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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동침 드리머 2019. 2. 15. 01:22

07


일어난 넷을 따라 사야도 흠칫흠칫 일어났다.

카에데가 붙은 세 침대에 가면서 물었다.

"있지 리더 오늘도 이 침대 써?"

"사야찌가 있으니까 바꿔도 되지 않을까 해서."

"아…… 호카게 씨, 결벽증 같은 거 있나요? 없죠. 괜찮겠어요."

"왜 물어본 거예요. 말하기도 전에 정해버리는 건 좀 별론데요."

"콘파루 양을 끌어안고 잤으니 결벽증은 아니잖아요."

"으……윽……"

나도 모르게 도와달라는 듯이 히츠지에게 눈길을 보냈지만 히츠지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다. 잘 생각해보면 당사자한테 도움을 청해봤자 말이 안 된다. 굳이 따지자면 상대가 피해자니까.

"저기, 호카게 씨는 어떤 침대를 좋아하고 그런 거 있나요?"

미도리가 묻는다.

"침대도 좋고 이불도 좋고. 베개 내용물이나 시트 재료같이 원하시는 침구를 가르쳐 주시면 어지간해선 준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얘가 기재 담당 이랬었지──. 바뀐 화제에 내심 안심하며 사야는 고개를 틀었다.

"음~……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 불면증 때문에 침대도 바꾸고 해 봤는데 결국 전부 소용없었고."

"아 그렇군요. 그럼 지금 제일 좋아하는 침구는 히츠지 짱이겠네요."

"뭣……"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소리를 듣고 말을 잇지 못하는 사야에게 새 칫솔을 내밀며 미도리가 미소 지었다.

"자기 전에 양치하는 게 좋아요. 그건 드릴게요."

"싱크대 먼저 쓸게."

히츠지가 가방에서 꺼낸 양치 세트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칫솔을 든 채 잠시 굳어있던 사야였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란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본격적으로 자는 거예요. 몇 시간쯤……"

"그러게, 일단 3시간 정도로 해 둘까. 개인차는 있지만 수면은 거의 90분을 주기로 얕아졌다 깊어졌다를 반복하니까 슬립 워크도 그 시간을 기준 잡으면 스무스해요."

시계를 본다. 4시 반. 3시간 후면 어두워져 있을 때다.

"집은 괜찮아? 자기 전에 연락하는 게 좋아."

카에데도 휴대폰으로 뭐라 타이핑하며 말했다. 사야도 조언에 따라 언니에게 늦어진다는 메시지를 보내두기로 했다.


받은 칫솔로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군 후에 침대로 갔다. 각자 웃옷을 벗고, 리본이나 타이를 끄르고, 옷깃과 소매 깃을 푼 후에 양말을 벗고 잘 준비를 한다. 제각각 옷을 넣을 바구니가 있어서 거기에 벗은 걸 넣는 듯하다.

"자, 이걸 쓰세요."

사야는 미도리에게 바구니를 받고 머뭇머뭇 웃옷을 벗었다. 미도리는 시트를 새로 갈고 침대 옆 테이블 자명종을 맞추는 등 바쁘게 움직인다. 위를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서큘레이터 각도를 조절하기에 따라서 위를 쳐다보니 높은 천장에 업소용 대형 에어컨이 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부는 바람이 직접 침대에 맞지 않게 조절하는 모양이다.

카에데가 제일 먼저 침대에 뛰어들었다.

"사야찌, 다 됐어~? 누워 누워."

"으, 응."

거리 파악을 못 하겠네!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이 자자고 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까. 그냥 같이 자는 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준비하다보니 점점 긴장이 고조된다.

"실례……합니다."

"들어와 들어와~"

머뭇머뭇 침대에 오른다. 시야가 낮아지자 침대 위는 썩 넓게 느껴졌다. 퀸 사이드 침대 세 개를 빈틈없이 붙인 위에 주문제작으로밖에 안 보일 드넓은 시트가 덮여 있다. 그 위에 크고 작은 베개가 여럿 굴러다니고, 가지각색의 담요니 여름 이불이 마구잡이로 놓여 있다.

"다섯 명이 자니까 더울 지도 모르겠지만 배엔 뭐 덮어두는 게 좋아. 꾸룩꾸룩 하게 되니까."

벌써 바로 누운 카에데가 말했다.

다음으로 란이 침대에 올라왔다. 위에는 민소매, 아래엔 숏팬츠로 깔끔한 복장이었다.

"갈아입었네요."

"교복에 주름지니까. 호카게 씨도 잠옷 가져와도 돼. 미도리한테 준비해달라고 해도 되고."

"아니 아직 같이 한다고 안 정했는데……"

사야가 우물우물 반론하고 있자니 히츠지가 옆에 힘차게 앉으며 침대를 흔들었다.

"아직도 반항하는구나, 사야."

