어머니가 아이 위에 걸터앉아서 아이 머리를 심하게 흔드는 게 보였다. 아마도 땅에 머리를 찧어대는 것이었으리라. 아무리 봐도 가정폭력이라 가서 말리려고 했는데 어째선지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일어서고 나서 10초쯤 지났을 것이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아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울음소리 정도는 들릴텐데? 대체 뭐지?


그러는 와중에 어머니가 축 늘어진 아이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질질 끌며 내 쪽으로 왔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움직이는 방법을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내 앞에 도착하더니, 지금까지 땅만 쳐다보다가 갑자기 고갤 들어 나를 보고 "뭘 꼴아봐---!!"라고 고막이 찢어질만큼 크고 높은 소릴 질렀다.


그제서야 이들이 산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어머니의 눈이 시커맸던 것이다. 흰자위까지 시커멓다는 게 아니라 눈 자체도 검다고 해야하나.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하여튼 눈 주변이 어두웠다. 아이도 깡마른 몸에 보라색 피부, 군데군데 빨간 반점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욕지기가 나올만큼 악취가 풍겼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온 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역 앞이었고, 마침 사람들이 역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폐가 불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 후로 시간이 좀 지나고, 이 마을에 어렸을 때부터 산 대학 친구랑 한 잔 하러 갔다. 난 이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약간 취기가 돌아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에게 물어봤다.

"XX강 보도 동쪽 있잖아. 거긴 왜 사람이 안 다니는거야?"


친구가 얘기해줬다.

XX강 동쪽에 벤치 있는 거 알아?

13년쯤 전에 그 부근에서 여자애 시체가 발견됐대.

전날 밤에 애 엄마가 경찰에 '집에 와 봤더니 딸이 없다'고 신고를 했었다네?

밤에 강가로 놀러간 여자애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머릴 부딛쳐서 죽었다더라구. 그 근처에 사는 친구 말로는 발견된 날 엄마가 아이 시체 앞에서 뭐라뭐라 소릴 질렀다더라.

그 아이네 집이, 이혼인지 뭔지로 아버지가 없어서 생활고에 시달렸는지 매일 밤 늦게까지 일했다더라구.

딸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불쌍하게 말이지...

결국 딸을 잃은 충격인지 혼자 남은 엄마는 미쳐버려서 죽었다고 하더라.







친구 얘길 듣고 한 생각인데, 사실은 그게 아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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