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급행이 멈추는 역이 가깝고, 놀 곳이나 맛있는 밥집도 많다. 게다가 집 근처는 한적한 주택가에다 강도 있어서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강가에는 보도가 있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깅이나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이 많았다.


고등학교때 육상부였던 나는 자주 거기서 뛰었다. 그 보도는 동쪽과 서쪽이 있는데 동쪽은 사람이 거의 다니질 않았다. 밤이 되면 아예 아무도 없었다. 동쪽 보도엔 가로등이 적어서 밤엔 어두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무서운 일이 일어난 건 대학교 3학년 7월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가끔씩이긴 했지만 런닝은 계속 해왔다. 그 날도 강가를 뛰었다. 만월이 사람을 들뜨게 만들어서일까, 나는 평소보다 하이페이스로 노래를 들으면서 뛰었다. 나도 평소엔 밝고 사람도 많은 서쪽에서 주로 뛰었다. 하지만 그 날은 어째선지 평소에 가질 않는 동쪽에서 뛰고싶어져서 서쪽 보도에서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갔다.


한참을 뛰다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처음엔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고 뭔가 어색한 느낌만 받으면서 뛰었는데 20분 정도 있다가 그 이상함의 정체를 알아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동쪽에 사람이 없는 건 여느때와 다름없었지만 강 건너 서쪽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좀 무서워서 다리까지 가면 다시 서쪽으로 가야지 생각하고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앞에 사람이 있는 걸 봤다. 멀리서 봐도 어머니와 아이인 걸 알 수 있었다. 거리가 50미터쯤 됐을 때, 어머니가 아이의 머리를 때려서 아이가 넘어졌다. '가정 폭력!? 그냥 혼나는 건가!?'생각하며 멈춰서서 지켜봤다. 그냥 혼나는데 참견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근처 벤치에 앉아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지켜보는데 어머니가 아이 위에 걸터앉아서 아이 머리를 심하게 흔드는 게 보였다. 아마도 땅에 머리를 찧어대는 것이었으리라. 아무리 봐도 가정폭력이라 가서 말리려고 했는데 어째선지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일어서고 나서 10초쯤 지났을 것이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아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울음소리 정도는 들릴텐데? 대체 뭐지?


그러는 와중에 어머니가 축 늘어진 아이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질질 끌며 내 쪽으로 왔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움직이는 방법을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내 앞에 도착하더니, 지금까지 땅만 쳐다보다가 갑자기 고갤 들어 나를 보고 "뭘 꼴아봐---!!"라고 고막이 찢어질만큼 크고 높은 소릴 질렀다.


그제서야 이들이 산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어머니의 눈이 시커맸던 것이다. 흰자위까지 시커멓다는 게 아니라 눈 자체도 검다고 해야하나.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하여튼 눈 주변이 어두웠다. 아이도 깡마른 몸에 보라색 피부, 군데군데 빨간 반점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욕지기가 나올만큼 악취가 풍겼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온 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역 앞이었고, 마침 사람들이 역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폐가 불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 후로 시간이 좀 지나고, 이 마을에 어렸을 때부터 산 대학 친구랑 한 잔 하러 갔다. 난 이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약간 취기가 돌아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에게 물어봤다.

"XX강 보도 동쪽 있잖아. 거긴 왜 사람이 안 다니는거야?"


친구가 얘기해줬다.

XX강 동쪽에 벤치 있는 거 알아?

13년쯤 전에 그 부근에서 여자애 시체가 발견됐대.

전날 밤에 애 엄마가 경찰에 '집에 와 봤더니 딸이 없다'고 신고를 했었다네?

밤에 강가로 놀러간 여자애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머릴 부딛쳐서 죽었다더라구. 그 근처에 사는 친구 말로는 발견된 날 엄마가 아이 시체 앞에서 뭐라뭐라 소릴 질렀다더라.

그 아이네 집이, 이혼인지 뭔지로 아버지가 없어서 생활고에 시달렸는지 매일 밤 늦게까지 일했다더라구.

딸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불쌍하게 말이지...

결국 딸을 잃은 충격인지 혼자 남은 엄마는 미쳐버려서 죽었다고 하더라.







친구 얘길 듣고 한 생각인데, 사실은 그게 아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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