그런 히츠지는 어느새 차이나 느낌 나는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미도리! 너도 빨리."

"아 네~"

취침 환경이 만족스러워졌는지 란의 부름에 미도리도 침대에 올라왔다. 다섯이 다 모여도 침대엔 여유 공간이 남아서 돌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호카게 씨는 가운데로 가 줘."

란의 말에 사야가 당황한다.

"네? 저?"

"그럼 당연하지. 사야가 주인공인 파티잖아. 자 얼른."

히츠지도 재촉하기에 사야는 침대 한가운데로 밀렸다.

"어…… 어떡해요?"

"내키는 자세로 누워 주세요. 그냥 눕거나, 엎드리거나, 옆으로든 뭐든. 다키마쿠라 쓰세요?"

"아니, 필요 없어…… 아마."

위를 보고 누워서 큰 베개에 머리를 얹는다. 다른 넷도 사야를 둘러싸듯 제각기 다른 자세로 눕는다. 모두 머리를 사야 쪽에 향한 게 공통점이었다.

미도리가 손을 뻗어 리모컨을 누르자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좀 떨어진 커피 테이블 위의 작은 조명만이 부드러운 빛을 발한다.

히츠지가 곁에 있으니 금세 잠 들 줄 알았지만 썩 졸리지 않았다. 불을 끈 후에도 마음이 붕 떠서 잘 수가 없다── 꼭 수학여행 온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여자들만 모여서 잔다는 상황도 비슷하다.

"……저기"

사야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예전처럼 단숨에 잠들진 않네요."

"콘파루 양, 오늘은 천천히 가는 거야?"

란이 누운 채 묻자 히츠지가 답한다.

"모처럼 사야가 와 줬으니까 서두를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그 뭐랄까 빨리 못 자서 안달하는 건 아깝잖아?"

"이런 식으로 같이 자는 건 처음인걸요."

"맞아 맞아."

"콘파루 양의 블랭킷 능력은 대단해요. 평소엔 억누르지만 하려고만 하면 끝없이 넓어지거든요."

"이래봬도 누르는 실력이 는 거야."

히츠지가 어쩐지 자랑스레 말한다. 란이 사야를 향해 미소 짓는다.

"걱정 말고 마음 편하게 가져. 곧 졸려 올 테니까 거기에 몸을 맡겨. 어려운 생각은 안 해도 돼. 평범하게 자면 돼……"

"평범하게 자는 방법은 이미 잊었는데요."

사야의 불평에 히츠지가 말한다.

"얘기하고 있어도 괜찮아. 무슨 수를 쓰든 내가 있으면 다들 확실하게 잠드니까."

"그러게요. 모처럼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이번 기회에 물어보세요. 궁금한 것투성이잖아요."

란의 말에 사야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럼…… 이런 건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

"슬립 워커요? 같은 역할이었던 사람은 고대부터 있었다나봐요. 저희 집안에는 헤이안(서기 794~1185년; 역주)시대에 교토에서 베개맡의 주술 운운하는 문서가 전해져 와요."

"선배 가문에?"

"맞아요. 집이 신사거든요. 사카이모리 가와 오래 전부터 교류가 있었는데──"

"전 점장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가 서둘러 침구점을 이어야 했거든요."

미도리가 이어가듯 말한다.

"란 짱은 슬립 워커의 지식을 물려받아서 둘이 시작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저랑 란 짱 밖에 없었어요."

"콘파루 씨랑 토키시마 씨는?"

"나랑 히츠지찌 둘 다 수수한테 당하게 생긴 걸 리더랑 미도리가 구해줬어. 그러니까 사야랑 같은 경위지."

"그렇구나……"

대화가 끊기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다시금 입을 열었을 때, 사야의 말투는 약간 흐리멍덩한 것이었다.

"왜 여자만 모였나 싶었거든요, 처음에."

"……네"

란의 맞장구도 간격이 조금 늘어진다.

"이렇게 같이 잔다고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싶지만 지금은"

"네에……"

"그래서 생각했어요. 여기엔 여자뿐이지만 슬립 워커가 달리 있으면, 그러면 거기서도 똑같이 여럿이 하면, 어딘가엔 남자만 모여 자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맞아! 그거."

카에데가 힘차게 외쳤다. 약간 발음이 뭉개졌지만.

"엄청 보고 싶어. 남자만 모인 슬립 워커. 뭣하면 내가 책 낼게. 동인지."

"봐 보고 싶어요, 그 책."

"어~ 그건 좀."

"그럼 왜 얘길 꺼냈어요……"

"그건, 그러니까, 왜……"

영양가 없는 이야기도 한 몫 해서 사야도 점점 멍해졌다. 의식이 머리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듯한, 현기증과 비슷한 감각이 생겨난다. 그것을 느낀 듯 히츠지가 속삭인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 한 마디가 방아쇠가 된 건지 사야의 의식은 그 직후에 잠에 빠져들었다.




