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도보 20분 거리를 거의 달리다시피 해서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순간 거실에서 나온 세 살 연상의 언니 아야와 마주쳤다.
"으아."
갓 목욕했는지 머리에 수건을 감고 막대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던 아야가 사야의 기세에 뒷걸음질 쳤다.
"무슨 일이야……"
사야는 여전히 헐떡대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걱정스레 동생을 살피던 아야의 눈썹이 뭔가를 알아챈 듯 올라갔다.
"안 졸려?"
"어……어떻게."
"요즘 들어 처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길래. 놀란 고양이 같네. 무슨 일 있었어?"
"있었다면……있었는데."
그렇게 말 하다 머뭇거린다. 아까 한 경험을 남에게 설명할 단어를, 사야는 모른다.
"왜 그래?"
"뭐랄까…… 악몽을 꾼 것……같은."
"아, 잔거구나?"
"엇, 음…… 아주 잠깐……?"
"오, 잘 됐네. 안색이 좀 좋아. 평소에 너무 안 좋긴 했지만."
"시끄러."
"얼레, 너 가방은?"
듣고 나서 알았다. 빈손이다. 교실에 둔 채로 와 버렸다.
"깜빡했어……"
"뭐 하는 거람. 학교 갈래? 차 태워줄까?"
"아니. 잠깐만 쉴래."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 계단을 오른다.
"세수는 하고 자~"
"알았어."
계단 밑에서 들리는 언니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 2층 방에 들어갔다.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진다. 머리맡에는 어렸을 때부터 함꼐 해 온 인형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작게나마 숙면용 부적인 셈이다. 자기 냄새가 나는 잠자리에 누워 사야는 긴장을 풀었다.
새삼스럽지만, 뭐였을까.
어떻게 된 걸까, 나.
좋아, 진정하자. 하나씩 정리하자.
다행히 지금은 머릿속이 깔끔하다. 그야말로 최근엔 겪어보지도 못했을 만큼 맑다. 그 이유를 들자면, 그래. 잤기 때문이다.
잠들었다. 진짜냐. 짱이다.
앞으로 영영 불면에 시달리다 쇠약사할 줄 알았는데.
잠든 것이다.
앗싸.
"아~~~~, 다행이다."
사야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시 잠들 수 있게 됐으니 망가져가던 인생을 되살릴 수 있다. 학교 공부도, 인간관계도, 지금부터 열심히 만회 해야하지만 그쯤은 장기 불면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 다행이다. OK. 이건 완전히 좋은 소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식은?
꿈속에서 모르는 사람을 애인이라고 생각하다가 깨선 있는 힘껏 키스했단 사실은,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
사야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범죄잖아……"
처벌 여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성추행 사건 정도는 되겠지.
"없었던 일이 되진 않으려나…… 안 되려나…… 알고 있었던 걸까…… 알고 있었겠지~ 아무리 봐도……"
그 사실이 밝혀지면 앞으로 사야의 입장이 상당히 힘들어지진 않을까.
"그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애인이었단 말이지……"
꿈속에선 그렇게 확실했던 애정이 일어나서 10초쯤 지나자 급속도로 사라진 것도 충격이었다. 그 탓에 아직도 상실감의 흔적 같은 게 가슴 안쪽에 들어앉아 있다. 아무 근거도 없는, 필요 없는 상실감인데.
키스했을 때 맛본, 사랑하고 사랑받는 확신은 살아온 17년 인생에서 처음 느낀 것이었다.
무의식중에 손끝으로 입술을 쓰다듬은 걸 깨달은 사야는 어색한 마음에 손을 내렸다.
"아~ 진짜~ 모르겠다~"
베개를 끌어안은 사야는 힘없이 끙끙댔다.
"진짜 아무 것도 모르겠어~……"
아니아니, 됐어, 이제 됐다. 이제 고민해봤자 변할 게 없다.
분명한 건 다시 잘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일단 자자. 아까처럼 자서 체력을 회복하자. 어려운 생각은 그 후에 하면 된다. 실제로 벌써 이토록 졸리다.
사야는 눈을 감고 잠이 잘 드는 자세를 잡곤 천천히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
한참 있다 사야는 눈을 떴다.
"…………어?"
잠이 안 든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전혀 잠들 수 없었다.