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쯤에 사촌 여동생이 아이를 뗐을 때의 이야기.
그 아이를 A라고 부를게
걔는 좀 별난 애였어. 쉽게 말하자면 양아치.
뭐 걔네 엄마(내 입장에서 보면 숙모)도 아이한테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라 더 그랬던것 같아.
일단 고등학교는 다니고 있었는데 거의 확실히 유급이 결정됐다던 모양이야.
이런저런 사정 탓에 비뚤어진 거겠지.
가게 물건을 훔치거나 싸워서 잡혀간적도 많았어.
주위 친척들은 A네를 아예 무시했어.
그치만 가~끔 나한테 연락을 해서, 돈이 좀 있으면 밥도 사주고 그랬어.
나랑 있을 때는 엄청 평범하고 바른 애였어.
나한테는 여동생같은 거였지.
그리고 어느날 사건이 일어났어.
A가 임신했다는거야.
거기다가 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겠대.
나랑 친척들이랑 우왕좌왕 했는데, 숙모는 자기랑 아무 관계 없다는 듯이 있더라구
A도 곧잘 어두운 표정으로 "하아…어떡한담…." 하더라구
타개책은 떠오르질 않고 시간만 계속 흘렀어.
간단히 말하자면 낳느냐 떼느냐 둘 중 하나지만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A가 전화했어.
원래는 나한테 메일로 연락하고 나서 전화하는게 암묵적 규칙이었거든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로 받았더니
A가 "떼기로 했습니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했습니다." 는거야
이상하게 기계적이었던것 같아.
여기부터 본편이라고 해야하나, 오컬트같은 부분인데.
그 날부터 A가 갑자기 변했어
별의 별 색으로 염색했던 머리는 검은 색이 되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시작했다나봐.
학교 마치면 곧장 집에 와서 집안일을 돕기도 하고.
나도 처음엔 이번에 겪은 일로 사람이 바뀌었나, 잘됐네. 싶었는데
이게 뭔가 이상했어
사람이야 바뀔 수도 있는 건데 갑자기 근본부터 바뀌는 건 어려운 법인데
뭐라고 해야할까, '다른 사람'이 A의 가죽을 둘러썼다고나 할까…
어제까지 레슬링 선수였던 사람이 오늘은 변호사가 돼 있는 것 같은
어쨌든 '너 누구야?' 하고싶어지는 느낌이었어.
좀 꺼림칙하면서도 건실해져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섞여서 좀 복잡한 심경이었지.
어느 날 A한테서 또 전화가 왔어. 아버지를 찾았대.
그럴 수가 있나 반신반의 하면서도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어.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길래 밤에 A네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지
A는 앉아있고 애 아빠(가칭)도 그 옆에 있어서 엄청 어색했어
여하턴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어.
남자는 굉장히 초췌해서 안팔리는 호스트같은 느낌이었어.
그 사람 왈, "매일 A를 죽이는 꿈을 꿔요. 매번 다른 방법으로… 게다가 A의 배가 불러 있고,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예요. 그걸 내가 때리거나 밟아서… 무서워서 A한테 연락했더니 아이가 생겼다고 하고…매일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자요."
그 때 A가 한 마디 소근거렸다.
"잘 됐 다"
소름이 돋았다.
노멘같은 표정이었던 것도 한몫 하지만 무엇보다 목소리가 그야말로 아저씨였다.
남자도 깜짝 놀라서 울며 사과했다.
그 다음 A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너 때문에 태어날 수 없어. 떼는 게 아니라 '죽인'거야. 용서 못해. 꼴 좋다."
고 말했다.
나는 어쩐지 이해했다.
얘는 A가 아니다.
틀림없이 뱃속의 아기다. 라는 것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남자도 그렇게 느꼈는지 창백한 얼굴로 연신 사과했지만
"절대로 용서 못해. 죽어도 용서 못해."라고, 그야말로 배 밑바닥에서부터 울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다음에 남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A는 아이를 떼고 유급은 했지만 졸업은 제대로 한 모양이다.
이전의 양아치였던 때랑은 비교도 안될만큼 얌전해졌다.
하지만 가끔 '하늘에서 아기가 떨어지는'꿈을 꾼다는 모양이다
본인은 벌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딱히 무섭진 않다, 고 한다.
'번역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010. 죽은 사람의 뼈를 먹는 것 (0) | 2017.05.29 |
---|---|
9. 빨간 옷을 입은 여자 (0) | 2017.05.29 |
7. 분리된 신 (0) | 2017.05.25 |
6. 저주를 거는 순서 (1) | 2016.05.15 |
5. 지하 우물 (0) | 2016.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