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확실히 잠이 들게 됐다.

수수를 쓰러트린 후로 사야의 밤엔 다시금 잠이 찾아들었다. 그토록 힘들어했던 것이 거짓말인 양 집이건 학교건 졸리면 쉽사리 잠에 빠진다.

오히려 너무 많이 잔다고 해도 될 정도다. 요 반 년간 필사적으로 졸음의 파도에 올라타려한 게 버릇이 됐는지 수업 중에도 잠깐 긴장을 풀면 쉽사리 잠에 빠진다. 그럼에도 잠 못 드는 채 몽롱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몸이 다시 잠에 익숙해질 때까지 1주일 정도 걸렸다. 늦은 진도를 따라잡기가 썩 어려울 줄 알았지만 양호 교사에게 이야기하자 담임과 하는 상담에 같이 가 줬다. 보충수업 안이 나오고 공부 계획이 정해지니 가족들에게 보일 면목이 서게 됐다.

"안색 많이 좋아졌네."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려는 사야를 찬찬히 뜯어보던 언니 아야가 말했다.

"진짜?"

"다크서클이 연해졌어."

"그래도 아직 좀 남았어……"

"언니는 의외로 좋아해. 쇠약한 느낌이라."

"쇠약하단 말이야! 진짜로!"

삐친 사야를 보고 깔깔 웃은 언니는 거실에 돌아갔다.

불면증에 시달릴 때는 학교건 집이건 가시방석 같았지만 냉정해지고 나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잠만 제대로 자면 인생은 대충 잘 풀린다── 반 년간의 지옥을 헤쳐 나온 사야가 얻은 교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야의 마음 속에 초조함 같은 것이 점점 커져갔다. 갈증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처음엔 이해할 수 없던 감각이 평범하게 잠든다는 사실을 향한 불만이란 걸 알았을 때 사야는 경악했다.

혼자 잘 때보다 콘파루 히츠지와 동침하는 게 훨씬 깊고 편하고 기분 좋게 잠들었던 것이다.

수상쩍은 침구점 창고에서 다섯이 뒤엉켜 잤던 세 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저들과 자고 싶다. 슬립 워크 하고 싶다. 그 갈증을 자각한 순간 사야의 걸음은 자연스레 사카이모리 침구점으로 향했다. 지난 방문부터 약 2주가 지난 날이었다.


"어서 와요. 올 거라고 믿었어요."

침구점의 문을 두들긴 사야를 기다렸다는 듯 란이 맞았다.

"몸은 좀 어때요?"

"엄청 좋은데── 근데, 뭔가, 부족해서."

란은 몇 번이고 끄덕였다.

"그렇겠죠. 그럴 만도 해요."

"네……?"

"들어가서 얘기 하죠. 다들 모였어요."

줄선 침구와 높은 선반 사이를 지나 사야는 또다시 슬립 워커들의 침실에 들어섰다.

"어, 사야찌!"

제일 처음 본 카에데가 싱글벙글 손을 흔든다. 미도리와 히츠지도 소파에 앉아 사야를 돌아봤지만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란의 재촉에 같이 앉은 사야에게 미도리가 말한다.

"많이 참으셨네요. 역시 호카게 씨가 네버 슬리퍼라서 저희보다 더 잘 참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무슨 뜻이야?"

"한 번 슬립 워크 하면 중독돼요. 그냥 자는 것보다 훨씬 편히 잠드니까."

"뭣……"

넷의 안색을 살피지만 놀리는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자, 잠깐만. 그러니까, 그, 슬립 워크가…… 중독성이란 뜻?"

"뭐 대충 그런 셈이죠."

란이 툭 내뱉는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사야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다 짜고 나한테 사기 친 거야? 슬립 워크 중독으로 만들려고!? 어이가 없네 진짜──"

"어쩔 수 없어."

히츠지가 던진 말에 사야는 순간 조용해졌다.

"……어쩔 수 없다니, 뭐가."

"다 그렇게 돼. 나랑 동침한 사람은."

"다……"

사야는 다시금 테이블 둘레에 앉은 이들을 둘러본다. 란, 카에데, 미도리,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말없이 끄덕인다.

"그래도 있지 사야, 사기 치려고 한 건 아니었어. 왜냐하면── 먼저 내 침대에 들어온 게 너였으니까."

"뭐? 아니지, 내가 자려고 했는데 콘파루 씨가 멋대로"

"내가 자는데 사야는 멋대로 키스했었지."

"그게 무슨 상관인데!?"

열이 뻗쳐 한숨을 쉬자 히츠지는 사야에게 손을 건넸다.

"……뭔데?"

"장황설은 됐어. 정말로 편안하게 자고 싶었던 거지? 지금도 그렇잖아?"

"그건."

"괜찮아── 이리 와."

그렇게 말한 히츠지는 눈을 감더니 후우 소리와 함께 힘을 뺐다.

사야의 시야가 어찔하며 흔들린다.

"아, 아."

소리가 멀어진다. 시야가 어두워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히츠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빨려들 듯 소파에 쓰러졌을 땐 이미 사야는 의식을 잃었다.




흔들리는 코끼리 위에 앉아 있자니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지 떠올리기가 힘들어진다. 여자들이 앞길에 뿌린 금화와 꽃을 살포시 밟으며, 코끼리는 펼쳐진 논 위를 간다.

"속이다니 너무했잖아."

