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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립 워커는 꿈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특수능력자예요."
홍차와 차과자가 다 돌아간 후에 란이 단언했다.
"모든 사람의 꿈은 이어져 있고, 우리는 그곳을 한 세계로서 왕래할 수 있어요. 집합적 무의식 속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되겠네요."
"집합적 무의식──"
사야도 어디서 들어봤다. 모든 인간은 무의식 하에 이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의 신화나 상징에 공통분모가 있는 것이다, 뭐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보통 사람은 꿈속에서 의지를 잃어요. 의식 수준이 올라왔을 때도 상황을 꿈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지 기억이나 감정에 지배당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죠. 하지만 이따금 꿈속에서 자아를 지키는 사람이 있어요."
"사야는 꿈속에서 자기가 꿈꾸고 있다는 걸 자각해본 적 없어?"
히츠지가 묻는다.
"있었……을걸. 바로 깼지만."
"자기가 꿈을 꾼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지한 상태로 수면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적절한 훈련만 하면 꿈속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차차 늘어나죠. 무제한적인 명석활동도 가능해져요."
란은 말을 이었다.
"이렇게 꿈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면 그곳엔 광대한 꿈의 세계가 펼쳐져요.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보리진*은 드림 타임이라고 불렀어요. 저희는 꿈 속 세계를 '나이트 랜드', 깨어 있는 세계를 '데이 랜드'라는 이름으로 구별해요."
"나이트 랜드 안에선 뭐든 할 수 있어~"
소파 위에 양반다리로 앉은 토키시마 카에데가 전병을 우득우득 먹으며 끼어들었다.
"명석몽이라는 말 알아? 꿈을 꾼다는 걸 안 사람은 꿈을 통제 할 수 있게 돼.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캐릭터를 나오게 하거나 자기를 변신시킬 수도 있어. 완전 자유. 엄청 재밌어."
"도를 지나치면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명석을 잃을 때도 있지만요."
사카이모리 카에데가 홍차 컵을 후후 불며 말했다.
"기왕 뭐든 할 수 있으면 케이크건 뭐건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미각은 재현하기가 많이 힘들어요. 나이트 랜드에 갈 때마다 도전하는데 어쩐지 감촉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티슈를 먹는 느낌이라……"
"점장은 기합이 안 들어간 거야."
"안 그래요오. 있는 힘껏 시도해도 맛이 없는 게 너무너무 분한데……"
미도리가 카에데에게 불만스런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우리는 케이크 무한리필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는 게 아니예요. 슬립 워커에겐 다해야 할 사명이 있어요."
란이 말했다.
"그게, 수수를 쓰러트리는 거?"
사야의 물음에 란이 끄덕인다.
"맞아요. 나이트 랜드에는 수수──'샌드 비스트'로 알려진 존재가 도사리고 있어요."
"샌드 비스트? 모래…… 야수?"
"예전엔 샌드맨이라고 불렸어요. 독일 민담에 나오는 잠의 정령요. 사람 눈에 모래를 뿌려서 잠에 들게 하는……"
"스나카케바바*같단 말이지."
히츠지가 끼어들었다.
"스나카케바바는 그냥 모래만 뿌리는 걸 텐데……. 수수는 샌드맨이라고 부르기엔 그 행동에 지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샌드 비스트라고 부르게 된 모양이예요."
비스트──. 사야가 본 그것도 명백하게 인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니, 야수와도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이름은 뭐든 상관없는데, 수수는 대체 뭐야?"
"인간에게 뿌리를 뻗고 잠을 침식하면서 나이트 랜드에 곰팡이처럼 퍼져가는 것이예요── 자율몽, 정신기생체라고도 부름직하죠."
"잠을 침식한다…… 내 불면증도 그건가."
"네. 당신은 아마 수수 알레르기가 있는 걸 거예요. 주위에 수수가 있으면 잠이 다가 올 수 없어서 불면에 시달리게 되는."
"고양이 알레르기인데 그걸 모르고 고양이를 키웠다─ 뭐 그런 거지."
카에데의 비유에 란이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고양이는 수수보다 훨씬 귀여워요."
"엥, 그 얘기?"
"뭐 상관없어요. 어쨌건 수수에게 기생당한 사람은 나이트 랜드에 정신이 묶이게 되고, 이윽고 자아가 없는 상태로 데이 랜드에 수수를 퍼트리는 보균자가 돼요. 내버려두면 수많은 사람에게 기생해서 나이트 랜드를 침식하기 때문에 조기에 감염을 막아야만 해요."