저 산 골짜기에 용 한마리가 사는 것을 마을 이들은 오랫동안 아무도 몰랐다. 어느 해질녘 약장수 하나가 서둘러 가려고 마른 계곡을 지나려했을 때 그곳에 커다란 도마뱀이 누운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약장수는 한껏 긴장했지만 용은 눈을 반쯤 뜨고 흥미 없는 듯 한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불꽃 숨결로 숯이 되지도, 긴 목을 뻗어 단숨에 삼키지도 않으리라 안심한 약장수는 흠칫대며 용에게 다가갔다. 용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당신은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시냐고 묻자 용이 대답한다. 이 계곡에서 백합꽃이 안 핀 지가 오래다. 너도 알겠지만 용은 꽃을 먹는 것이다. 나는 백합 꽃을 먹고 기천년을 살아왔지만 꽃이 피지 않는다면 방도가 없다. 이제 이 불모의 계곡에서 썩어갈 뿐이다.

허무하게 설명하는 용의 비늘은 아름다운 흰 색, 긴 꼬리와 날개 끄트머리는 연한 황록색. 눈은 짙은 노랑으로 빛난다. 저 모습을 본 약장수가 말했다. 자기를 한 번 돌아보라고. 계곡의 백합을 다 먹어치운 당신은 꽃 그 자체가 된 것이라고.

약장수가 내민 손거울을 들여다 본 용이 말했다. 과연 그랬군, 먹을 꽃이 없어질 만 하다. 내가 이미 백합이었구나. 하지만, 과연, 그러면 앞으로 어떡해야 하리오. 오랜 세월동안 백합 먹는 대룡大龍으로 살아왔기에 다른 삶을 모른다. 인간이여, 알고 있다면 가르쳐 주지 않겠는가. 그 말을 마칠 무렵에 용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마른 계곡이었던 곳은 눈길 닿는 곳 모두 백합 꽃밭이 돼 있었다. 이게 거기서 따 온 백합꽃이야. 나는 콘파루 히츠지에게 한 송이 백합을 내밀었다.

히츠지는 백합을 받아 들더니 눈을 감고 얼굴을 가져다 댔다.

"향이 좋네. 너무 진해서 머리가 어찔거려."

"괜찮은가? 내 사랑, 나를 안아주는 빛나는 양모야, 누워도 된단다. 풀이 요가 되어 우리를 부드러이 안아줄 테니. 꽃 먹는 도마뱀의 잠자리보다 좋은 침대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테니."

"내 소중한 사야, 정말로 대단해. 하지만 그건 다음에 해요."

"왜 그러니. 이 백합 계곡에 우리 둘 뿐인데 뭐가 부끄러울까."

"아, 사야, 그대, 들고 있는 거울을 보아요."

그 말에 나는 손거울을 들여다본다. 은색 표면에 아무 것도 비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내 사랑아?"

"손 줘 봐 사야."

시키는 대로 내민 내 손 검지를 히츠지가 잡아 늘리자 손가락은 아무 저항 없이 늘어난다. 10센티, 20센티, 아픔도 위화감도 없이 늘어난다. 문득 깨달은 나는 외쳤다.

"앗!? 꿈이다!"




"헉."

사야는 너무 큰 충격에 눈을 떴다. 어두운 창고를 커피 테이블 위의 조명이 비추고, 침대 위엔 넷이 누워 있다. 고요한 숨소리 사중주에 사야의 거친 숨소리도 섞여든다.

쭈뼛쭈뼛 옆에 누운 히츠지에게 시선을 향한다.

히츠지는 자면서도 눈살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사야의 가슴팍에 얹는다.

"안 끝났잖아…… 도망가지 마……"

세상이 휘청 돌더니 사야는 다시금 잠 속에 끌려들어갔다.



나는 콜로세움의 메마른 모래에 뺨을 처박고 쓰러졌다. 추가 달린 전투용 그물이 발버둥 칠수록 엮여든다. 상대 검투사가 삼지창을 들자 객석이 와 끓어오른다.

마무리를 지으라고 외치는 관객들. 귀빈석의 황제가 손을 들자 소란은 썰물처럼 사라졌다. 몇 천 명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황제의 손이 엄지를 아래로 내리그이자 관중이 다시금 환성을 터트린다.

검투사는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꼼짝도 못하는 내 곁에 오더니 삼지창을 내 등에 박아 넣었다.

아프진 않다. 숨 쉬기가 어려울 뿐. 이렇게 죽는 건가 싶은 충격과 안타까움에 눈물이 흐르려 하자 검투사가 말한다.

"어, 저기, 괜찮아? 사야찌."

"……어?"

고개를 들자 검투사 복장을 입은 카에데가 숙여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창에 찔린 줄 알았는데 온데간데 없다.

"토키시마……씨."

"맞아 사야찌. 겨우 잡았네. 이건 꿈이야. 이해 돼?"

