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문을 열자 책상에 앉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던 양호 교사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 호카게 양."
"안녕하세요."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사야는 양호실 안을 둘러본다. 오늘은 안쪽에 있는 침대 커튼이 활짝 열린 채 아무도 자고 있지 않았다.
사야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양호 교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많이 힘들어 보이네. 역시 아직도 못 자겠어?"
"네……"
그 후로 이틀. 사야는 다시 불면 상태다.
아주 잠깐 사야에게 찾아왔던 잠이었지만 그 후론 무슨 수를 써도 재현되지 않더니, 결국 또 지금까지처럼 몽롱한 나날이 시작되고 말았다. 또 한 번 눈앞에서 안식을 빼앗긴 사야의 초조감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
양호 교사가 시계를 흘긋 쳐다본다.
"오후엔 쉬다 갈래?"
"아, 아뇨. 저기, 여쭈고 싶은 게 있어서."
사야는 주저하며 말했다.
"저번에 왔을 때 모르는 애가 왔었어요. 뭔가, 폭신하고 긴 머리카락에, 저보다 아마 키가 작고──"
키를 표현하려고 두 손으로 애매한 모양을 만드는 사야. 그 손을 내리곤 점점 작아지는 소리로 말 했다.
"……아는 건 그게 거의 단데."
양호 교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폭신하고, 키가 작아? 다른 건?"
다른 건── 부드럽고, 해님처럼 좋은 냄새가 났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 말하긴 꺼려졌다.
"너무 잠깐이라……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걔가 왜?"
"제가 누워있던 침대에 쓰러지더니 잠을 자서. 누군지 물어보려고 한 건데…… 겨우 이걸로 어떻게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발걸음을 돌리는 사야에게 양호 교사가 말했다.
"혹시 콘파루 양인가."
"콘파루?"
양호 교사는 뒤로 돈 사야에게 끄덕여 보였다.
"혹시 그러면 양호실에 온 게 더 희한하네. 호카게 양이랑 같은 2학년일 텐데, 어떤 의미론 너랑 정 반대라고 할 수 있겠네."
"정반대면…… 어떻게"
"콘파루 양은 있지── 언제, 어디서건 자고 있어."
언제, 어디서건.
수업중인 교실에서도, 점심시간 안뜰에서도, 방과 후 도서실에서도.
저 콘파루인지 뭔지 하는 녀석은 굳이 보건실 침대를 쓸 것도 없이 학교 안의 온갖 곳에서 자는 모습을 보인다는 모양이다.
부럽다…….
양호실을 뒤로 한 사야는 정처 없이 학교에서 걷고 있었다. 문득 의식했을 땐 오후 수업이 시작된 지 10분 넘게 지난 상태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자니 옆에 있는 교실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에 있는 불투명 유리 탓에 안이 어떤지는 잘 안 보인다. 어렴풋한 사람 모양과 흐릿한 말소리. 벽 너머에서 느껴지는, 수업을 받는 여학생들의 왁자지껄한 기척. 수족관 수조 앞을 지나는 기분이다. 여기 있다는 걸 들키자마자 몇십 개나 되는 눈이 슥 하고 자신을 향한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서 있기 거북해졌다. 사야는 발소리를 죽이고 건물 안을 걸어다녔다.
이제 와서 자기 교실로 가기엔 내키지 않는다. 다음 쉬는 시간까지 어디서 시간을 죽이고── 아니, 난 애초에 뭘 하고 있던 거더라?
건물에서 구름다리로 나서자 안뜰이 눈에 들어온다. 물 없는 분수 가장자리는 앉기 딱 좋은 높이와 폭이라 낮잠 자긴 딱이겠지만 창문이란 창문에서 다 보인다. 지금은 수업중이니 교사한테 들키기라도 했다간 순식간에 학생지도실 행이리라.
아무도 안 앉은 분수를 쳐다보다 사야는 겨우 떠올렸다.
──맞아. 그 녀석을 찾고 있었다.
콘파루 히츠지라는 폭신거리는 여자를.
다시 불면에 고통 받게 된 요 이틀은 사야에게 가만히 생각할 시간이었다. 왜 그 때만 잠에 빠졌을까. 다른 상황과의 차이는 뭔가.
졸음에 흐릿한 머리로도 답은 명백했다. 콘파루 히츠지다. 그 녀석이 침대에 쓰러진 순간 갑자기 잠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자면 잘 수 있다는 뜻인가……? 어젯밤엔 그런 생각에 언니와 함께 자자고 해 봤다.
한 숨도 못 자고, 게다가 언니의 몸부림에 침대에서 밀려 떨어졌다.
그렇다는 건, 범위가 더더욱 좁혀진 셈이다.
사야는 몽롱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 녀석이어야만, 해."
언제 어디서건 잘 수 있다는 콘파루 히츠지가 지금은 어디서 자고 있을까.
교사에게 안 들킬만한 비밀 장소가 있는 걸까. 아니면 수업 중이니 얌전히 자기 책상에서 자고 있을까. 그러면 사야가 이러고 있는 건 완전히 헛수고인 셈이지만 그래도 찾아다니는 게 마음이 편했다.
구름다리를 지나 옆 건물 입구로 들어간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에 들어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 그 순간, 사야의 눈에 기묘한 것이 보였다.
건반악기의 건반이 얇고 길게 늘어나선 그대로 다리가 돼 걸어 다니는 듯한, 생물인지 기계인지 모를 것이 계단을 소리도 없이 올라간다.
"응?"
눈을 깜빡댄 다음 다시 보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환각일까?
확실히 수면부족이 오래 지속되면 눈의 착각이 늘어나거나 환각에 시달린다지만 사야의 마모된 마음속에서 뭔가가 걸렸다.
방금 그거, 낯이 익어…….
아니, 그럴 수가 있나? 저런 걸 어디서 봤지?
게임? 영상? 만화? 영화? 박물관?
그게 아니면…… 꿈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순간 기억이 확 되살아났다.
맞아! 봤어! 난 저걸 꿈속에서 봤어!
이틀 전. 보건실에서 꾼 잠시간의 꿈. 일어나기 직전에 보였던, 옆에 달린 수많은 다리──.
자기도 모르게 사야의 발이 계단으로 향했다. 아까 그 녀석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한 순간이었지만 그건 분명 계단을 올라갔다──.
기억의 안개 속에서 한 이름이 떠오른다.
"……수수다."
그 녀석은 그렇게 불렀었다. 수수. 뭔진 모르겠지만.
수수의 뒤를 따라 사야는 계단을 올랐다. 어둡고 조용한 2층 복도, 계단 옆 과학실은 안 쓰이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들자 또 보였다. 3층에서 더 위를 향해, 수많은 다리를 달그락달그락 움직이며 걸어가는 모습이 실내의 어둠과 창밖에서 비쳐드는 빛의 명암차 사이에 한 순간 나타났다 사라졌다.
뒤를 쫓아 계단을 다 오르자 옥상과 이어진 문이 있었다. 불투명 유리 저편은 밝다. 손잡이를 잡고 돌려 보니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간다.
사야는 그곳에서 콘파루 히츠지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