"나도 그 보균자가 되기 직전일까?"
사야의 물음에 란은 고개를 저었다.
"호카게 씨는 다른 루트를 향했다고 봐요. 수수 알레르기 때문에 나이트 랜드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수수에게 기생당한 채로 심신이 깎여선── 이르건 늦건 죽었을 거예요."
사야에게 있어선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대번에 납득이 갔다.
──'잠 못 자서 죽은 사람은 없다'는 개뿔. 거짓말쟁이! 진짜 죽잖아!
"저기, 괜찮으세요?"
사야의 안색이 심하게 파래졌는지 미도리가 걱정스레 살펴본다.
"어, 응…… 고마워."
"반년이나 버티다니 대단해! 나였으면 사흘 만에 죽었을거야."
"너무 빠르잖아. 최소한 1주일은 버티라고."
카에데가 히츠지에게 태클을 건다.
"힘들었죠, 호카게 씨.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당신 같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슬립 워커가 있는 거니까요!"
란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편다.
"그러니까 다시 소개할게. 여기 있는 넷이 이 마을의 슬립 워커. 내가 리더인 아이조메 란."
란은 소파에 앉은 이들을 가리키며 순서대로 소개했다.
"콘파루 양은 '블랭킷'. 옆에서 자기만 하면 누구든 순식간에 재워버리는 취침사."
"취침사──?"
"내가 자면 주위 사람도 자 버려. 수업 중에 깜빡 잠들었다가 일어났더니 교실 애들이 전멸했을 때도 있었어."
"뭐어……? 선생님이 안 깨웠어?"
"선생님도 잠들었었어.."
그래서 교실이 아니라 양호실이나 옥상에서 잔 거구나──. 사야의 의문이 하나 풀렸다. 이해됨과 동시에 입에서 말이 툭 튀어나왔다.
"콘파루 씨랑 같이 있으면 잠드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누구든, 다 그래. 왜?"
"어……"
질문을 들은 사야는 혼란에 빠졌다.
──왜지. 아니, 왜 나만 그렇다고 생각했을까.
"사야만 잠드는 게 아니면, 안 돼?"
히츠지는 살피듯 사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냥."
당황한 사야에게 란은 소개를 이어갔다.
"토키시마 양은 '필로 파이터'. 나이트 랜드의 전투에 능한 슬립 워커예요."
"저, 전투?"
"맞아~. 수수는 꽤 공격적이거든. 방심하면 우리가 당해. 아무래도 난 남들보다 꿈을 조작해서 잘 싸우나봐. 사야찌한테도 가르쳐 줄게. "
카에데는 구김 없이 웃었다.
"미도리는 '베드 메이커'. 침구 쪽은 다 취급하는 기재 담당 이예요. 수면 환경을 조절하는 한 편 슬립 워크 중에도 우리 편의를 봐 주죠."
"저, 저기, 꿈속에서 뭔가 이상해지면 말 해 주세요. 어떻게 해 볼수 있을 거예요."
미도리는 소극적으로 말 한 다음 고개를 꼬빡 숙였다.
일제히 모이는 넷의 시선에 사야는 거북함을 느끼고 소파 위에서 몸을 틀었다.
"저기…… 이게 다야? 넷 뿐?"
"맞아. 네가 들어오면 다섯이 되지."
란이 테이블 너머에서 쭉 다가온다.
"어제도 말 했지만 네게는 '네버 슬리퍼'의 소질이 있어. 꿈속에 들어가도 꿈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잠을 잃은 자. '나이트키스트'── 수수에게 침식당한 희생자 중엔 이따금 그런 식으로 특수능력이 생겨나는 사람이 있거든."
"……나한테 뭘 시키게?"
기가 꺾인 사야에게 카에데가 태연히 말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일이야. 나이트랜드에 다이브 해서 인간에게 기생한 수수를 해치운다. 정의의 아군!"
그렇게 간단한 걸까……? 당황하는 사야를 향해 란이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그럼 일단 같이 잘까요."
"뭐?"
"뭘 할래도 일단은 호카게 씨한테 기생한 수수를 없애야지."
"아니 그건 그런데, 같이 잔다니, 그게 무슨……?"
"말 안 했던가. 슬립 워커는 동침으로 꿈을 공유할 수 있어. 너도 이미 해 봤잖아?"
이하 주석
에보리진: Aborigine 유럽인의 이주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살았던 최초의 종족.
스나카케바바: 일본 괴담 속 요괴. 사람에게 모래를 뿌려(혹은 그런 소리를 내서) 겁을 먹게 하는 요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