"방금 알았, 는데, 숨을, 못 쉬겠."

"갑갑하대. 미도리~"

사이렌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투기장 모래 위로 구급차가 달려오더니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건 구급대원 옷을 입은 미도리였다. 모래에 무릎을 대고 나에게 말 한다.

"괜찮아요, 흔히 있는 일이예요. 데이랜드 쪽에서 배 위에 손 같은 걸 얹으면 살짝 갑갑한 느낌이 꿈속에서 증폭된 다음 심하게 앓는 소리를 내는 거예요. 진정하고 천천히 심호흡을 해 주세요."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그렇게요. 갑갑할 땐 당황하지 말고 숨 쉬는 데에 집중해 주세요."

"으, 응."

"꿈속에서 질식하지도 않고, 최악의 경우라도 그냥 깨고 끝이에요. …… 이제 괜찮아 보이네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어느 샌가 모래 위에 두 발로 서 있었다. 가득 찼던 관객석엔 아무도 없다. 남은 건 귀빈석의 황제뿐이다.

황제── 토가를 두르고 월계관을 쓴 히츠지가 살포시 모래 위로 내려섰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나를 올려다본다.

"꿈이라고 가르쳐 줬는데 도망치는 건 너무하잖아."

"미안해. 너무 놀라서 그만."

뾰로통한 표정도 귀엽다고 생각하며 히츠지의 이마에 키스한다.

"엄멈머."

카에데가 눈을 크게 뜨곤 얼빠진 소리를 낸다.

"어, 어? 원래 그렇게 사이 좋으셨나요?"

깜짝 놀란 듯 묻는 미도리를 본 나와 히츠지가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터트린다.

"맞아. 왜 그런 걸까."

"그렇단 말이지. 왜 그러려나."

"아~, 그렇구나~"

카에데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댄다. 어쩐지 재밌어 보인다.

"사야, 자면서 꿈을 꾼다는 사실을 깨닫는 간단한 기술을 가르쳐 줄게. 레슨 1이야."

"응 가르쳐 줘. 히츠지 선생님."

"명석몽을 꾸는 유명한 방법이야. 자기 손을 보는 거지."

"손?"

나는 그 말대로 두 손을 펼쳐 내려다본다.

"일상에서 자기 손만큼 익숙한 건 거의 없지? 그런 것 치고는 모양이 굉장히 복잡해. 아마 손을 보면 적당하게 뇌에 부담이 걸린다고 보거든. 그 때 손가락을 잡아당기고 그러면 아무 저항 없이 변하니까 꿈을 꾼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어."

"진짜네!"

두 배로 길어진 검지에 깜짝 놀라 소리친다. 당기던 손을 놓자 청소기 전선을 정리하는 것처럼 슈룩 원상복귀 됐다.

"처음에 했던 것처럼 거울을 보는 것도 좋아. 꿈속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거울이 정상적으로 비치지 않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기억해 둘게."

"손을 갖고 노는 건 꿈속에서 변신하는 훈련 시작점으로도 좋다고 봐. 익숙해지면 이런 것도──"

그렇게 말 한 카에데는 힘차게 두 팔을 뻗었다. 순식간에 깃털이 자라나더니 대충 3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맹금류의 날개가 생겨난다. 지금 투기장 모래 위에 있는 건 사람 얼굴에 새 몸통이 달린 아름다운 괴물이었다. 카에데는 날갯짓으로 모래를 흩날리며 떠올랐다. 구급차 지붕에 내려앉더니 비늘 달린 발톱이 차체에 손쉽게 구멍을 냈다. 괴물의 무게에 타이어 네 개 다 터지더니 차체가 가라앉는다.

"흐흥~ 어때?"

"엄청…… 예뻐."

"그치~"

내 감탄에 카에데는 새가슴을 으쓱댔다.

미도리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카에데 양, 너무 우쭐거리지 마세요."

"안 그랬거든!"

"그건 그렇고…… 리더는 어딨어?"

히츠지가 주위를 두리번대며 돌아본다.

"여기 있어요."

의외로 가까이에 그 답이 있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자 란이 모래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후드가 달린 망토에 큰 활과 화살집을 멨다.

"이것 좀 보세요."

그렇게 가리킨 곳을 보자 모래 위에 작은 흔적이 수없이 남아있었다. 지네처럼 다리가 많이 달린 게 기어간 흔적으로 보였다.

"이게 뭐예요."

"호카게 씨에게 기생한 수수 발자국 이예요."

란이 일어나며 말했다.

"여기서 끝장내려고 했는데 이상을 알아챘는지 도망친 모양이에요."

"도망친 거면 이제 수수한테 안 시달린다는 뜻?"

"그러면 좋겠지만 가만있으면 다시 와요."

시원스레 내뱉은 란의 말에 내 기쁨이 무로 돌아갔다.