그렇게 비난했지만 날 무릎 위에 누인 히츠지는 기죽지 않고 쿡쿡 웃는다.

"속이지 않았어, 사랑하는 내 님."

"아무 말도 안 했어."

"안 물어봤는걸."

히츠지는 과일 쟁반에서 포도를 들어 무어라 더 항변하려는 내 입에 가져다 댄다. 매끄럽고 촉촉한 감촉이 입술을 따라 목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맛이 안 나."

"어머 아쉽게도."

백아白亞 궁전을 뒤로 한 우리 행렬은 밀림으로 나아간다. 오늘 밤 우리는 호랑이를 잡는 것이다. 목과 배에 흑단 갑옷을 두른 물소를 타고 호랑이 총을 짊어진 가신들이 행렬 선두를 차지한다. 저 멀리 눈을 뒤집어 쓴 산봉우리를 붉게 물들인 태양이 저물자 그 대신 횃불이 길 위의 금화를 반짝이게 했다.

느긋한 여행에 졸음이 몰려온다. 꾸벅꾸벅 졸기 직전에 짝 소리 나게 뺨을 맞았다.

눈을 뜨니 어느 샌가 란과 미도리를 태운 다른 코끼리가 옆에 와 있었다. 란이 든 작은 채찍 끄트머리로 때린 모양이다.

"아파. 왜 그랬어."

"자면 안 돼요 호카게 양."

"왜."

"슬립 워크 중에 잠들면 나이트 랜드가 집어삼켜요."

"집어삼키면?"

"나이트 랜드에서 잠든 슬립 워커는 두 번 다시 데이 랜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어요. 조심하세요."

미도리가 무서운 소리를 별 것 아닌 양 던졌다.

"자세를 바로잡으세요. 오늘 잡을 호랑이는 강해요."

란이 말 한 호랑이가 수수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나도 이미 이해했다. 란은 총신을 세 개 엮은 장총을 들었는데 내 손에도 같은 무기가 있었다. 란과 나는 넉넉한 남장, 미도리와 히츠지는 얇은 천에 베일이라는, 무희 같은 옷이었다.

"카에데는 어디?"

"여깄어~"

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여섯 팔에 제각기 언월도를 든, 온 몸이 새파란 여신상이 행렬 뒤에서 땅을 울리며 걸어오는 중이었다.

"세 보여."

"긋치~?"

밀림 안에 들어서자 횃불이 채 밝히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밤하늘의 별을 은사로 이은 거미집 같은 수수가 나타났다. 호랑이를 전혀 안 닮았지만 움직임은 어딘가 동물처럼 매끄러운 것이었다.

피에 굶주린 여신으로 변한 카에데가 돌진해서 수수와 부닥친다. 뒤를 이어 장총이 일제히 불을 뿜고 밀림을 붉게 물들여간다.




"……얼버무려도 안 넘어가!"

히츠지는 소파에서 눈을 뜨자마자 소리지르는 사야를 귀찮다는 표정으로 밀어냈다.

"모처럼 편히 자게 해 줬는데."

"고마워! 누가 재워 달랬어!"

히츠지를 향한 따스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사르르 사라진다. 열에 달떴을 때 꾸던 꿈은 열이 내렸을 때 기억 안 나는 것처럼. 깨 있을 때는 좋아하지도 뭣도 아닌 여자.

히츠지도 마찬가지로 삐친 듯 입을 삐죽 내민 사야에게서 멀어져갔다.

카에데와 미도리도 소파에서 일어났다. 란은 위아래로 휙 돌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본 잠버릇은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커피와 다과의 효과로 의식이 점차 명확해진다. 이번 과자는 부르봉에서 나온 루만도와 초코리에르였다.

검고 쓰고 뜨거운 액체를 들이키며 사야가 묻는다.

"우리, 이번엔 뭘 한 거야?"

"무슨 소리야?"

"저번에 나한테 기생한 수수를 쓰러트린 건 이해했어. 근데 이번엔? 그것도 누구한테 기생한 거야?"

"그렇죠. 나이트 랜드는 이어져 있으니까 어디 사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모르는 누군가가 불면증이나 악몽에서 풀려난다고 생각하면 조금쯤 기분 좋아지지 않나요?"

"수수가 그렇게 많은 거구나."

"몽마, 인큐버스, 서큐버스, 부쉬양스타(Būšyąstā), 샌드맨…… 꿈을 부르는 마물의 전승은 오래 전부터 전 세계에 존재했어요. 인간의 꿈에 기생하고 늘어나는 실체 없는 존재. 슬립 워커는 줄곧 이들과 싸워 왔어요. 저희 집안도, 사카이모리 양네 집안도."

점잖은 표정으로 말하는 란을 노려봐준 다음 사야가 말했다.

"속아서 중독된 게 진심으로 충격이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수면 중독 이예요. 처음으로 콘파루 양과 동침한 순간부터 호카게 양의 운명은 정해진 거예요."

한동안 말없이 생각한 후 사야는 마지못해 입을 연다.

"뭐…… 됐어, 어차피 잘 건데 못 자는 것보단 훨씬 나아."

란부터 시작해서 미도리, 카에데, 히츠지를 향해 눈길을 돌린 사야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같이 할 게……. 나 같은 사람 끼워넣었다가 무슨 일 생겨도 난 책임 못 진다."







루만도



초콜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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