"혹시 눈치를 챈 게 제가 꿈에서 나가서 그런 건가요."

"그것도 있겠지만 마음 쓰지 마세요. 수수는 원래 슬립 워커를 경계하니까요. 어찌 됐건 쫓아가면 끝이에요."

"맞아 맞아, 그러니까 빨리 가자!"

카에데가 재촉하듯 날갯짓한다.

"네. 호카게 씨, 이 투기장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풍경이예요. 마침 좋은 기회니 저 벽을 없애 보죠."

"어, 제가요?"

당황해서 되물었다. 주위를 빙 둘러싼 건 벽이라기 보단 거대한 건축물이다. 절구 모양 관객석은 언뜻 봐도 튼튼한 석조인지라 없애라고 해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레슨 2예요. 아무리 튼튼해 보여도 나이트 랜드의 모든 것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해요. 부수자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부서져요. 지우개로 지우든, 폭탄으로 터트리든, 빔으로 녹이든. 상상하기 쉬운 방법이면 충분해요."

상상하기 쉬운 방법……. 투기장 가로 걸어가 벽을 만졌다. 거슬거슬하게 손바닥에 전해지는 돌의 감촉. 태양에 달궈졌을 텐데도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잡을 것 하나 없이 솟아오른 벽에 손가락으로 네모 모양을 그린다. 돌 위에 얇은 선이 새겨지기에 손톱을 끼워서 잡아당겨 봤다. 벽돌만 한 돌이 쑥 빠지곤 모래 위에 떨어진다.

그 순간 주위 벽이 지지대를 잃은 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붕괴는 쉼 없이 점점 더 힘차게 도미노처럼 넓어진다. 관객석에 귀빈석까지 10초도 안 돼서 모래 위에 흩어졌다.

덮쳐오는 엄청난 모래 먼지에 얼굴을 가리기 전에 세찬 바람이 뒤에서 불어왔다. 뒤를 보자 카에데가 모래먼지가 범접하지 못하게 큰 날개를 펼치고 날갯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너지는 돌들은 모래 속에 파묻히고, 어느 샌가 주위는 끝없는 사막으로 변했다.

"어때."

큰 일 해 낸 심정으로 묻자 히츠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없네~"

"에엑."

"얼마든지 더 호화로울 수 있었을 텐데."

"대단해보이면 장땡이 아니예요. 처음 한 것 치곤 잘 했다고 봐요."

미도리가 응원해줬지만 충격 탓에 감사인사도 못 했다.

"화려할 필요는 하나도 없지만 상상력의 폭을 일부러 넓혀두면 꿈속에서 자유도가 높아져요. 꿈이 단조로워지는 건 위험하다는 신호니까 대충이나마 기억해 두세요."

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진 않았지만 끄덕였다.

"어쨌건 이제 시야가 넓어졌어요. 수수를 쫓아갈 수 있겠네요."

란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발자국이 투기장이 있던 곳을 넘어 저 멀리 있는 모래 위에도 새겨져 있었다.

"그럼 가 볼까요. 이번엔 탈 것을 만들어 보죠. 호카게 씨, 한 번 해 보세요."

"만든다니…… 이번엔 어떡하면?"

"레슨 3이예요. 꿈속에선 뭐든 만들 수 있어요. 무기, 도구, 탈것까지. 당신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 하엔 뭐든지. 아까랑 똑같아요."

"복잡한 건 어려운데, 복잡하다는 생각을 안 하면 의외로 쉬워."

카에데가 끼어들었다.

"무슨 뜻인데?"

"음~ 어, 예를 들어 총을 만들고 싶잖아? 그런데 총은 사실 구조가 꽤 복잡하거든.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어?"

"안 돼."

"그치. 그런 데에 걸리면 말짱 황이야.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오는 것쯤 된다고 대충 생각해보면 쉰게 만들 수 있어."

"그렇구나……?"

나는 잠시 생각한 다음 이동수단을 떠올리려 했다. 자동차…… 비행기…… 썰매……. 떠올랐다 사라지는 막연한 이미지 중에 하나를 잡아 디테일을 살리려 시도한다.

쿵쿵대며 모래를 밟는 소리가 들리길래 고개를 들었다. 다섯 마리 말이 서 있었다.

"……나왔다."

카에데는 안심해서 혼잣말을 내뱉는 나를 재밌어하는 목소리로 말한다.

"사막인데 낙타가 아니네?"

"아, 그렇구나…… 그까진 생각 못 했어. 다시 해야 할까."

"이것도 좋잖아. 멋진걸."

이번엔 히츠지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도 말발굽은 모래 위로 뛰기 힘들지 않아?"

"땅을 바꾸면 돼."

그러더니 히츠지는 쓰고 있던 월계관을 던졌다. 떨어진 데서부터 모래 위에 풀이 돋아난다. 순식간에 녹색 융단이 펼쳐지곤 모래를 덮어간다. 수수의 발자국이 있던 부분에는 색색깔 꽃이 피었다.

"이제 됐다. 가자!"

우리는 말 등에 올라탔다. 카에데도 변신을 풀고 인간이 되선 구급차 지붕에서 내려왔다. 말을 타 본 적도 없는데다 안장이니 등자니 하는 것도 없지만 꿈속이기에 아무 불편 없이 올라탈 수 있었다. 딱 한가지 문제만 빼고──.

"어? 어라~?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후후훗! 웃긴다!"

제각기 웃음소리가 터진다. 내가 만든 말에 타면 영문을 모르겠지만 뒤로 돌아 버린다. 즉, 진행 방향 반대인 꼬리 쪽을 보면서 말을 타게 되는 셈이다.

"사야, 너, 엄청 꼬였구나!"

신나서 말 한 히츠지가 자기 말 엉덩이를 찰싹 때린다. 말이 단숨에 달려 나가고 누구 할 것 없어 환성이 터진다. 나도 고무감이 충동질하는 대로 웃었다.

맑던 하늘은 어느 샌가 푸름 얽힌 밤빛으로 변했다. 그래도 주위는 충분히 밝아서 잘 안보이고 그러진 않았다.

지평선에서 큰 달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크고 아름다운,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달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달밑에서 거꾸로 말을 탄 채 웃고 떠들며 달려간다.

몇 분인지, 며칠인지, 몇 달인지가 지나고 앞쪽에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목을 얽어 만든 철사 예술품처럼 생긴 그것은 여러 다리를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우리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발자국에서 차례차례 꽃봉오리가 부풀고 꽃이 피어난다.

"저게 나한테 딸린 수수──?"

"그런가 보네요."

"좀, 크지 않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수수의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 학교 건물만한 거대 조형물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풀밭 위를 맹진한다. 마침내 말이 따라잡은 후에 옆에 가니 크기 차이에 압도당할 것만 같다.

"사야! 겁먹지 마!"

히츠지가 발굽 소리에 지지 않는 소리로 외친다.

"네가 겁먹을수록 수수도 강해져!"

"아, 알겠어……"

말은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섭다.

"이걸 어떻게 쓰러트리…… 으악!?"

수수 옆에 달린 다리가 일제히 들리더니 주위를 쓸어냈다. 땅이 움푹 패고 말들이 차례대로 넘어진다.

공중에 뜬 내 몸을 뭔가가 잡았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다시금 괴물 인면조가 된 카에데가 나를 발톱으로 잡고 있었다.

카에데가 힘차게 날갯짓 하고, 땅이 쑥쑥 멀어진다. 수수 등 위에서 카에데가 발톱을 풀었다.

내려앉은 등판에는 긴 털이 돋아 있는 게, 거대한 장모종 강아지 같았다. 복사뼈까지 쑥쑥 빠진다. 밑에서 봤던 기계같은 느낌과는 달리 생물같은 게 의외였다.

카에데가 내 옆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었다.

"고, 고마워."

"오케오케"

"다른 애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니 미도리가 등에 올라탔다.

"굿 잡이었어요 카에데 양."

"긋치."

새처럼 끽끽 웃는 카에데 뒤에서 히츠지가 두둥실 떠오른다.

"아 사야, 무사했네."

"안 무사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히츠지는 안 도와줬잖아."

"사야는 그 정도에 안 당하잖아. 나, 아주 잘 아는 걸."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히츠지와 함께 있으면 뭐든 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늘을 난다든가.

마음속에서 떠올린 순간 아무 전조 없이 발이 떠올랐다.

"악!"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제어에 실패하고, 위아래가 팩 돌았다. 위엔 수수의 등판, 밑에 하늘이 펼쳐진다. 다음 순간 나는 낙하하기 시작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히츠지와 애들이 순식간에 멀어진다. 끝없이 이어진 푸르른 허공에 빨려드는 공포에 비명을 지르기 직전, 목덜미를 잡혔더니 낙하가 갑자기 멈췄다.

"소질이 있네요, 호카게 씨."

목을 뒤틀어 돌아보니 날 잡은 건 란이었다.

"레슨 4는 하늘을 나는 방법, 이었는데, 벌써 터득한 거예요?"

"모, 모르겠어. 갑자기 떠올라서."

"꿈속에서 나는 건 쉬워요. 특별하다는 생각 말고 평소에 걷고 말하는 것처럼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비결 이예요."

"당연히 토키시마 씨처럼 날개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맞으면 날개든 뭐든 써도 돼요. 하지만 아무 것도 없이 날려고 해도 날 수 있어요. 방금처럼 당황해서 제어에 실패하면 움직임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가니까 최대한 빨리 익숙해져야겠죠."

어느 샌가 내 발은 다시금 땅을 향했다.

히츠지와 애들이 두둥실 떠올라선 나와 란 곁으로 모여든다.

모두 모이는 걸 기다렸다가 입을 연 란.

"자── 그럼 저 수수를 잡아 보죠."

란이 화살집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메긴다. 끼릭댈만큼 당겼다 놓자 화살이 일직선으로 수수 등판 한중간에 꽂힌다.

수수가 포효한다. 전자악기 소리 비슷했지만 울음소리라고 본다. 그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되는 양 카에데는 날개를 접고 급강하 한다. 발톱이 달린 네 다리가 떨어지는 힘을 담아 수수의 몸에 박히고, 찢어발긴다. 털이 흩어지더니 다리인지 골격인지 모를 게 쏟아진다.

히츠지가 두 주먹을 부딪히자 거친 쇳소리가 났다. 어느 샌가 황금 권갑이 손에 달려 있었다.

"먼저 갈게, 사야!"

히츠지는 그 말을 남기고 수수에게 날아갔다. 등짝에 내려앉더니 엄청난 기세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데이랜드와의 차이에 깜짝 놀랐다. 히츠지는 이렇게 화끈한 애였던 건가…….

다음엔 미도리 차례지 싶어서 눈치를 보니 미도리가 말한다.

"가요, 호카게 씨. 전 베드 메이커라서 기본적으로는 엄호 대기하거든요."

듣고 보니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란이 이번에는 활을 위로 겨누더니 수수가 아니라 진행방향에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레슨 5예요 호카게 씨. 어찌 됐건 상상력이 달하는 한, 무자비하게, 엉망진창으로 박살내 주세요."

박살낸다…… 박살낸다……?

난 낯선 쪽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무언가.

어찌어찌 나온 건 이상하게 생긴 성게라고 해야 할 지 가시 달린 별사탕이라 해야 할 지모를 것이었다.

"그게 뭔가요?"

미도리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뭘까……"

내 당황을 뒤로 한 별사탕이 수수를 향해 떨어진다. 어떻게 될지 지켜봤더니 수수 근처에서 모조리 폭발하길래 몸을 뒤로 제낀다. 잔뜩 달린 수수 다리 몇 개가 날아가더니 자세가 크게 흔들린다.

히츠지가 주먹을 치켜들고 항의하는 외침을 날린다.

"위험하게~!"

"미안!"

많이 다친 듯 보였지만 수수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반쯤 박살나고, 조각들을 흩뿌리면서도 한결같이 앞으로만 나아간다.

거기에 갑자기 큰 그림자가 생긴다.

위를 보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동시에 얇고 긴 게 보였다. 땅울림과 함께 박힌 그것은 나선을 그리며 솟구친 석탑이었다. 수수는 진로를 바꿀 틈도 없이 갑작스레 생겨난 첨탑에 부딪친다.

아래쪽에서 부러진 첨탑은 엄청난 양의 돌을 위에서 쏟아 붓는다. 수수의 다리가 하나하나 부서지고, 몸통에 모래 위에 쓰러진다.

다른 셋과 동시에 나도 서둘러 물러난다. 끝없이 쏟아지는 돌이 수수를 생매장한다.

이윽고 붕괴가 멈추자 조용해졌다. 수수를 깔아뭉갠 돌무더기 꼭대기에 란이 살며시 착지했다.

"후우. 다들 괜찮아?"

뜬 채로 다가간 나도 돌산 위에 내려앉는다.

"대단하다. 저 탑 아이조메 선배가 아까 쏜 화살이죠?"

"호카게 씨 흉내를 내 본 거야."

란의 말이 끝나자 카에데가 내려왔다.

"짭이네."

"그쯤 뭐 어때."

"상상력이 빈곤해서 좋을 거 없다고 그런 건 리더잖아."

미도리와 히츠지가 내려오니 다시금 다섯이 됐다.

"히츠지. 이제 나한테 붙었던 녀석은 퇴치했다고 봐도 돼?"

"아니. 수수 안에 핵같은 게 있는데 그걸 부숴야 해."

"핵?"

"봐 봐."

히츠지가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돌산에 내리찍었다. 돌이 산산조각나자 밑에 깔린 수수가 드러난다. 그 순간 몸부림치려는 몸통에 히츠지의 손이 엄청난 속도로 박혔다.

팔꿈치까지 박혔다 빠진 손에는 연하늘색 계란 같은 게 들려 있었다.

수수의 몸에 부슬부슬 무너지기 시작했다. 겉이 차츰차츰 모래처럼 잘아지더니 땅과 분간이 힘들어진다.

히츠지가 주먹을 쥐었다. 작은 손 안에서 수수의 핵이 건조한 소리와 함께 깨졌다.

동시에 어디선가 종소리 같은 중저음이 퍼졌다.

이게 뭐야──? 내가 말했지만 점차 커지는 소리에 묻혔다. 이윽고 공기 자체가 드드득 떨리더니 지면의 모래가 끓어오르듯 솟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알람에 눈이 뜨였다. 사야를 둘러싼 넷도 꾸물꾸물 움직인다. 히츠지는 처음 누운 자리에서 180도 돌아서 오른다리를 사야 가슴 위에 척하니 얹어뒀다. 

이래서 갑갑했나──. 사야가 발목을 잡아 치우자 히츠지가 항의하듯 앓는 소리를 낸다.

"하~지~마~"

"내가 할 말이야!"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잠버릇이 별로였다. 개중에도 란은 온 몸을 뒤튼 데다 침대에서 떨어진 상태였다.

미도리가 침대 위를 기어가더니 알람시계를 껐다. 누웠을 땐 알람시계 제일 가까이 있었는데 자면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반대편에서 잔 모양이다.

"음~~~~, 잘 잤다!"

카에데는 기지개를 켜더니 벌떡 일어나 침대를 나섰다. 목을 뚝뚝 꺾으며 화장실에 걸어간다.

사야도 뒤따라 침대가로 기어가 다리를 내민다. 맨발에 닿는 바닥이 서늘하다. 일어서려다 휘청거렸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어두워진다.

"……어쿠쿠쿠"

"괜찮아요? 힘들었죠."

침대 가에서 안경을 끼던 미도리가 말했다.

"힘들었다기 보단…… 뭔가 어찔했어."

"저혈당이에요. 뇌가 엄청 열심히 활동해서 당분이 부족한 거거든요. 커피 끓일 테니까 단 것좀 먹고 잠깐 쉬죠."

곧 온 창고에 커피 향이 퍼지자 못 일어나던 히츠지나 란도 겨우 일어났다. 머리와 옷이 약간 흐트러진 다섯 명은 다시금 소파에 앉았다.

초콜릿과 함께 진한 커피를 받았다. 안 그래도 블랙커피를 못 마시는데다 카페인이 들어간 걸 한동안 피하던 사야였지만 입에 머금은 초콜릿이 뜨거운 커피에 녹아가는 감촉을 즐기고 있자니 지친 뇌에 당분이 들어차는 느낌이 났다.

"이제 호카게 씨도 슬립 워커네요."

란이 말했다.

"같이 한다고는 아직 한 마디도 안 했을 텐데요."

"다시 물어볼 필요도 없을 줄 알았는데. 한 잠 자고 깬 기분은 어떤가요?"

사야는 침묵했다. 기분은 좋았다── 요 반 년간 느껴본 적도 없는, 더없이 상쾌한 기상. 아니, 어쩌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잔 중에 가장 기분 좋게 깬 걸지도 모른다. 겨우 3시간 잤는데 8시간 꽉 채워 잔 듯 머릿속이 상쾌했다.

"분명 호카게 씨에게 쾌적한 수면을 약속한 기억이 나는데요."

"……기억나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하지만 이제 저한테 기생한 수수는 쓰러트린 거죠? 그럼 더 이상 제가 뭘 할 필요가──"

"당연히 강요할 생각은 아니예요. 앞으로는 평범하게 잘 수 있을 거예요. 혼자서도요."

사야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 란이 미소 짓는다.

"하지만, 오늘처럼 기분 좋은 잠은 같이 슬립 워크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을 거예요."

"…………"

"모처럼 이렇게 만났으니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천천히 생각해 주세요."

사야는 말문이 막히고, 카에데가 말한다.

"이야~ 그건 그렇고 히츠지찌 사야찌가 그런 사이였을 줄이야."

미도리도 끄덕인다.

"그렇죠, 약간 놀랐어요."

"허?"

"허? 는 무슨. 완전 애인이더니. 자기 전엔 전혀 몰랐는데."

그 순간 사야의 뇌리에 꿈속에서 히츠지와 나눈 대화가 단숨에 떠오른다.

"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일어서는 사야. 자기도 모르게 히츠지를 쳐다본다. 히츠지는 말없이 사야를 마주보며 눈을 마주친 채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아, 아냐. 아니라고."

"뭐가 아닌데 사야찌."

"그건 꿈! 꿈속에서만 그래!"

"뭐어? 키스 했었잖아."

"안 했…… 했지만 이마잖아! 무효지!"

"꿈속이니까 무효? 너무하지 않아요?"

누가 봐도 미도리의 말투는 놀리는 것이었지만 사야는 그걸 지적할 여유조차 없었다. 란은 싱글싱글 웃으며 듣기만 하고, 히츠지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긴 커녕 사야의 반응에 화가 난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아~! 난 몰라! 갈 거야!"

사야는 일어나서 가방을 들었다.

"마음이 정해지면 또 와 주세요."

미도리가 말 한다.

"사야는 어차피…… 올텐데."

히츠지는 말하면서 하품한다.

다 안다는 말투에 울컥한 사야는 침실을 뒤로하고 창고 출구를 향해 잰걸음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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